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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환상과 소명 (겔 0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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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에 대 한 상세한 논의는 환상의 의 미 를 이해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이 환상의 중심사상은 하늘의 불수레와 생물 그리고 생명을 주시는 땅이란 말들에 나타나 있습니다. 하늘의 불수레는 여호와의 움직이는 용상을 가리킨 말인데 이 수레는 어느곳 어느 방향을 막론하고 가고 싶으면 아무데나 갈 수 있는 수레라고 합니다. 이 수레의 네 바퀴 둘레에는 눈들이 가득차 있다고 하는 데, 이것은 세상을 두루 살피시는 하나님의 강한 투시력을 상징화한 표현입니다. 예언자는 이같은 표현 양식 가운데서 은연중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팔레스틴이라고 하는 제한된 나라와 또 그 나라 성전 안에 있는 신의 용상만 점령하고 계신 분이라는 통속적인 생각을 타파하고, 아무데나 계시고 어디서든지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역사안에서 인간을 찾아 만나 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은 역사적인 환경과 조건에 얽매일 수 없을 분이신 데 사실 이런 교훈을 재삼 강조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1. 네 생물의 형상(4-14절) 성경은 역사적 책입니다. 창조적 역사, 인류 발달의 역사, 왕국의 역사, 타락의 역사, 구원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 성경입니다. 물론 역사의 중심은 인간입니다. 사람이 걸어온 길이 성경에 그림처럼 잘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역사과정속에는 인간의 역사 아닌 것도 끼여 있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할 수 없는 일, 사람의 머리로 생각할 수 없는 일이 성경에는 삽화처럼 끼여 있습니다. ① 출 3장 모세가 호렙산에서 본 상황 ② 출 24장 모세와 아론과 70인 장로들이 본 천상 세계 ③ 사 6장 이사야가 본 성전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 ④ 고후 12장 바울이 삼층천에 올라가 본 신비한 체험 이상은 성경에서 잠깐 잠깐 보여준 신비한 장면이고 성경 한 권 전체가 신비와 환상으로 된 책이 있습니다. 신약의 요한계시록, 구약의 다리엘서, 에스겔서, 스가랴서들은 그런 편이 환상과 계시의 책입니다.

(1) 환상이란 무엇입니까? 사람들 중에는 환상을 본 사람이 있습니다. 꿈에 환상을 보는 수나, 꿈이 아닌 생시에 말짱한 정신상태에서 환상을 보는 예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 때에 자기가 행여 꿈을 꾸는 것은 아닌 지 자기의 살을 꼬집어 가며 확인했다는 고백도 들어 봅니다. 또 어떤 사람은 꿈도 아니고 생시도 아닌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았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것들은 다 심신의 피로에서 오는 정신적 착란으로 보지만 실제로 환상을 체험한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면 부인할 수 없는 확증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영물입니다. 사람은 육과 감각만으로 된 동물이 아닙니다. 사람은 신비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영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지각과 육감이외에 영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사람이 볼 수 없는 세계를 생각하고 꿈에라도 볼 수 있고 환상을, 볼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사람은 지상에서 영계로 건너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의 세계와는 차원이 다른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극히 제한된 인간적인 것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이기에 하나님은 인간을 초월해서 무엇이나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울타리 안에 갇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신이라면 그 신은 인간세계 안으로 들어 올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을 자기의 세계로 데려 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세계로 들어온 것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하나님의 세계를 보여준 것이 이상이요, 환상입니다.

