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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사야의 예배 (사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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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8절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라고 이사아가 대답 한 때는 “웃시야 왕이 죽은 해”로 웃시야는 다윗과 솔로몬 왕 이래로 가 장 위대한 제왕 중 한 사람입니다. 그의 제위 52년간에 밖으로는 국위가 선양되고, 내적으로는 국민이 평화로운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마침 북방에서는 심상치 않은 국제적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그러자 “국가의 장래는 어찌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청년 애국자인 이사야에게 중대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 때 그는 무거운 마음을 안고 성전에 올라가 조용히 기도하는 중에 그는 여기 기록된 큰 환상을 보 게 되었습니다.

1. 거룩하신 하나님을 직접 발견한 것입니다

(1) 하나님을 직면하였습니다. 1절에 “웃시야 왕기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라고 했습니다. 1) 주님을 보았습니다.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다” 고 했으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다 ” 고 하였습니다. 2) 모여 섰는 “스랍들” 은 여섯 날개가 있었는데 둘은 얼굴을 가리우고, 둘은 발을 가리우고, 둘은 날며 참회하는 찬송을 불렀습니다. 3) 참회하는 찬송을 들었습니다. 3절에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주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라고 했습니다. 여기 거룩의 3중 창화는 3위의 하나님을 의미함과 함께 그 거룩하심이 완전하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배하는 자로서는 언제나 거룩하신 하나님의 현전에 머리 숙여 경배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예배자는 오직 하나님 의 영광을 찬양하여야 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됩니다.

(2) 우리 예배도 하나님과 직면해야 할 것입니다. 이사야는 성전에서 예배할 때 어떤 사람들처럼 다만 제단만 본 것이 아 니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직면하였습니다. 우리도 지극히 높으신 주님을 봅시다. 그는 높이 들린 보좌에서 우리를 다스리시며, 국가를 다스리시며,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십니다. 하나님은 공의로 다스리십니다. 그는 심판주이십니다. 육신만 죽이는 것 이 아니라 영혼까지 영원한 지옥에까지 던질 능력이 있으십니다. 또한 그 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을 죄에서 구하시려고 독생자를 보내신 하 나님이십니다. 그 옷자락이 성전에 충만하십니다. 그러므로 이곳은 거룩한 곳입니다.

2. 죄인임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에 자기 자신을 보았습니다. 5절에 “그 때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 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고 했습니다. 자기 자신의 부정한 모습이 화를 받아서 망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발견한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최고의 발견은 자신이 죄인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나의 구원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는 죄인이요 그 죄인 중에서도 괴수이요, 사도 중에 가장 부족하여 만삭되지 못한 자” 라고 하며 늘 자기의 참된 모습을 보면 서 주님의 구원에 대한 감사와 그 소명에 대한 감격을 가지고 일하며 살았습니다. 잠 1:7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대면한 이는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그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죄지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 설 때 제일 처음 해야 할 일은 죄의 자백입니다. 사람이 사람되는 첫 걸음은 자기의 부족함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자일수록 자기의 부족과 죄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기 때문에 주님과의 생명적 관계는 자기가 죄인임을 알고 언제나 십자가 밑에 선 생활입니다. 이 것은 과거에 한 때 있었던 지나간 사건으로서만 아니고 항시 그러해야 하 며 그 감격을 가지고 사는 데서 진정한 크리스챤 생활이 영위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 신자의 생활은 회개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이사야의 예배 경험은 사죄에 대한 체험이었습니다 이사야가 죄의 고백을 하니 곧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제단의 핀 숯을 가 져다가 7절에 “그것을 내 입에 대여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고 했습니다.

(1) 회개가 있을 때에 곧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삼하 12:13에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대답하되 여호와게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였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라고 했고, 요1서 1:9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회개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곧 사죄해 주십니다.

(2) 사죄는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사죄는 우리의 공력이 아닙니다. 예수를 보내 주셔서 십자가에서 대속 하시므로 누구나 회개하면 거저 사하여 주십니다.

(3) 불로 살라버리십니다. 아주 깨끗하게 하십니다. 사 1:18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별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여질 것이요 진흥같이 불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고 하셨습니다.

4. 소명을 받습니다 8절에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자기가 행하여야 할 그 일을 보고 “내가 여기 있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면서 찬송을 부를 때에, 기도를 드릴 때에, 설교를 들을 때에, 교회 소식을 들을 때 주께서 나를 부르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자로서 자기 사명에 대한 어떤 영감을 받는 일이 아니면 다른 것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항상 내가 할 일 을 찾아 그 일을 행하여야만 할 것입니다.

5. 미래에 대한 소망을 본 것입니다 이사야 당시의 시대적 정황은 말할 수 없이 부패하고 타락하였습니다. 정계와 사회적 정황은 물론 신성하여야 할 종교계도 부패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탄식하시게 되었고, 그들의 멸망이 예언되어졌습니 다. 그러나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이사야는 비젼을 보았는데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에 그루터기니라” 고 하신 주님의 계시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베인 바 된 나무 뿌리에도 기대를 했고, 소망을 가졌습니다. 그것은 베인 바 된 그 그루터기에서 새 싹이 나을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희망을 가지지 못한 민족은 망한다” 는 말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망국은 거의 2천년간이나 되었고,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어 꺼져가는 등불과도 같고 그 자취조차도 알 수 없을 정도가 된 민족이었지만 그들의 그 굳은 신앙과 희망은 오늘의 독립을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오직 의인이 있어서 나라가 흥하게 되며, 오직 의인이 있는 데서 나라가 보호를 받는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최후의 승리는 의인의 것입니다. 거룩한 씨는 곧 메시야를 의미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흥망이 있고 성쇠가 있으며 모순투성이로 불의가 자행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우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한 것으로, 의만이 다스려지는 나라인 것입니다. 모든 인간고와 모순이 사라지고 영원한 평화의 왕국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입니다. 반드시 우리는 이 예배를 통해서 하 나님과 만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자기 모습을 발견하고 동시에 참회를 통한 사죄의 은총을 입어야 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뜻 을 알고 행하여지는 예배, 그리고 장래에 대한 비젼을 보는 예배가 되시기 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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