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쇠기둥과 놋성벽 되라 (렘 01:18-19)

첨부 1


예언자 예레미야가 부름을 받은 때에 보고 들은 환상과 말씀은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환경과 같으며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할 말씀입니다.

1. 예레미야 때의 종교적. 정치적 상태

(1) 정치적 배경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망하고 앗수르와 애굽이 호시탐탐 유대를 삼킬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이때에 유대 왕 여호야김은 전심으로 회개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무력만을 의지하고 믿어서 깃딤, 게랄, 놉, 다메스, 시흘, 애굽 등의 나라에 원조를 청하고 동맹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앗수르에게 안방 문을 열어서 화를 불러 들이려 하였습니다.

(2) 종교적 상태 그들은 가나안 사람들의 생활과 농업문명에 물들어서 생산과 번영을 숭상하는 종교를 믿어 윤리적으로 문란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바알 신과 아세라 신들을 섬기고 그 종교에서 행하는 음란한 의식을 흉내내게 되었습니다.

(3) 이런 정치적, 종교적인 상황의 결과 이리하여 사람들은 사치하고, 교만하고, 게으르고, 부도덕하고, 단결심 없는 이기주의적이요 개인주의적으로 되어지고 말았습니다. 예레미야가 예언자로 부름을 받은 때는 정치적 종교적으로 유대 사람들이 이런 형편 가운데 있을 때였습니다.

2. 쇠기둥과 놋성벽 유대 나라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를 막고 유대인들의 타락한 생활을 막기 위해서는 이만저만한 노력과 실력을 가지고는 당해낼 수 없었습니다. 쇠기둥과 같이 꿋꿋하고 놋성벽과 같이 견고한 단결력과 방어력이 필요하였습니다.

(1) 쇠기둥 기둥은 집을 지탱합니다. 기둥이 있을 때에 집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기둥의 직책은 크고 중합니다. 기둥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제자리를 떠나지 않아야 하며 기둥은 곧아야 합니다. 또한 견고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부탁하신 것은 쇠기둥이 되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쇠기둥 같은 사람입니까? 1) 불타는 소원을 가진 사람이 쇠기둥과 같은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불타는 소원, 불타는 꿈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위대한 꿈을 이루려고 하는 불타는 소원을 가진 사람은 쇠기둥과 같은 사람입니다. 2) 시련을 이겨내는 사람이 쇠기둥과 같은 사람입니다. 구약 성서에 보면 예레미야처럼 시련을 많이 당한 사람도 그리 흔치 않을 것입니다. 그는 왕을 향해, 국가와 민족을 향해 예언을 하고 우상 숭배의 실패를 위해서 나라의 공의와 질서를 바로 잡고 가난한 사람들을 박해하는 사람들을 바로잡기 위해서 주저없이 외쳤습니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값비싼 댓가가 지불되었습니다. 그는 박해를 받았으며 시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쇠기둥과 같이 우뚝 솟은 위대한 예언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고난이 닥칩니까? 그러나 그 고난을 통하여 여러분은 위대한 곳으로 인도될 것입니다. 아무런 고난도 없이 순풍에 돛단배처럼 가는 사람은 결국 무능하고 쓸모없이 되고 맙니다.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고난과 시련을 억세게 이기고 나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쇠기둥과 같이 세우시고 위대하게 쓰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대를 이를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잡아 제사를 드리라는 무서운 시련을 거쳐 신앙의 조상이 되었고, 축복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요셉도 갖가지 시련을 거친 후에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예레미야도 갖가지 시련을 이겨낼 때까지 쇠기둥 같이 새워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일시적이 역경이 닥칠 때에 여러분은 그것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이 길을 통해서 나에게 어떤 역사를 일으키시려는지 기도하며 담대히 역경에 도전하시기를 바랍니다. 쇠기둥과 같이 우뚝 솟아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는 우리들이 될 때에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는 위대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고난과 역경을 담대하게 이겨내는 사람이 바로 쇠기둥, 놋성벽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3) 불굴의 신앙의 사람이 쇠기둥과 같은 사람입니다. 불굴의 신앙의 사람,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가는 사람은 인간의 수단이나 계략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만을 두려워할 뿐입니다. 실패가 와도 두려워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을 쇠기둥과 같이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어떤 사건이 생길 때에 거기에 주저 앉아서 실망하고 좌절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사람은 어떠한 사건이 벌어진다고 할지라도 그것에 대해 감사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자세인 것입니다.

(2) 놋성벽 기둥은 집을 안에서 지탱하는 것이고 성벽은 성읍을 외부로부터 오는 공격과 침해에서 막는 것입니다. 도적을 막고 적군을 방어하며 바람과 물을 막습니다. 예레미야 더러 놋성벽이 되라고 한 것은 유대 나라와 교회의 운명을 외부의 침해에서 막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 다시 우리에게 우리 나라와 교회를 외적의 침략에서 막으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때는 앗수르의 침략과 바알신 종교의 부패한 영향의 위험이 있었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는 공산주의의 위협이 있는 동시에 향락주의, 세속주의, 유물주의와 이교사상과 이교주의가 전후 좌우에서 있습니다. 이런 시국을 바로잡고 당할 수 없습니다. 이런 태세에 처하기 위하여는 뜻있고 믿음있는 애국자와 신앙인들의 굳은 단결과 물 샐틈 없는 결속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레메야에게 부탁하신 말씀은 놋성벽이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담은 부분과 부분, 성분과 성분이 굳게 단결해야만 담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고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담으로서 효과를 들어내기 위해서는 조금도 빈틈없이 뭉치고 결속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흙담, 돌담보다 놋성벽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민족적으로, 교회적으로 크고 절호의 기회를 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반면에 큰 위기를 직면해서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비상한 때를 만난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굳은 단결과 결속을 중심으로 하는 협조와 이해와 통일입니다. 마귀는 사람 마음 속에 불만 불평을 하게 하여 분열을 일으켜 스스로 싸우게 하여 패배시킵니다. 결속은 강하게 만들고 분열은 약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내 주장, 내 자랑, 내 권리를 다 내어놓고 굳게 뭉쳐야 하겠습니다. 놋성벽과 같이 굳게, 그리고 물 샐틈 없이 뭉쳐야 합니다. 그리고 물밀 듯이 휩쓸어 오는 원수의 세력과 좀먹는 죄악의 세력을 막아야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굳게 서면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를 통하여 임할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