(2) 에스겔이 하나님의 계시로 본 영계의 환상은 어떤 것입니까? 에스겔은 그가 여호와 앞에 제사장으로 봉사한 지 제 30년이 되는 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있는 동안에 환상을 보았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유대의 마지막 왕 여호야긴이 포로되어 간 지 제 5년이 되는 4월 5일 갈대아 땅 그발강 가에서 여호와의 영광을 목격했습니다. 에스겔이 본 환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북방으로부터 폭풍과 구름이 몰려오고 번개가 번쩍였습니다. 그 속에 단쇠 같은 것이 보이면서 사람 형상의 생물이 나타났습니다. 그 생물은 4개의 얼굴을 가졌는데 앞은 사람 얼굴, 오른쪽은 사자 얼굴, 왼쪽은 소의 얼굴, 뒷편은 독수리 얼굴이었습니다. 생물의 다리는 곧고 발바닥은 송아지 발바닥 같이 불에 단 구리빛이었습니다. 각 생물은 4개의 날개를 가지고 있어 둘로 몸을 가리우고 둘은 서로 이어져 있어 그 날개를 펴서 날 때는 번개 같이 신속하며 생물이 일제히 앞으로 행진 할 뿐 뒤로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이 생물들의 말은 각각 한 얼굴에 하나씩 4개의 바퀴가 있었습니다. 바퀴들의 형상과 구조는 바퀴 안에 바퀴가 있으며 바퀴둘레에는 눈이 가득했습니다. 이 바퀴들은 땅위에만 구르는 것이 아니라 공중을 날기도 하며 그 방향은 신이 가려는 방향으로 생물들과 같이 행동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생물들의 머리 위에는 수정 같은 궁창이 펼쳐 있는데 궁창에는 서편으로 광채가 나는 데 광체 속에는 비오는 날 무지개 같은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3) 네 생물의 환상은 어떻게 해득해야 합니까? 이 환상은 문자나 문맥으로 다 해득할 수 없습니다.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원형 그대로 보여준 것이 환상입니다. 그러므로 환상은 환상그대로 보아야 합니다. 듣는 것보다 보는 것이 더 직접적이고 문자보다 형상이 더 직접적인 보다 환상전체에서 느끼는 영감과 느낌이 중요합니다. 계시는 바로 해득해야 하고 아무렇게나 자기 나름대로 의미를 붙여서는 안됩니다. 환상을 해득하는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1) 환상을 보여주는 이가 이것은 무엇이라고 말해주는 것이 있습니다. 계 1장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오른손에 7별을 잡으시고 7금 촛대 사이를 다니시는 장면이 나습니다. 거기에 인자 같은 이가 요한에게 이르기를 7별은 7교회 사자요, 7촛대는 7교회라고 일러줍니다. 에스겔이 본 환상에도 직접적인 설명이 있습니다. 28절에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이요, 모양이라 했습니다. 에스겔이 본 환상은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2) 성경에 나오는 다른 환상과 비교해 보므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눈 같이 흰 광채, 물에 단 주석, 번개와 횃불 황금의 띠, 많은 물소리 같은 음성, 이 모든 것은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남을 뜻합니다. 또 구름은 여호와의 임재를 뜻합니다. 시내산 상봉에 구름, 모세의 장막에 내린 구름, 지성소 안에 가득한 구름, 이것들은 모두 환상입니다. 3) 사리에 비추어 보며 특히 성경을 해석하는 일반적 원리에 따라 해석합니다. 무지개는 언약을 뜻합니다. 검은 색은 사망과 죽음을 뜻하고 흰 색은 충성과 승리를 뜻합니다. 에스겔이 본 네 생물 중 사람은 지상의 주권자요, 사자는 짐승의 왕, 소는 가축의 대표, 독수리는 공중의 지배자, 또 사랑의 얼굴은 지혜를 상징하며, 사자의 얼굴은 위엄과 정복, 소의 얼굴은 순종과 희생, 독수리의 얼굴은 신속함과 심판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4) 에스겔이 본 환상 전체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에스겔이 본 광경 전채는 하나님의 영광의 모양입니다. 그 영광과 중심은 보좌에 앉으신 인자 같으신 어린양 예수입니다. 그는 사람의 지혜와 사자의 위력과 소 같은 헌신과 독수리 같은 민첩으로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모양과 형상은 달라도 뜻은 하나요, 의지도 하나입니다. 신이 가려는 방향으로 생물과 바퀴는 움직입니다. 완전한 협조와 협력이 따릅니다. 앞으로 나아갈지언정 뒤로 돌이키는 법이 없습니다. 그 영향력은 땅 끝까지 이릅니다. 땅 뿐 아니라 공중까지도 제압합니다. 그의 수레바퀴가 구를 때 티끌이 불에 소멸되듯 무서운 심판이 따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에스겔이 본 환상은 하나님의 위엄찬 영광이 하늘과 땅과 우주전체를 석권하고 있음을 말해준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2. 네 바퀴 이상(15-25절) 모든 창조물 위에 높이 솟아 있는 불수레는 모든 자연 만물이 여호와의 통치권 아래 있다는 사실을 상징합니다. 까다롭게 보이기도 들리기도 하는 듯하나 생물의 얼굴 곁에 바퀴가 있고 그 안에도 바퀴가 더 있는 듯하며 생물과 같이 행할 때 같이 행하는 바퀴 같은 것이 보입니다. 바퀴의 모양은 황옥 같습니다. 이 계시의 이상은 실로 조심스럽게 계시의 영의 역사로 받은 것입니다. 위로부터 전체에서 배까지 받는다면 영의 상징인 바람, 구름, 불, 금속의 빛남이 보이고 거기서 4생물이 보여집니다. 이런 영의 활동이 있은 다음에 그리스도의 역사에 해당한 생물이 보였습니다. 거기 숯불과 횃불이 오르내리었고 광채가 나고 번개가 번쩍였습니다. 그 다음에 바퀴가 나타나 보였습니다. 이런 이상이 다 한 가지로 일치하게 조화를 이룹니다. 슥 4:6에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신은 바퀴에 해당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신으로 지배함을 받아야 합니다. 일상생활에 있어 흠없게 성도다운 삶이 있다 할지라도 뒤에서 오는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사람을 구원합니다.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바퀴의 역사인 것입니다. 여기 불이 작열한 화염으로 불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위에 성령의 대역사로 3천이나 구원받은 사실은(행 4:4) 다 바퀴의 역사인 것입니다. 조직도 잘 되고 목회방법도 정당하여 짜임새 있게 일하는 역꾼이라도 바퀴의 역사가 없으면 새 신자는 나오지 않습니다. 행 13장에 선교사를 파종한 사실에서도 이런 생물의 양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순서가 전개되어 선교사가 탄생된 것입니다. 그 바퀴의 형상과 그 구조는 넷이 한결 같은데 황옥같고란 말은 “그 몸은 황옥 같고”(단 10:6) 계시록의 여러 보석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주님의 현현의 양상이라 할 것입니다. 이 황옥이 나타나는 곳에 거기 큰 바퀴가 나타납니다. 보석은 순수한 결정체를 말합니다. 그 구조는 넷이 한결 같다고 이 네 바퀴는 동서남북으로 향한 네 생물과 같이 하나에 하나씩이라 그 구조가 같다함은 복음의 역사는 세계 도처에 한결 같은 것입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이는 한결 같음입니다. 바퀴안에 바퀴가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갈2:20에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입니다. 내가 기도하거니와 실은 내 속에서 주제서 기도하여 주십니다. 생물이 행할 때 바퀴도 행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를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그가 어디 역사하실 때 이 바퀴도 따라 역사하십니다. 풍운화금(風雲火金)으로 태어난 사람, 사자, 소, 독수리의 역할을 하여야 할 생물이 동하는 곳에 바퀴도 동하고, 생물이 멎는 곳에 바퀴도 멎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형상을 나타내게 되어진 생물이라 이 생물이 동하는 대로 동하고 정하는 대로 바퀴가 정합니다. 이 생물을 통하여 복음역사가 활발하여 집니다. 생물이 가는 곳에 역사가 진행됩니다. 본문에 생물의 신이 그 바퀴 가운데 있음이라고 생물의 주가 곧 그 영이요 신입니다. 바퀴 가운데 그 신이 계심입니다. 그 신의 역사에 따라 생물이 순종하건만 생물이 가면 바퀴도 가고 생물이 오르면 바퀴도 오르게 됩니다. 이런 지경에 이르러 역사는 진행함이니 성령의 묘가 여기 있다 할 것입니다. 생물인 내가 가는 곳에 바퀴가 따라 간다 함인 것입니다.

