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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쟁과 평화 (사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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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제 8세기의 유대의 정치적 중심이었던 예루살렘의 위치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세계 모든 중심지가 될 새 예루살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왕국으로 지향하고 있는 역사의 방향을 제 시하는 하나님의 의도를 기술하는 종말적인 귀절이 나타나 있습니다. 여기 “나라”라는 말의 뜻은 하나님의 나라로써 하나님의 지배와 그의 통치권을 우주적으로 인정함으로 세워질 하나의 세계 질서를 말합니다. 이 부분은 장차 임할 위대한 날에 예루살렘 성전이 서 있는 그 언덕은 산중에 가장 높은 산이 되어 세계 만방으로부터 사람들이 이리로 몰려올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오는 까닭은 여기서 하나님이 자 기 자신의 의사와 길을 만방에 보여주시기로 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이 서로 논쟁을 하고 권력을 얻기 위하여 인간의 이기 적 욕심이 드러날 때 하나님은 시온에서 그의 말씀과 율법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십니다. 만민이 이 사실을 인정할 때 민족들 사이의 문제를 결판 짓 는 만민의 심판자로서 하나님이 군림하실 때 이 땅 위에는 평화가 올 것 입니다. 그 때는 전쟁에 사용하는 무기는 농사에 사용되는 농구로 바뀌어 질 것이며 아무도 전쟁을 위한 준비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전쟁과 공포 가 없는 세계, 그것은 바로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정하고 그 의 의사가 예루살렘에 전달될 것을 알게 되는 세계이며, 그 세계에서는 권력을 위하여 투쟁하는 모든 인간의 노력은 자취를 감추고 모든 사람과 모 든 민족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우주적인 통치권만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 다.

1. 전쟁은 문화의 적입니다 군국주의자나 공산주의자들처럼 마음 편하게 전쟁을 할 수 있다면 인간 의 오민은 없을런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러한 현실은 피비린내 나는 지 옥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1) 전쟁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자연의 질서에는 가끔 잔혹한 면이 드러날 때가 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평화를 외쳐도 자연은 인간을 대량으로 도태시켜 버리기 때문입니다. 지진이 그렇고, 무서운 풍수와 질병이 또 한 그러합니다. 그러한 것들은 전쟁 못지 않게 많은 인명을 희생시키고 맙니다.

(2) 호전론자는 전쟁이 있기 때문에 선한 것과 약한 것이 도태되어 강한 것이 남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합니다. 저들은 전쟁을 “생물진화”의 필요 조건으로 생각합니다. 인간 사회도 계급 투쟁과 국민 전쟁에 의해서 진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인간을 발광하게 만듭니다. 이럴게 되면 인명과 문화재는 낭비되고 인간의 내적 삶은 공허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전쟁 때문에 고대의 바벨론, 회람, 로마는 망했습니다. 독일, 이태리, 일 본 등도 역사의 쓴맛을 보았습니다. 역시 우리 나라도 전쟁의 비참함을 여러번 겪었습니다. 적어도 계속해서 50년 동안 평화가 지속되지 아니하면 고도의 문화는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이 바른 견해입니다.

2. 언제 평화의 시대가 도래할 것입니까?

(1) 유다 웃시야 왕 때 평화가 50년 계속되었습니다. 이 때 대예언자 이사야가 등장합니다. 1) 평화를 노래했습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전쟁을 계획하고 연습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2)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사 11:6-8)고 하였습니다. 3) 사 9:5에 '어지러히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묻은 복장이 불에 섶같이 살라지리니‥‥‥“ 라고 하였습니다.

(2) 이런 매에 평화외 역사가 태동하게 됩니다. 그러면 누구에 의해 서 나타나겠습니까? 1) 사 9:2에 “한 아이가 우리에게 나타난다” 고 말씀하십니다. 2) 사 11:1에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이 땅끝까지 전파되면 메시야 선교인 평화 즉 “샬 롬”이 선포된다고 말씀하십니다.

(3) 옛날에는 전도인들도 칼을 차고 다닌 때가 있었습니다. 1) 400여년 전 구라파 형편은 칼을 차고 다녀야 했습니다. 전도인 중 최초로 칼을 버린 사람은 “야곱 훗델”이란 사람이었습니다. 그 후 침례교 선교사 “시몬메놀”이 평화적인 복음 선교에 칼을 버리라고 말하였습니다. 2) 마틴 루터는 개혁의 주역이었지만 칼을 버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순교의식과 평화주의 신념이 고조되어질 때 칼을 버리게 될 것입니다.

3. 역사는 평화의 내잃을 희망이라 부르면서 우리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1) 스크린이 회지 않으면 영상이 비치지 아니합니다. 스크린은 하나님의 사랑에 눈뜬 인간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영상은 평화의 세계를 의미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2) 원자력을 발견한 것은 분명히 인간입니다. 인류의 연대의식은 평화를 위해 쓰여져야 하는 원자력과 결부되어져야만 합니다.

(3) 세계 평화는 공의와 사랑이 세계의 극도적인 전통이 되어질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평화이십니다. 최고의 하나님의 영광은 땅 위의 인류가 희열과 평화로 하나 되는 때에 더욱 커질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사야 예언자는 본문에서 다음과 같은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1) 이 세상에 기독교가 세워지고 기독교 신앙이 심어지리라고 예언 하였습니다. 2) 이방인들이 기독교로 들어 오리라는 것을 예고했습니다. 3) 이 개종자들의 모임은 서로에게 예고했습니다. 4) 여호와의 산에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5) 이 세상에 구원받는 자들의 나라가 건설되리라고 했습니다. 6) 이 세상에서 복음이 성공한 결과로 큰 평화가 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복음은 평화에 이르려는 매우 강력한 책임감과 유인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은 복음을 통해서 화해하고 함께 모일 것이며 그 들 사이에 이전과 같은 싸움은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보급되는 한 사람들을 화평하게 만들 것이며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깨끗하게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마음 속 에 널리 퍼지게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사랑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욱 널리 퍼지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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