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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루살렘의 참극을 슬퍼한 노래 (애 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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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이 폐허로 화하고 계약의 백성이 추방되고 흩어진 BC 587년에 유대 왕국을 둘러싼 압도적인 비극은 그 뒤에 많은 난문제들을 남겼습니다. 어떻게 계약의 하나님이 거룩한 도성이 파괴되도록 버려두시는가? 하나님은 무력한가? 하나님은 선민을 내버리시는가?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지 않으시는가? 어떻게 하면 포로된 이스라엘이 해방 얻을 것인가? 이방인들은 하나님 선민을 괴롭혔으니 심판이 임하지 않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예레미야 심중에 야기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포로로 끌려간 후 예루살렘은 황폐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예레미야는 앉아서 눈물을 흘리면서 예루살렘에 대한 애가를 불렸다라고 70인역 서문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애가서 저자는 예레미야라는 전통적 견해입니다. 예레미야 애가서의 내용은 바벨론 침입에 따른 예루살렘의 함락에 대한 비탄입니다. 따라서 기록 목적은 이러한 심각한 재난의 이유에 대해 반성하는 의도로부터 지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애가서의 특징은 그 구조의 명료성에 있습니다. 애가서는 시의 구조가 어느 정도 인위적인 것 같이 보여집니다. 왜냐하면 처음의 둘과 마지막의 둘은 22절로 되어있고 다른 한편 세째로 지은 것은 66절(22+22+22=66)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의 형식에 있어서는 이러한 시는 가나다순의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즉 알파벳식의 시행 전개나 22개의 알파벳을 사용하여 22절이나 66절의 시행을 서술한 구조의 명료성은 애가의 형식상 특징을 이룹니다. 즉 한 개인이 알파벳을 말할 때 그는 그것에 의해서 말의 모든 가능성을 포용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알렙)에서부터 (타우)까지 진행시킴으로써 저자는 감정적인 카타르 시스, 완벽한 슬픔과 완전한 죄의 고백을 표현할 수 있으며 자신의 의식이 완전히 순화되는 감정의 정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알파벳을 사용함으로 해서 분명히 기억하기 쉽고 시인의 감정을 밀접하게 그리고 집중적으로 표현해낼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애가서는 공식적인 예배에 사용하도록 연구되었다고 보며 이 애가서는 BC 586년 예루살렘 함락 사건을 정점으로 해서 전자는 예루살렘의 함락을 경고하고, 후자는 재앙의 비참함과 절망적인 애도를 보여줍니다. 심판이 내리기전 예레미야는 예언을 통해서 멸망의 징표를 주었는데 예레미야의 예언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썩은 띠나 깨어진 그릇과 같이 극심하게 파괴될 운명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런 민족의 참상을 보고 슬픈 노래를 지어 이스라엘 민족을 경고했고, 또한 예레미야는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을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에는 심판과 재건, 멸망과 약속이라는 절망의 늪에 빠져 있을 때에 거기에서부터 구원이 시작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이러한 최후의 복구에 대해 예레미야는 새로운 계약 공동체를 제시합니다. 이제 예레미야는 훼파된 성전 뜰에 앉아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울고 무너진 왕궁터를 바라보며 사라진 왕궁의 영화를 회고하면서 비탄에 젖어 민족의 고난을 기억하고 오열하고 있습니다.

1. 사라진 왕국의 영화

(1) 유대 왕국의 번영이 사라졌습니다. 1절에 “슬프다 이 성이여 본래는 거민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히 앉았는고 본래는 열국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고‥‥‥‥”라고 했습니다. 본래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룬 도시였고 거민도 많았습니다. 다윗의 위용, 솔로몬의 부귀, 화려함은 세계에서 제일이었고 부요하며 칭송받은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금과 은을 돌과 같이 흔하게 하고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 같이 많게 하였습니다. 세계에서 자랑하는 솔로몬의 궁전이 있고 세계에서 유일하고 존귀한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도시입니다. 이런 예루살렘 성전이 패망했습니다. 예루살렘의 패망과 함께 400년 왕국의 영화와 번영이 사라졌습니다. 다윗의 위용, 화려했던 솔로몬의 왕국은 또 어디로 사라져 간 것입니까? 바벨론 제국은 이 모든 것을 유다에게서 빼앗아 갔습니다. 많은 유대인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고 예루살렘 성전과 성은 불에 타서 비참하게 되고 적막해졌습니다. 예레미야는 이 비참하게 된 예루살렘을 보고 너무나 기가 막혀서 슬퍼하고 애가를 지었습니다. 과거에는 열국 중에 크던 예루살렘이 하나님께 버림받아 과부와 같이 고독해졌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알아주거나 위로해 주는 사람이 없이 홀로 적막하게 되었습니다.