(1) 에스겔은 수레를 지켜 보며 생물들의 머리 위에 있는 궁창을 지켜보았습니다.

(2) 선지자는 궁창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았고 천사들의 날개 소리를 들었습니다(24절).

3. 소명을 의식합니다 현대인의 머리는 비어 있습니다. 돈과 오락과 쾌락을 빼버리면 텅빈 두개골 뿐입니다. 현대인의 머리 속에는 이상도 없고 환상도 없고 비젼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세대를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말세에 나의 남종과 여종에 게 성령을 물붓듯 부어주리라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요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했습니다. 꿈을 꿉시다. 환상을 봅시다. 어떻게 하면 꿈을 꾸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환상을 보겠습니까? 꿈과 환상은 내가 보고 싶은대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원하는 대로 볼 수 있는 것은 환영입니다. 그것은 마음의 그림자요 두뇌의 작용입니다. 환상은 하나님 편에서 보여 주지 않으면 아무도 볼 수 없습니다. 내 본 것만 환상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본 것도 환상입니다. 환상은 내가 체험한 것만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본 환상도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일찌기 많은 인류의 가슴에 영원히 간직할 환상을 그의 사랑하는 사도 선지자를 통하여 이미 주셨습니다. 에스겔, 다니엘, 이사야, 사도 바울, 사도 요한 이들은 모든 인류를 대표해서 하나님께로 오는 환상을 본 자들입니다. 그들이 본 환상은 그들만의 환상이 아니고 인류전체의 환상이었습니다. 꿈을 꾸고 환상을 보기를 원해도 좋습니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이미 사도 선지자를 통해 주신 환상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에스겔이 본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환상을 그대로 우리들 마음속에 환상으로 받아 들입시다. 우리가 비록 이 세속 세상에서 살지만 꿈은 하늘에 두고 삽시다. 꿈이 이루어질 날이 있을 것입니다. 환상보다 더 아름다운 세계를 볼 날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불수레위에 4개의 얼굴을 가진 신비의 영물에 대찬 환상을 우리들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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