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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저울 (단 05: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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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바벨론 왕국의 최후를 배경으로 합니다. 벨사살 왕은 자신이 죽는 날에 대연회를 엽니다. 1천 명의 고관귀족과 그 부인들과 소실들이 초대되었습니다. 왕국이 이 대연회장은 바벨론 고적에서 발굴되었습니다. 폭이 27m, 길이가 52m입니다. 이 대연의 도중에 손가락 하나가 나타나 분석 “석고로 칠해진 벽”에 글씨를 썼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손을 가리키며 개인의 생활이나 역사 속에 개입하여 죄악을 경고하는 하나님의 역사을 나타냅니다. 이 글씨를 다니엘이 풀게 되는데 다니엘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회개를 외치고 바른 길로 인도하는 목자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1. 벨사살 왕이 죽는 날 그날 대연회를 베풀었습니다 쾌락과 물질적 풍요의 결정을 상징하는 이 대연회가 바벨론 제국이 패망하고 벨사살 왕이 죽는 마지막 날에 개최되었다는 점에 주목합시다. 그들은 시대의 긴박성에 대하여 마음을 쓰지 않았습니다. 회개할 때 구원의 날은 긴박성이 동반됩니다. 마시고 놀고 먹을 것이 풍족한 대연회장은 회개나 신앙 같은 문제는 완전히 제거된 “망각된 사람”이었으나 심판은 갑자기 임했습니다. 예수는 회개의 긴박성에 대하여 노아의 때를 인용하였습니다. 마 24:38-39에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시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니라.” 즉 물질적 쾌락(먹고 마시고)과 인간적 행복추구(장가가고 시집가고)에 온 정신이 팔려서 자신의 조리르 자각하지 못하여 자신에게 임할 심판을 자각하지 못하고 대연회장에서 재미에 취해 있을 때 갑자기 멸망이 왔던 것입니다. 키에르 케코르는 그의 저서 “자기 검증과 자기 심판”에서 인간은 스스로 파멸로 이끄는 두 개의 문제점을 가진다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는 폭도(riot)이며 다른 하나는 잠잠함(stillness)입니다. 폭도란 외부에서 우리를 공격하는 시끄러움입니다(extereior hubbub). 풍요와 재미와 쾌락의 공격입니다. 이 폭도의 시끄러움 속에서 회개의 긴박성, 구원의 간절함, 참 가치의 추구 등 정말 고귀한 것들이 마비됩니다.

2. 회개없는 고요함이 문제입니다 문제점은 죽은 것 같은 잠잠합니다. 이것을 내적분열(inner dissolutin)이라고 합니다. 너무 평안하고 안정되고 필요한 것이 없어서 회개니 구원이니 하는 따위의 필요성을 안 느끼는 죽음의 고요함입니다. 그러나 이 두가지는 모두 인간의 영성을 의미하는 회기를 지연시켜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다니엘서와 요한 계시록은 모두가 갑자기 오는 변화와 시대의 긴박성을 말하므로써 내일 회개할 것이 아니라 지금 곧 회개하여 구원을 얻도록 종말을 사는 신자들을 자극하는 경고장입니다. 점차주의 즉 “내일 봉사하지”, “차차 고치지”, “늙으면 예수 믿지” 하는 생각을 파멸의 사자로 규정하는 것이 다니엘서입니다.

3. 하나님을 향락의 도구로 삼는 것이 문제점입니다 벨사살의 대연회에서 지적될 문제는 하나님을 즐거움의 도구로 삼았다는 점입니다. 연회가 한창 벌어지자 왕은 아버지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해온 “성전의 기물”들을 내오게 하고 거기에 술을 따라 마시게 하였습니다.이 사건은 나의 권력이 종교보다 높다는 교만을 나타냅니다. 또한 연회의 쾌락을 위하여 신성한 기물을 사용한 것은 종교를 하나의 도구로 전락시킨 것이었습니다. 이 때 벽에 손이 나타나고 아무도 해득을 할 수 없는 글을 이 손이 석고벽에 새겼습니다.

(1) 벨사살은 거룩한 것을 모독하다 멸망했습니다. 일찍이 거룩한 것을 욕되게 한고 멸망하지 않은 개인도 국가도 없습니다. 벨사살 왕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쓰던 금, 은, 기명들을 가져다가 술을 부어 마시며 하나님 대신 자기들이 금, 은, 동, 철 목석으로 마든 우상을 찬양했습니다. 우상숭배도 무서운 죄악이거늘 하물며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의 금 은 그릇에 술을 부어 마시며 우상을 찬양했으니 하나님의 분노가 폭발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거룩한 것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소유를 의미하는 것이며 구별된 것을 의미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된 것을 건드리거나 욕되게 하면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을 면치 못합니다. 거룩한 것을 존중히 여기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2)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다가 멸망했습니다. 6,25 전란 때 미군 비행기가 폭격할 때 반드시 한 두바퀴 돌면서 경고를 한 다음에 폭격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징계하실 때에 대번에 징계와 심판을 내리시지 않습니다. 먼저 양심의 음성을 통해서 다음의 주의 종들을 통해서 역사를 통해서 임합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무서운 징계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 즉시 회개하고 돌이키면 심판을 면하고 도리어 축복을 받습니다.

(3) 교만하다가 멸망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도 그 아들 벨사살 왕도 교만하다가 망했습니다. 천하에 자기가 제일이라고 교만하다가 멸망했습니다. 약 4:6에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라고 했습니다. 잠 16:18에 “교만음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했습니다. 웃시야 왕도 처음에는 겸손했으나 나라가 부강해지자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어버리고 교만해져서 문둥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다니엘은 소년 시절에 포로가 되었기 때문에 그 때를 약 15세로 보면 예루살렘 함락과 바벨론 멸망의 햇수로 따져 이 때는 다니엘이 이미 80세의 노인 이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다니엘은 소외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바벨론 국의 경제 부흥과 권력팽창의 호황 속에서 바벨론은 구원의 복음이 필요치 않아 사장시켰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는 찼습니다. 옛날 느부갓네살을 경고하던 다니엘이 벨사살 왕 앞에 나타났습니다. 다니엘은 벨사살왕의 죄를 지적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것을 모독하는 죄,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는 죄, 교만죄가 곧 벨사살과 바벨론을 망하게 하였고 이 죄가 하나님의 저울대에 무제가 아직 차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잠 16:5에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겸손하면 영예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권세, 물질, 자식도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지 참된 의미에서 내가 만들거나 내가 유지하거나 내가 영원히 소유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매일 매일 우리의 중심을 저울에 달아보고 계심을 깨닫고 하나님의 저울에 정량을 채우는 복받는 일을 많이 쌓아 축복받는 여려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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