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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 삶의 길로 돌아오라 (사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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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는 우리에게 이 어두운 시대에 인생의 좌표를 제시합니다. 그의 계시 가운데 한 사람이 나타나 “파수군이여 !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파수군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하고 부르짖었습니다. 이제 파수군이 응답합니다.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 너희가 만일 물으려거든 물으라 너희는 돌아올지니라” 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두 사람의 대화에서 당시 환란을 당한 고초와, 아침을 기다리는 도탄 중의 백성의 모습을 여실히 찾아볼 수 있으며, 파수군의 의미 깊은 대답에서 우리 첨 인간들에게 묻고 싶은 문제를 듣게 됩니다. 자연의 진서는 아침이 오면 밤이 가까와지고, 밤이 지나면 또 아침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밤은 영혼의 밤입니다. 무기력과 투명하지 못한 일과 죽음의 위협이 내 골수를 쑤셔대는 것과 같은 아픔이 있는 죄의 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라는 아침은 번뇌와 심한 고통과 모든 부조리에서의 해방을 의미하는 자유의 아침인 것입니다. 바울이 기다리던 아침은 자각과 믿음의 성장과 빛의 갑옷을 입고 그 시 대를 변화시켜 나가려는 출발이었습니다. 롬 13:11-12에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 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잠옷을 입자” 라고 외쳤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파수군의 소리 “아침이 오나니‥‥‥너희가 만일 물으려거든 묻고 돌아올지니라” 의 말에서, 바로 여기에 우리가 지향해야 할 생의 좌표가 있습니다.

1. 아침을 기다리는 사람들 기다림 ! 그것은 그리움 즉 사모함입니다. 아침을 기다리는 이는 광명을 원하고 있는 것이며 바로 이들에게 자은 태양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모든 인간들의 사상과 감정은 포화상태에 처해 있고 어느 돌출구를 원하는 갈급한 생은 아침을 기다리는 이들입니다. 그러기에 죄악이 가득한 현실은 빛이 없는 상태이며, 암흑에 처한 사람들은 새로운 삶을 요구하기 마련입니다. 밤은 멀어 가까움이 가리웠고, 밤은 백과 흑, 선과 악의 분별이 어려우 며, 밤은 곱고 미운 것을 가리웠고, 길과 구덩이를 드러내 주지 않으므로 죄악의 깊은 밤은 깊어만 가고 있습니다. 과연 죄악의 밤은 우리들을 죽음의 골짜기로 몰고가고. 또 우리로 우리 의 동료를 상하게 유혹합니다. 또한 그것은 마치 캄캄한 밤에 강도를 만 난 나그네와 전신이 피투성이로 되어서도 구원의 신호를 가까스로 보내며, 한줄기 삶의 태양을 애원하는 심정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더 욱 많은 사람이 자기가 깊은 늪에 빠져 미궁으로 빨려 가면서도 자아를 깨닫지 못하는 안타까운 이들로 왁 차 있습니다. 빨리 빛을 찾아야 합니다. 캄캄한 도성에서 피를 흘리는 불쌍한 영혼이여, 목숨을 스스로 끊지 말 고 아침길을 물으시기 바랍니다. 저 파수군에게 다같이 참 삶의 길을 물 으십시다. “파수군이여 !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라고 외쳐야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파수군의 진정한 응답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2. 파수군의 외침 파수군은 성문으로 들어오는 아름다운 발걸음을 안내합니다. 누구든지 참 삶의 길을 찾지 못한 자 있거든 파수군에게 참 삶의 길을 위해 간절히 물어보십시요. 파수군은 응답할 것입니다. “새벽이 오나니‥‥‥물으려거 든 묻고 열려진 문으로 돌아올지니라” 고 망대 위에서 단호히 외치고 있습니다. 새 삶의 길로 돌아오라고 외치는 파수군은 오늘날도 외치고 있는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고 합니다. 죄악이 밤으로 깊어진 오늘을 우 리가 영적인 안목을 뜨고 이 세상을 내다보면 이 병들고 어두운 사회는 정녕 인류의 구도자인 메시야가 필요합니다. 어두운 밤에 매여서 죄의 노예 가 된 자들은 파수군의 음성을 들으려면 열심과 근면으로 망대 곁으로 가 서 파수군에게 밤을 묻고 또 응답을 들어야 합니다. 파수군은 삶의 길을 알려줄 것이며 밤의 시각을 알려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파수군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원수들이 밤의 사정에 대하여 물으면서 조롱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욕설을 섞어가며 질문을 되풀이 합니다. 밤은 곤경을 나타내 주며, 아침은 순결을 상징적으로 말해 주는데 충성스런 선지자는 아침이 오고 있는 중이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선지자와 같이 철저한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1) 세계를 위찬 아침은 오고 있습니다. 수백만의 사람들, 폭력의 희생이 되고 일는 사람들, 헐벗고 집없는 사람들 그들에게 커다란 희망의 광선이 있습니다. 캄캄한 터널 끝에 보이는 빛은 온 인류에 대한 만인의 형제애가 아니라 세상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다가 오고 있는 아침은 그가 큰 영광 중에 구름을 타시고 모든 부정을 바로 잡으러 오시며 그의 영원한 왕국을 가지고 오시는 그의 재림 때입니다.

