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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남아 있는 자의 영광 (사 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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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징계의 심판이 지나면 어떤 비참한 현상이 일어납니까? 하나님의 심판이 지나간 다음에 보니 병신, 노인, 어린애들이 조금 남았고, 남자 중에서 장정이 될만한 자는 별로 없게 되었습니다. 전쟁에 죽었고, 원수 앞에 포로로 잡혀 갔고, 부상을 당해서 많은 사람들이 병신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남자 수가 너무 적었습니다. 그러니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들고 나로 당신의 아내가 되게 해 달라고 청혼을 하겠다는 기막힌 말씀이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 풍속에 여자가 혼자 살거나, 또 여자가 시집을 가도 아들 딸을 낳지 못하면 죄 값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전쟁으로 모든 남자들은 다 죽어서 여자가 일곱이라면 남자 하나 꼴에 불과하여 여자들이 시집 가기를 원하여 남자에게 청혼서를 낼 때에도 조건이 없었습니다. “먹을 양식과 제옷을 입는 모든 생활은 여자가 책임을 질 터이니 다만 당신의 아내라는 간판만 주시요” 라는 세대가 오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아 있는 자는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은 앞장에 나오는 무서운 환란들이 모두 지나간 다음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어떤 복을 받느냐 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 남아 있는 자는 어떤 자입니까?

(1) 이스라엘의 퍼난한 자입니다. 2절에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라고 했습니다. 그 날에 라는 말은 ‘바욥하우’ 라고 히브리어로 부르는데 1절의 문구와 같은 것이지만 그 뜻은 메시야 시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피난자 라는 뜻은 이스라엘 민족으로 구원에 택함 받은 백성을 말합니다. 구원에 택함 받은 백성을 피난자로 성경은 말씀합니다. 곧 그들이 소망을 얻으려고 이 세상을 피하여 간다는 뜻입니다(히 6:18).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이 세상에서는 미천하고 고독하여 이 세상 것으로 자랑할 것이 없으나 메시야께서만은 그들에게 자랑거리가 됩니다. 이스라엘의 피난자는 지금까지 좋아하던 것들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 이라면 단연 끊어버리고 하나님의 품안으로 생활의 근거를 삼아야 할 것 입니다. 욕심을 따르거나 정욕에 끌려가던 옛 생활을 청산하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품안으로 피난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특별 보호를 받아서 환란 날을 무사히 통과하여 남아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남아 있는 자들은 복을 받는 것입니다.

(2) 시온에 남아 있는 자입니다. 3절에 “시온에 남아 있는 자‥‥‥” 라고 했습니다. 시온에 남아 있는 자는 알곡 신자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시온과 예루살렘에 자기의 자리와 이름을 가지고 있는 자들의 대부분이 그들의 불신앙으로 인해 시들어 버린 싹처럼 잘리게 되지만 그래도 일부는 남겨질 것입니다. 시온에 남아 있는 자는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입니다(단 12:1, 시 139:16, 행 13:48). 특히 생존한 자 중 “녹명된 모든 사람“ 이란 말의 히브리 원어는 “콜 하카투브 라카임” 인데 “생명을 위하여 녹명된 자 들” 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곧 예탁된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예정론을 포함하는 문구입니다. 이들은 실상 메시야의 백성이니 메시야로 말미암아 성결케 되어집니다. 벧전 1:2에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 이라고 하였습니다.

(3)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입니다. 3절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에 있어 생존한 자 중 녹명된 모든 사람을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라고 했습니다. 여기 3절에 세 가지 명칭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예루살렘에 있어 생존한 자 중 녹명된 모든 사람” 이라는 것은 다 함께 택한 백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란 말은 교회를 지킨자 라는 뜻입니다. 생명을 내어 놓고 하나님의 교회를 지키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남아 있는 자” 로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상의 세 가지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사람들 입니다. 그래서 이 “남아 있는 자” 들에게는 하나님 앎에서 복을 받을 날 이 옵니다. 교만하고 오만한 자에게 끌려가지 아니하고 겸손하였고, 타락 한 지도자와 함께 도적질하지 아니하고 청렴하였고, 사치하고 음란한 여 자들과 함께 춤추러 다니지 아니하고 올바로 신앙생활을 한 사람들은 하 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입니다.

