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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레미야의 고난 (애 0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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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은 예루살렘에 일어난 모든 사실을 보고서 하나님을 향하여 통곡하며 부르짖는 비극적인 사실로 시작됩니다. 본장은 바벨론으로 인한 이스라엘 백성이 당할 재난을 예레미야는 자신의 고통과 고뇌시켜 승화시킨 노래입니다. 그러므로 민족 전체의 슬픔을 짊어지고 하나님과 대면하는 선지자의 증보적 탄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1. 징계받는 자로서의 고난(1-7절)

(1) 여호와의 진노 예레미야는 자신의 고통의 의의를 1절에 “여호와의 노하신 해로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그 백성들에게 진노하시는데 그것은 심판이 아니라 바로 잡기 위한 사랑의 채찍으로서 입니다. 2절에 “나를 이끌어 흑암에 행하고 광명에 행치 않게”라고 했다 했는데, 흑암 중에 거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징계 중에 있는 성도의 모든 불행을 묘사한 말입니다.

(2)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아 징계받는 자로서의 심신의 고통, 즉 개인의 육체적 고통을 말해줍니다. 이런 고통은 1) 계속되는 고통입니다. 2절에 “종일토록 치시도다.” 참된 성도는 징계의 고통으로 늘 애통하는 마음으로 중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 육체적인 고통이 수반됩니다. 4절에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시며 뼈를 꺾으셨다”라고 했습니다. 어느 유명한 정신 의학자는 우리 정신병동에 환자중 내가 하나님께 용서받았다고 확신만 하면 70%이상 완치될 수 있는 이들이 많다“라고 했습니다. 3) 정신적 고통입니다. 5절에 “담즙과 수고를 쌓아 나를 에우셨으며”라고 했습니다. 담즙은 마음의 근심을 말합니다. 4) 소외됨의 고통입니다. 6절에 “나로 흑암에 거하게‥‥‥ 죽은지 오랜자 같게” 하셨다는 것과 7절에 “‥‥‥‥나의 사슬에 무겁게 하셨으며”라며 사슬로 묘사된 처지는 사회적 고통을 의미합니다. 이웃들로부터 소외당하는 고통이야말로 인간에게는 사형 선고나 다를 바 없습니다.

2.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에서의 부르짖음(8-13절) 신앙인으로서 영적 단절의 고뇌입니다. 바벨론 포로로 고난받는 선민의 고뇌는 “신앙인이 우리를 버리셨는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1) 기도가 단절됨의 고뇌입니다. 8절에 “내가 부르짖어 도움을 구하나 내 기도를 물리치시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귀는 그의 백성의 기도에 열려지고 자비의 문이 그것을 노크하는 사람들에게 열려지는 것이 예사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지금 부르짖으나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지 않으니 통탄할 노릇입니다.

(2) 죄인으로서의 고뇌입니다. 9절에 “다듬은 돌을 쌓아 내 길을 막으나 내 첩경을 곱게 하셨도다”라고 했습니다. 다듬은 돌의 벽은 틈이 없습니다. 선민 이스라엘은 앞뒤와 좌우 쪽으로 나아가려고 하지만 갈 길이 없어서 되돌아옵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죄인으로서의 고뇌입니다.

(3)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자로서의 고뇌(10-13절) 이제는 선민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하나님과의 원수된 자가 되고만 것입니다. 참된 성도라면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하고 자꾸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간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이 고뇌는 성도가 보편적으로 느껴지는 고뇌입니다. 마턴 루터가 그랬고, 다윗도 그 고뇌가 있었고(시 51편), 베드로도(눅 22:61-62), 사도 바울도(롬 7:24)다 이 고뇌에 한 때 빠졌습니다. 이 고뇌야말로 성도된 증거요 우리로 겸손해지며 더 성숙케 하는 근심입니다.

3. 선민의 고난 현장을 고합니다(14-18절) 드디어 예레미야는 인간으로서의 선민의 처지, 고난투성이, 불행감을 고했습니다. 사실 선민의 위치는 인간적으로 볼 때 행복하다고만 할 수 없습니다. 핍박과 수모를 동반하고 이방인보다 의무와 책임을 수반해야 합니다. 14절에 “모든 백성에게”라고 했는데 이 본문이 바뀌여진 것은 이 시가 개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성읍에 의한 애가라는 의미입니다. 그는 구원이나 구출에 있어서 절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17절에 “주께서 내 심령으로 평강을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내가 복을 잊어 버렸음이며‘라고 했습니다. 내가 복을 가졌던 때가 오래며 그것을 회복할 가능성도 없으므로 나는 그 생각을 잊어버렸다는 것이며, 나는 슬픔과 노예 상태에 익숙해졌으므로 나는 기쁨과 자유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18절에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나의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고뇌에 빠집니다. 이 이상 하나님께서 그 자신을 머물게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에게 더 용기를 북돋아 주심을 발견할 수 있고, 또한 환란이 끝나도록, 그리고 상처를 고쳐줄 수 있는 것 같게 보이지 않으며 하나님은 냉혹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의심없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의 의지가 연약해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원한 힘”이시요,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신 분이시며 그분이 이스라엘 백성의 힘이 되십니다. 이방인들에게는 사명이나 삶의 목표가 없기 때문에 고뇌와 불행감을 느끼지 못했으나 오직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고뇌와 고난이 따름은 우리의 사명과 신앙의 목표를 이를 수 있는 강건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은총임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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