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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 역사의 꿈 (단 01: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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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으로부터 촌부에 이르기까지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으로부터 가정과 사회 국가와 세계 인류가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합니다. 꿈나무라는 연속극 주제가에 “이쪽 가지 건강에 열매, 저 쪽 가지 황금의 열매, 지위의 열매, 명예의 열매, 행운의 열매 주렁주렁 열매라. 세상 소망 다 품어보고 하고 싶은 일 다 해봤지만 돌아온 것은 너희들이여 잘 살아라 나의꿈나무 사랑하는 아들 딸들아“입니다. 가슴 뭉쿨하게 부모의 공감이 가는 노래이면서 좀 생각해 들어가면 반성을 하게 되고 비관하게 하는 노래입니다. 너무도 단순하고 부모의 편에서 건강하게 성공해서 내 자녀 잘 살기를 축원하는 부모의 심정은 좋지만 그것 뿐입니다. 사회 의식도 역사 의식도 없고 복지 세계의 꿈도 없습니다. 부모의 꿈나무 자녀들에게 거의 꿈이 새세계 건설의 꿈으로 통하는 통로가 있으면 좋겠다는 느낌을 가집니다. 오늘 봉독한 구약 다니엘서에는 수난 민족 이스라엘 역사의 꿈을 기록한 예언서입니다. 나라가 망하고 강대국에 예속되며 포로의 생활을 하는 수난의 때이니까 비참한 역사의 기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꿈나무를 키워왔습니다. 그것이 어린 소년들다니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입니다. 이 네 소년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을 위하여 수난의 역사 속에 심어놓은 꿈나무였습니다. 이 네 손년은 인물 좋고 머리 좋고 장래에 큰 사람이 되겠다고 인정을 받아서 선발되어 인류학교인 궁중에 있는 국립학술원에 입학되었습니다. 최고의 명예라 할 수 있습니다. 기숙사 생활은 상류사회 가정 같고 음식은 고기와 산해 진미와 상품 포도주와 기름진 영양이고 교수는 당대의 석학이였습니다. 그러나 네 소년은 그 호화판 속에서 가난과 고난받는 겨레를 잊지 못했습니다. 저들은 미식과 진미, 사치와 낭비, 음주와 연락의 풍조에 동화되기를 거절했습니다. 채소와 소찬으로 집에서와 같은 식생활을 하자고 그리고 율법에 지시대로 살자고 결심했습니다. 정신차리고 열심히 공부해서 내일을 위해 실력을 기르자고 서로 다짐했습니다. 바벨론의 수재들 틈에서 외모도 더 뛰어나고 건강하며 머리도 두각을 나타내어 온 나라 학자들보다 지혜 총명이 십배나 더 했다는 얘기입니다. 17절의 기록을 보면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고 학문과 재주에 더 명철하게 할 뿐 아니라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게 했다고 했습니다. 이 청순한 정신은 궁중에 들어가기 전 저들 가정 교회에서 받은 교육의 열매였던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어느 교사의 수기에 “비오는 날” 이야기가 있습니다. 길에 물이 고였습니다. 학생들이 모두 철벅거리고 혹은 뛰어서 혹은 돌아서 가는데 한 학생이 돌을 주어다가 놓아서 그 돌을 딛고 건네게 했습니다. 그 학생은 성적이 중간 이하였습니다. 교육과 함께 인간 형성이 문제입니다. 바른정신, 바른생활을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가정교육은 인간 형성에 더욱 중요한 기관인 것입니다.

1. 가정 교육은 세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1) 과일 보호형 과잉보호형은 너무 보호해서 학교에 가고 오늘 일, 숙제을 하는 일, 옷을 입고 이불 자리 펴주는 일까지 모두 어머니가 해 주어서 혼자는 아무 것도 못하는 아이가 됩니다. 결단성 없고 실행력이 없고 의존심만 강해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무능아를 만드는 경우입니다.

(2) 방임형 방임형은 모유가 아닌 우유로 먹이는 모성분리에서 시작해서 자녀에게 자유를 줍니다. 개방적으로 키웁니다. 그것이 제멋대로 사는 망나니 문제아를 만드는 경우입니다. 방임이 무궤도한 생활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학생은 세수도, 치아도 씻지 않고 학교 오길래 교사는 “세수를 하고 학교에 와야 할 것이 아니냐”고 책망하니 그 학생은 “내가 세수를 하고 안 하고는 내 자유 아닙니까?”라고 했습니다. 반항형이 곧 방임형입니다.

(3) 과중부담형 과중부담형은 공부해라, 숙제해라, 자지 말아라, 놀지 말아라, 100점이 95점이 됐어 성적이 떨어졌구나, 1등 자리 내놓아서는 안된다, 책벌레, 점수벌레 아이들인데 가정이 감옥이요 학교가 전쟁터요 동료들이 다 원수들입니다. 평화, 협조, 사랑의 봉사는 모르는 자입니다.

2. 교회 교육은 두 가지 형으로 합니다

(1) 하나님의 자녀라는데 기초를 두고 교육을 실시합니다. 그래서 무릎에서 앉아서 가르치는 내용이 “주 너희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서 사랑하라”는 교육을 어릴 때부터 가르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교육입니다. 이 교육이 바로 모세에게 나타난 가정 교육의 위력이요, 다니엘, 사드락,.메삭, 아벳느고에게 나타난 가정 교육의 위력입니다. 이것이 교회 교육이 담당한 다음 세대 꿈나무를 기르는 사명입니다. 이스라엘 가정 교육에서 자라난 다니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와 같은 새 역사의 꿈나무처럼 크리스챤 가정교육과 교회학교에서 새 역사의 꿈나무가 힘차게 자라기를 바랍니다.

3. 금일 우리 교회와 가정이 시행해야 할 교육이 무엇입니까? 좋은 환경이 반드시 좋은 의지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약한 의지를 만들기 쉽습니다. 그러나 환경을 만드는 것이 의지를 좋게 하기 보다 훨씬 쉬우므로 이 시대 사람은 자비와 선한 뜻의 이름으로 죽은 환경만들기 급급하여서 좋은 의지를 지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지금 전도는 노파가 아이 기르듯이 듣기 좋고 보기 좋은 것 십자가를 지지 않은 안일과 영달과 하나님을 자기의 확대로 아는 즉 욕망을 채워주라는 식으로 합니다. 마침 폐병환자에게 안마고약으로 위안시키는 부흥전도가 대성황입니다. 그들이 보는 점이 사람의 주위에 머물고 그의 중심에 이르지 않으므로 실패로 돌아가는 일이 많습니다. 그들이 따라 다녀도 갈증은 나날이 높아져 같은 욕망의 달성인 욕심 때문에 그러합니다. 환경과 현실 이상의 참도와 의지를 가졌으면 어디든지 천국을 만듭니다. 그릇된 출발에서 혹은 산중으로 가서 가정 파괴, 패륜 행위, 감흥 도취에 의식적 비판을 상실하여, 정신 이상, 가정의 분쟁, 교회 분열을 시키며, 병 고친다 하여 신문에 나타나는 살인사건이 속출됩니다. 태초에 혼란, 무질서한 세상에 빛이 있으라 하여 질서를 정돈하시던 말씀의 도가 있어야 하겠으며 바벨론 나라의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과 같은 참 신앙의 사람이 이 시대에 더욱 긴요함을 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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