2. 남아 있는 자가 받을 복이 무엇입니까?

(1) 아름다운 이름을 얻습니다. 2절에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라고 했습니다. 싹이라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체마크” 인데 메시야를 비유합니다. 메시야를 싹이라고 하는 이유는 1) 끊기운 나무 뿌리에서 싹이 돋아 나오듯이 무너졌던 다윗 왕통에서 메시야가 나셨기 때문입니다. 2) 싹이 연약한 것처럼 메시야의 초림 사역은 연약한 인간성을 입으신 고난의 메시야이기 때문입니다. 아릅답다는 말은 메시야로 접붙임으로 말미암아 남아 있는 자는 남이 보기에도 아름답고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아름다운 명예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2) 영화로울 것입니다. 2절에 “영화로울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영화로울 것이요 라는 말은 지극한 상급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사람들 에게 대접받고, 하나님 앞에서는 말로 다할수 없는 상급을 받는 존귀한 자 가 된다는 뜻입니다.

(3)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는 복을 받습니다. 3절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에 있어 생존한 자 중 녹명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를 하나님은 아름답다고 하면서 면류관의 상급 을 주셨지만 또 다시 성령을 보내어 그를 씻어 주십니다. 그래서 남은 자 의 생명은 칭찬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더러운 것이 있기 때문에 성령을 보내시어 깨끗하게 씻어 주어야 비로소 거룩해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거룩한 이름을 얻는다는 말은 교회가 깨끗해지리라는 말과 교회에 소속 한 모든 자가 참으로 하나님의 선택 받은 자가 되리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진정한 영광이 무엇인지를 배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성도들이 거함으로써 번영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성도들이 순자도 적 고 세상에서 조롱을 당하고 있지만, 교회로 하여금 부요하고 바람직하게 해 주는 것은 오직 이들 성도인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는 복은 예루살렘에 있어 생존한 자 중 녹명된 자 입니다. 우리는 이미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라는 사실을 언급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사도들에게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 10:20)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록된 그의 백성의 이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원한 축복이 보장되는 양자로서의 칙령이 곧 생명책인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은 자는 하나님의 생명책에서 배제되고 거룩한 무리에서 제외됩니다.

(4) 시온의 딸들이 더러워짐에서 깨끗함을 얻은 복입니다. 4절에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 을 씻으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케 하실 때가 됨이라” 고 했습니다. 심판의 영과 소멸하는 영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성령은 심판과 죄를 소멸하는 역사를 하십니다. 사람이 성령의 사역을 받는 정도에 비례하여 죄를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여호와의 성결을 볼 때에 죄를 미워하기 시작하여 말하기를 사 6:1-5에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 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고 했습니다. 시온의 딸들이란 유대의 여자들만을 의미하지 않고 모든 유대인들을 가리킨 듯합니다. 유대 민족을 여성으로 비유한 것은 그들이 약소 민족이기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피라는 말은 예루살렘에서 범한 모든 포악한 죄악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는 대주재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그 기쁘신 뜻대로 정죄하시는 율법도 있지만 사죄하시는 복음도 있습니다. 그는 죽이 기도 하시고 살리시기도 합니다.

(5) 완전한 보호를 받습니다. 5-6절에 “온 시온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천막을 덮으실 것이며 또 천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 ” 고 했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지켜주십니다. 시온 성과 모든 집회는 하나님의 백성의 거처를 이름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교회의 특징은 한 마디로 여호와께서 계시는 곳입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신다는 증표이며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 모든 영광이 그 위에 머문다는 것은 교회에 머문다는 말입니다. 이런 일이 메시야 시대 곧 교회주의 즉 신약시대에도 구약 이스라엘에서와 같이 함께 하여 주신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은 선한 자나 악한 자가 고통을 당하는 것은 일반입니다. 그러 나 신자에게는 큰 위로가 있으니 그것은 곧 모든 어려움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충만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비록 사방 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 여러 가지 재난과 고통이라고 할지라도 여전히 여호와께서 약속해 주시는 것은 우리를 보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악한 자는 피난처가 없으나 우리에게는 피난처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 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위태롭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느 때든지 하나님 의 품안에 피난하고, 시온에 머물러 있고,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고 하늘의 생명록에 이름이 기록된 것을 즐거워하면서 믿음을 지킬 수 있는 자들 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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