(2) 아칭은 또한 개인에게로 오고 있는 중입니다. 세계는 개인들이 모여 이루어졌습니다. 국가적, 국제적, 산업적, 정치적 문제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인에게도 질병과 슬픔, 사별, 사적문제, 교리적 혼란, 사나운 운명의 화살 등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필요에 대한 해답이십니다.

3. 열려져 있는 문 열려져 있는 상태의 문이란 누군가 돌아오기를 기다림의 문입니다. 닫혀 져 있을 때보다 열려져 있을 때의 표정은 누구를 환영하는 뜻이 있고, 그 열린 문 속에는 평화와 온화함이 어려 있습니다. 이 문은 아버지가 탕자를 기다리는 눈물의 문이요, 방탕에 빠진 아내를 학수 고대하고 기다리는 호세아의 슬픈 마음이 열린 문입니다. 모든 잘못 을 용서하고 모든 잘못을 이해하려는 사랑의 문으로 이 문은 노아가 들어 간 문이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돌아온 문이며, 모세와 여호수아가 40년간 헤매면서 찾아간 문이며, 세례 요한이 들어간 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이 문으로 들어간 자는 영광에 사는 자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목숨과 교환하여 여호와의 영광을 우리에 게 가져다 준 문, 뜨거운 사랑의 피가 못자국에 어린 십자가의 문, 그리스도의 열린 문입니다. 바로 이 십자가의 문은 우리 모두가 들어가야 할 문입니다. 그래서 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 14:6에 “내가 곧 길이 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을 자가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또한 “누구든지 그 문을 시인하고 그 문으로 들어오는 자, 그에게는 참 삶의 길로 돌아온 자라” 고 사도 바울은 외칩니다. 롬 10:9에 “네가 만 일 게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 고 말했습니다. 열어진 문 그 안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이 풍성하게 넘칩니다. 파수 군은 여러분의 눈앞에 서 있습니다. 그는 여러분이 몸담고 신앙생활이 소속하여 있는 교회의 목자, 하나님의 종인 말씀의 파수군입니다. “돌아오라”고 파수군은 오늘도 외칩니다. 문은 아침을 기다리는 이에겐 무한히 개방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 가는 닫힐 때가 있음을 압시다. 이 문이 닫히기 전에 들어가야 합니다. 닫친 후에는 아무리 두드려도 이미 때는 늦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닫치기 전 에 아침길로 와서 어서 구원의 문으로 들어오라고 합니다. 아침을 기다리 는 자들은 참 삶의 좌표를 파수군에게 묻고 계수 그리스도의 문으로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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