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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끓는 가마를 보라 (렘 01: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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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는 유대국 말기에 태어나서 소년시절에 선지자로 부름을 받아(렘 1:5-7) 요시야,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등 다섯 왕족의 정권이 바뀌는 동안 선지자의 일을 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국민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이 올 것을 경고하며 회개를 촉구했으나 이스라엘 민족이 끝내 회개치 않으므로 경고해 준 보람도 없이 조국 유대 나라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게 망국의 쓰라림을 당하였습니다. 이렇게 나라는 망하고 예루살렘과 성전은 무참히 파괴되었으며 백성들은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이때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에 남아 있어서 우국의 마음으로 남은을 위로하며 격려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소명을 받은 후 곧 상징적인 환상 두 가지를 보았는데 그 때 벌써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하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중에서 본문은 둘째 환상인 끓는 가마에 관한 기록입니다. 이것은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 즉 남쪽 유다 나라 거민에게 임하리라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렘 1:14).

1. 오늘의 세계는 끓는 가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네가 무엇을 보느냐?"고 한즉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하고 대답하였습니다. 끓는 가마란 불안하고 살벌한 분위기, 시끄럽고 위험한 상태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늘은 과연 끓는 가마와 같이 시끄럽고 분주하며 살벌하고 위험스럽습니다. 예수께서 마24장에 예언하시기를 장차 이 세상에는 종교, 정치, 경제, 사상 등 각 방면에 대혼란이 야기되므로 유혹과 기만과 불안과 공포가 소용돌이 칠 것인데 그것이 바로 말세의 징조요, 말세의 현상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의 세계는 과연 성경이 말한대로 움직이고 있으며 예수께서 예언한대로 세계 역사는 흘러가고 있습니다. 어떤 명사는 말하기를 "현대는 진통의 시대다, 현대는 분열과 전쟁과 위험과 공포와 죽음의 소용돌이 속에서 생활하도록 운명지어진 시대"라고 하였고, 빌리그래함 목사는 그의 저서 "불타는 세계"에서 말하기를 현대의 걷잡을 수 없는 불길은 인구팽창, 무법과 불법, 인종문제, 공산주의, 방종하는 과학, 정치적 실책, 성적 부도덕 등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얼마전 비행기 사고로 별세한 UN 사무총장 함마슐트는 작고하기 얼마전에 이런 고백을 한 바 있습니다. "나는 영원한 세계 평화에 대하여 어떠한 희망도 발견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렇게 애써 노력했는데도 결과는 비참하게 실패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과연 오늘의 세계는 한마디로 끓는 가마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2. 선지자의 자격을 보여줍니다.

(1)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13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고 했습니다. 선지자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사명의 동기와 방편과 그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인간의 주관적 동기가 아닌 "천래적 소명"의 체험이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선지자임을 보여줍니다. 만약 예레미야가 인간의 말로 전한다면 그렇게 갈등과 고난의 삶을 살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끓는 가마와 같은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을 시대의 빛으로 비춘다는 것은 고난과 고독을 자초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참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 말씀을 증거하는 사명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2)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선지자들은 원래 "이상을 보는 사람"이라고 이해되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성도들은 역사와 자신의 삶의 정황 속에서 늘 하나님의 섭리와 그분의 뜻을 볼 수 있는 영안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수많은 선지자들과 종교지도자들과 또 백성들이 물질과 정치를 민족의 행복으로 보고 있을 때 그 안에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보았던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현재 무엇을 보고 살고 있습니까? 불신 세계의 사람들처럼 세상의 외적인 면, 현세적인 행복, 시대의 유행적 사조만을 보고 산다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예레미야처럼 민족의 죄악으로 인하여 고뇌해야 되겠습니다.

3. 선지자의 사명을 북에서부터 기울어진 가마로 보여줍니다.

(1) 하나님의 심판을 전해야 합니다. 예레미야가 본 가마는 북에서부터 남으로 기울어진 것을 보았는데 이것은 14절의 말씀처럼 재앙이 북에서 일어나 유대 땅 모든 거민에게 임하리라는 상징이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북에서부터 남쪽 유대로 침입할 적군을 가리킨 것입니다(15절). 이때는 벌써 정북방에 있는 이스라엘이나 앗수르는 다 망하였기 때문에 저들이 침입할 염려는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끓는 가마는 유대 나라 동북편에 있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중심하고 싸우고 있던 바벨론, 니느웨, 엘람, 매데 등 네 나라를 가리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저 네 나라가 서로 싸우다가 바벨론이 패권을 가지게 될 때 바벨론의 끓는 물이 유대에까지 올 것으므로 강구하라고 경고하고 권했지만 유대 백성들은 그 말을 듣지 않다가 필경 북쪽으로부터 끓어 넘쳐 밀려오는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나라는 망하고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저 유대 백성들에게는 북에서부터 기울어진 끓는 가마를 보는 눈이 없어서 망하였던 것입니다. 끓는 가마가 기울어졌다는 말은 그 재앙이 임박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역사적 사건을 하나님께서는 "내가 주관하는 것이라"(15절)고 했습니다. 즉 인간사의 정치, 경제, 사회의 사건들 배후에 있는 하나님의 심판의 의미와 그 필연성을 이 시대의 불신자들에게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16절에 "무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에 절하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신 이유를 들어 말씀하고 잇습니다. 인생들이 현세에서 불행하고 내세에서 영벌을 받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을 배제한 인본주의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생들이 하나님을 버린 것이 징계의 심판의 이유라면 "손으로 만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구원의 첫 걸음임을 알아야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구원으로 유도하는 방편"임을 성도는 유의해야 합니다. 비판과 경고 다음에는 인생들을 그리스도의 은혜로 이끌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선지자들의 특색이요 본분이며 특권인 것입니다.

4. 예레미야는 삶의 자세를 보여줍니다.

(1) 자기 자신에 대한 자세 17절에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근신과 절제, 그리고 열심을 의미합니다. 즉 힘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라는 말입니다. 허리를 동이고 일어서지 않으면 북에서부터 기울어진 끓는 가마는 또 다시 남쪽으로 쏟아지고 말 것입니다. 근신과 절제는 사단의 유혹을 예방하는 것이요, 열심은 세상의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을 방지해 줍니다. 성도는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이겨야 합니다.

(2) 자신의 삶에 대한 자세입니다. 17절에 "명한 바를 다……고하라…… 두려워 말라"고 했습니다. 담대하라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의 이름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째 내어던진 존재이고, 둘째는 세워진 존재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과 땅 사이에 그리스도의 분신으로 세워진 존재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3) 하나님께 대한 신뢰입니다. 18-19절에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승리"를 보장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성도는 지금 속해 있는 사회와 역사가 어둡고 혼란하고 불의하다고 해도 실망해서는 안됩니다. 사명자는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빛이 있는 곳에는 항상 승리가 보장되어 있음을 성도 여러분들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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