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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단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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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서 나타난 훌륭한 믿음을 세 가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세상 권력에 대한 충성보다 하나님께 대한 신앙양심을 지켰습니다 어느 시대 어는 지역을 막론하고 인간생활 전반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는 권능을 가진 구조를 찾는다면 뭐니뭐니 해도 국가 권력일 것입니다. 국가권력은 법률을 통해서 사람의 생과 사를 주관할 수 있습니다. 고대 바벨론 국가에 금신상은 제국의 권위와 황제의 위업을 상징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앞에 절하는 것은 종교적인 의식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금신상 앞에 절하는 것은 바벨론 제국에 대한 애국의 길이고 황제에 대한 충성과 헌신의 표시였습니다. 왕명은 곧 법이고 국가질서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신앙의 갈등과 고민이 있습니다. 장로교 헌법 제 1장은 법의 원리로서 “양심의 자유”를 먼저 선포하고 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하나님을 세상보다 더 경외하여 하나님을 우선으로 하였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처럼 백절불충의 신앙이 그리운 때문입니다.

2. 세 사람의 신앙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대한 확고부동한 신앙입니다. 세 친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왕명을 거역하여 풀무불에 던져져 죽게 되어도 하나님께서는 능히 구해 주시리라는 것을 말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구원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 임금 역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체험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시 86:7에 “나의 환란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며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환란날에 하나님께서 구해주신다는 확고한 신양은 믿는 자에게 기적을 일으킵니다. 행 27장에 보면 276명을 태운 배가 지중해를 향해할 때 큰 풍랑으로 구원의 요청을 할 수 없는 절망의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사도 바울은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 하신 하나님을 믿노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담대하게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나는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라고 외칠수 있었던 것입니다. 욥기를 보십시오. 극심한 고통과 환란 중에서도 고백하기를 “하나님은 여섯가지 환란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란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못하게 하시며”라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에, 시련을 참고 견딜 수 있었고 오히려 시련을 통해 더 큰 하나님의 은사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고난이나 위기가 밀어 닥칠 때 낙심하지 맙시다. 두려워하지 맙시다. 고난은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도전이요 기회입니다. 겸허하게 하나님의 뜻을 찾으십시다. 고통이 밀어닥칠 때 원한을 품지 맙시다. 불평하지 맙시다. 자신을 반성하고 삶의 방향을 수정하는 기회로 삼으십시다. 어려운 문제에 부딪힐수록 하나님 앞에 겸허하게 엎드려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을 찾아 결단시켜 가집시다. 하나님은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보내 주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놀라운 사랑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이 위대한 사랑을 지니신 하나님을 우리가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서 주님께서는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구원을 체험케 합니다.

3. 불의와 타협하지 않은 믿음입니다 본문 18절에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하올 줄 아옵소서.” 지금까지 이 세 사람의 믿음은 물론 풀무불 속에서도 하나님은 꼭 자기들을 구원하여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이 세 사람의 믿음은 의뢰가 있는 믿음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산성이시오, 나의 의지할 성곽이로다” 하고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환난에서 건져 주실 것을 믿고 우리는 그에게 “찬송, 영광, 할렐루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 하시거늘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을 면케 해달라고 기도하셨으나 “그 고통을 면해 주시지 않으셔도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나는 하나님의 원대로 십자가를 지겠나이다.” 의리있는 순종입니다.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내가 실패와 가난과 질병과, 고통 속에 하나님의 도움을 요구하였으나, 하나님이 아무 응답도 도움도 없으시다고 해도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절대로 믿는 의로의 믿음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에게는 전천후적인 믿음이 있었습니다. 농사에 전천후적인 영농법이 있습니다. 기후에 관계없이 겨울이나 여름이나 똑같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핍박 속에서도 건져 주실 것을 틀림없이 믿는 확신하는 신앙을 가졌습니다.--그리 아니 하실지라도--의뢰의 믿음을 가졌습니다. 전천후적인 믿음이였습니다. 우리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와 같이 불굴의 신앙, 확신의 신앙, 의뢰의 신앙으로 일관할 때 성숙한 신자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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