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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스라엘의 근본 상태 (겔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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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은 지금 바벨론에서 포로들과 함께 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있는 예레미야가 에스겔이 바벨론 포로들과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위해 글을 쓴 것처럼, 에스겔 역시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거주자들을 위해 글을 썼습니다. 바벨론 포로들에게는 위안이 필요하였으므로 예레미야가 그들을 위로하는 글을 썼으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참회가 부족하였으므로 에스겔이 그들을 정죄하고 질책하는 글을 쓴 것입니다.

1. 교회 내에서의 도덕적 타락을 책망했습니다 에스겔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그의 백성으로서 그를 섬기라고 부름받은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은 인류 전체의 죄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사람들의 죄에 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1) 도덕적 타락은 모든 사람에게 인식되어져야 합니다. 구원에 있어서 무엇보다 먼저 죄를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원죄와 자범죄가 있습니다. 죄있음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영혼의 비극적인 상처들은 그 밑바닥까지 헤쳐져야 합니다. 죄의 인식은 우리 자신의 독자적인 능력에 의해서 생겨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원죄를 지닌 죄인으로 태어날 때부터 비참한 존재이지만 우리 상태를 알지 못합니다. 죄에 대한 진정한 인식은 외부로부터 이와 같은 상황으로 귀결되어야 합니다. 영감을 받은 선지자가 말을 해야함은 필수적인 일입니다. 죄를 인식케 하는 것은 성령의 역할입니다.

(2) 도덕적 타락은 범죄행위에서 드러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는 가장 악한 죄로 이방인의 죄입니다. 죄악은 원래 하나님의 본성에 반대되는 것입니다. 죄악은 하나님을 노하게 하는 도전일 뿐 아니라 하나님이 증오하시는 가증한 것입니다.

(3) 예루살렘의 죄는 특별한 의미에서 우상숭배 죄가 심했습니다. 예루살렘 주민은 높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 자신들의 죄를 깨닫는 점에서는” 게을렀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장점을 통찰하기를 좋아하므로 자신들의 단점을 보지 못합니다. 자신의 결점을 과소평가하려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 죄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것 때문에 우리에게 행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를 바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2. 선지자의 임무와 인간의 모습

(1) 선지자의 임무 3절에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네 근본과 난 땅은 가나안이요 네 아비는 아모리 사람이요 네 어미는 헷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은 본래는 가나안 족속, 아모리 족속, 헷 족속이 살고 있었던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족속들을 물리치시고(출 3:8-17). 그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루살렘은 이방의 도시였으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 하나님의 도시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근본은 이방 사람으로서 하나님도 없고 율법도 없이 살던 자들이었습니다. 선지자란 히브리어로 “나비”란 말로서 “외친다”, “부른다”, “말한다”라는 뜻으로 하나님에게 강제적 소명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입니다. 에스겔도 이러한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이러하시다하라 하시더라(11절)고 했습니다. 자기 말을 전하는 선지자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선지자인 것입니다. 선지자는 위대한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위임해 주시는 말씀을 대로 전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선지자는 백성들이 듣기 싫어하는 바른 소리를 외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백성이 듣기 싫어하는 소리를 외치다가 투옥까지 당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그는 참선지자였던 것입니다. 선지자란 그 시대의 양심이며 횃불과 같은 존재입니다. 사회제도의 죄악과 백성의 범죄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밝히고 살아 있는 양심으로 지적하는 자입니다. 다윗 왕의 권세 앞에서도 담대히 죄를 고발한 나단 선지자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만을 두려워하는 자입니다. 따라서 죄를 지적하지 않는 자는 거짓 선지자입니다. 죄를 고발치 않는 외침은 거짓 설교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는 회개의 외침이였고 군중들은 그 설교를 듣고 어찌할꼬 하며 회개를 하였습니다. 백성이 회개를 하도록 하는 것이 선지자의 임무입니다.

(2) 인간의 모습 1) 죄인입니다. 4절에 “너의 난 것을 말하건데 내차 날 때에 네 배꼽 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벗어 정결케 하지 아니하였고”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죄인입니다. 원죄가 있습니다. 도덕적인 인간도 죄인이요, 성인성군도 죄인입니다. 시 51:5에 “내가 죄악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그런 인간의 부끄러운 죄악을 씻음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의지할 때만이 가능합니다. 십자가에 대한 믿음만이 죄악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입니다. 2) 긍휼을 구하는 것입니다. 5절에 “너를 돌아 보아…… 여긴 자가 없었으므로”라고 했습니다. 포도나무에서는 포도를 맺고 가시나무는 가시 열매를 맺는 법입니다. 포도나무 열매를 맺고 싶으면 포도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의로운 열매를 맺고자 하면 죄인과 본질을 벗어야 합니다. 예수님에게 칭찬받은 세리의 기도하는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긍휼을 구할 때 인간은 의로워질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본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구원의 길도 알지 못하고 돌봐주는 것이 없이 비참한 상태에 버려진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려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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