(2) 예루살렘 존귀가 사라졌습니다. 6절에 “처녀 시온의 영광이 떠나감이여‥‥‥‥”라고 했습니다. 처녀 시온은 사랑받고 귀히 여김 받으며 평안하게 지내던 예루살렘 성을 가리킵니다. 그렇게 아름답고 귀하며 평안하던 예루살렘의 영광이 이제는 다 떠나갔습니다. 나라가 멸망함으로써 주권도 사라지고 옛날의 다른 나라의 조공을 받았던 유대가(삼하 8:1-4, 왕상 4:21-24, 대하 26:6-8) 이제는 조공을 드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3) 유대 종교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4절에 “시온의 도로가 처량함이여 절기에 나아가는 사람이 없음이로다 모든 성문이 황적하며 제사장들이 탄식하며 처녀들이 조심하며 저도 곤고를 받았도다”라고 했습니다. 전에는 예루살렘 절기 지키는 자로 예루살렘 도로가 붐비고 크게 웅성거렸으나 이제는 유다가 패망하여 시온의 도로가 처량하여 절기지키러 올라오는 자가 없어서 너무나 황적한 것이 되었습니다. 이제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점령하니 유대 종교는 사라지고 예배도 종교적 절기도 다 사라지고 하나님 앞에 예배드려야 할 성전이 우상숭배의 집으로 변절되고 말았습니다.

(4) 즐거움이 사라졌습니다. 7절에 “예루살렘이 환란과 군박을 당하는 날에 옛날에 모든 즐거움을 생각함이여”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이 환란과 군박을 당하는 날에 옛날의 모든 즐거워하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전에 하나님을 섬기면서 은혜와 복을 누리던 것을 추억해 보면 지금 상태가 너무도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옛 유대 백성은 공주와 같이 존귀한 생활을 하였는데 지금은 가장 비참하게 되어 종살이 하고 비천한 자리에 떨어진 것입니다. 옛날에는 하늘나라에 산 것과 같고 지금은 땅속에 들어가서 사는 것과 같습니다. 죄값은 이런 비참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사람들은 대개 좋은 때가 지나고 환란과 곤고한 날이 와야만 전날의 좋은 때를 추억합니다.

2. 예루살렘 파멸의 원인은 유대 백성의 죄 8절에 “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하므로 불결한 자 같이 되니 전에 높이던 모든 자가 그 적신을 보고 업신 여김이여 저가 탄식하며 물러가도다”라고 했습니다. “적신을 보고 업신 여김이여”라 했습니다. 예루살렘이 전에 하나님의 축복으로 은혜 가운데 있을 때에는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고 높이 받들었으나 하나님 앞에 범죄하여 창녀처럼 더러워졌으므로 하나님께서 별 하실 때에 벌거벗은 적신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모든 사람들이 멸시했습니다. 이같이 유대가 파멸한 것은 죄 때문이라고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상숭배는 유대의 결정적인 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전을 이방인의 흙발로 유린되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3. 치욕과 적막만이 남아 있는 예루살렘이 되었습니다

(1) 폐허와 적막과 치욕만이 남아 있습니다. 3절에 “유다는 환란과 많은 수고로 인하여 사로잡혀 갔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을 원수의 손에 붙이매 원수가 좇아와 좁은 길 막다른 곳으로 쫓겨 오갈 데 없으므로 사로잡혀 종살이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거리는 황폐해지고 성은 무너지고 성문은 황막하게 되었고 왕국을 하나님이 버리시니 하루아침에 무너졌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유대 사람들에게 치욕을 남겠습니다. 바벨론인에게 노예가 되고 복종만 있는 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노예가 긍지가 없습니다. 동시에 치욕이 있습니다. 노예는 자기가 없습니다. 오직 상전만이 있을 뿐입니다.

(2) 곤고가 남아 있습니다. 4-5절에 “처녀들이 근심하며 적도 곤고를 받았도다 저의 대적이 머리가 되고 저의 원수가 형통함은 저의 죄가 많으므로 여호와께서 곤고케 하셨음이라”고 했습니다. “처녀들이 탄식한다”는 말은 청년들이 모두 전장에서 죽고 포로로 끌려갔으니 마침내 처녀들도 곤고를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원수가 형통하게 될 것입니다 하였으니 유대인은 자연히 곤고속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피정복 민족은 정복자들의 착취의 대상이 됩니다. 인간이 아니라 노동력으로 전락하며 그것은 곧 짐승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3) 굶주림이 남아 있습니다. 11절에 “그 모든 백성이 생명을 소성시키려고 보물로 식물들을 바꾸었더니 지금도 탄식하며 양식을 구하나이다 나는 비천하오니 여호와여 나를 권고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모든 백성이 너무 궁핍해서 보물로 식물을 바꾸어 먹을 정도로 궁핍이 극심하였습니다. “나는 비천하오니”라고 선지자가 유대와 예루살렘을 대표하여 하였던 말입니다. 그들은 자기 자식을 삶아먹는 굶주림의 공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굶주림은 동물적인 공포입니다. 유대인은 크게 범죄하였으므로 이런 치욕만이 남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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