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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왕국의 흥망 (단 05: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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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벨사살이 밤에 일을 당하였던 것에 대한 방향을 헤로도투스와 크세노폰의 작품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들은 비록 벨사살이나 그의 죽음에 대한 특별한 언급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으나 바벨론이 야간 공격으로 인하여 함락되었다는 사실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일이 주연이 벌어지고 있을 때 일어났다는 전승에 대한 뒷받침을 사21:1-10과 렘 51:39-57에 기록되어 있는 바벨론에 대한 신탁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에 의하여 벨사살에게 선포되었던 하나님의 심판은 이처럼 구체적으로 나타났습니다. 벨사살의 죽음은 모든 통치자들과 왕들에게,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하나님의 주권을 능멸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리라는 사실을 경고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들을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1. 바벨론 나라의 멸망과 메대와 바사 신흥제국 등장

(1) 그날 밤에 바벨론 제국이 망했습니다. 1) 벨사살 왕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30절에 “그 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라고 했습니다. 그 날 밤은 범죄로 무르익은 밤이었습니다. 육체적인 방탕과 교만과 우상숭배의 죄악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쌓던 밤이었습니다. 연희석 맞은 편 분벽에 손이 나타나 심판의 글을 썼던 밤이었습니다. 바벨론의 현자들은 이 벽서를 해석하는데 속수무책의 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이 등장하여 벨사살의 죄악을 탄핵했던 밤이었습니다. 바로 그 시간 메대와 바사 연합군은 바벨론 궁성까지 잠입하였던 나라의 비상시간이었습니다. 이런 밤에 벨사살은 술로 그 밤을 즐기다가 메대와 바사 연합군의 침공으로 붙잡히고 모든 바벨론 귀인들과 함께 떼죽음 당한 어처구니 없는 종말 이었습니다. 죽음은 마음이 과식과 과음으로 녹초가 된 자에게 올가미처럼 닥아온다는 사실을 주목하시라. 범죄의 결과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자초하게 한 것입니다. 2) 바벨론 왕국이 망했습니다. 그 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했다는 이 역사적 기록은 바로 그 시간에 황금의 제국 바벨론인 그 운명적인 종말을 맞이했다는 뜻입니다. 황금의 머리에서 이제 은으로 된 팔과 가슴으로 내려 왔습니다. 황금의 바벨론 제국이 은의 제국으로 넘어가는 역사적 순간입니다. 메대 사람 다리오가 바벨론을 점령한 것입니다.

(2) 메대와 바사 신흥제국이 등장했습니다. 31절에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때에 다리오는 육십 이세였더라”고 했습니다. 고레스와 다리오는 전쟁과 정복에 있어서 동역자였고 그래서 그들은 같이 지배하였습니다(6:28). 다리오가 62세였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입시다. 그의 조카였던 고레스가 그에게 우선권을 준 것입니다. 다리오가 62세였으니 이스라엘 포로생활 8년 되던 해에 그가 태어났으며 그 해는 예고니아와 모든 귀족들이 포로로 잡혀왔던 때이기도 합니다(왕하 24:13-15). 예루살렘에 극히 치명적 타격이 가해진 해에 태어난 왕이 바로 그 예루살렘을 위해 바벨론에게 복수하며 그 때의 상처를 치유한 셈입니다. 자기 백성에게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이처럼 심오하며 그들을 향한 그의 의사는 이토록 친절한 것이였습니다. 다리오와 고레스는 하룻 밤 사이에 천하 제국의 수령이 된 것입니다.

2. 바벨론 멸망이 주는 교훈

(1) 그날 밤 젤사살의 잔치는 슬픈 즐거움이었습니다. 1) 명분이 없는 잔치였습니다. 바벨론 대제국의 벨사살 대왕께서 마련한 잔치요, 1천 명의 귀빈이 초대된 잔치이고 보면 그 규모가 얼마나 크고 화려했을까는 불문가지입니다. 그러나 그 잔치의 성격이 그 엄청난 규모에 비하여 너무 빈약했습니다. 대체 무엇을 위한 잔치냐 전승기념도 아니고, 건국기념도 아닙니다. 벨사살 개인을 위한 축제입니다. 왕을 위해 나라가 있고 백성이 동원하고 국력과 국가 재력을 소모해야 하는 자치였으니 아무런 명분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2) 너무 저속한 잔치였습니다. 술과 여인, 노래와 춤 기껏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 그는 감히 성전용 금 은 기명을 함부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영광은 우상에게로 돌렸다는 것입니다. 언제인가 대학 입학 시험에 합격한 기쁨에 진탕 술을 먹고 놀다가 같이 마시던 패거리와 싸움이 붙어 그 자리에서 맞아 죽은 학생이 있었습니다. 모두들 즐거움을 기뻐하는 옳은 방법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기쁨이란 발악이요 아우성이요 몸부림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제외된 곳에 참으로 기뻐할만한 즐거움이 있을 수가 있을 것입니까? 3) 즐거움의 시간이 너무 짧았습니다. 1천 명의 귀빈과 궁녀로 더불어 대연을 즐기던 바로 그날 밤 벨사살은 피살되고 말았습니다. 그 날 밤도 제대로 넘기지 못한 인생이면서 대체 무엇을 그리도 즐거웠더란 말입니까? 그토록 많은 인원이 동원되고 물자가 소모되는 연희 시간이 이렇게 짧아서 참으로 슬픈 즐거움입니다. 과연 우수는 길고 웃음은 짧습니다. 성공의 축배가 마르기도 전에 실패의 고배를 그렇게도 빨리 쓰라림으로 바뀌여지고 박수와 갈채가 그렇게도 빨리 비난과 야유로 둔갑을 하는 세상이라면 인생은 대체 무엇을 노래하고 무엇을 그리도 기뻐 뛰였더라는 말입니까? 설사 웃음과 노래로 일생을 마친 호화판 인생이 있다고 합시다. 그러나 역시 불원한 장래에 영원의 문밖에 쫓겨난 채 지옥에서 영원히 슬피 울며 가슴치며 이를 갈아야 할 이방인들의 운명 또한 피장파장 아니겠습니까? 진정으로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즐거움을 누리는 것만이 참 축복인 것입니다.

(2) 제국의 흥망이 주는 교훈 1) 역사의 유한성을 보여줍니다. 여기 밤에 한 나라가 망하고 그 밤에 한 제국이 또 흥함이 바로 이 세상 역사 세계의 유한성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강할 때가 있으면 약할 때가 있고, 흥할 때가 있으면 쇠할 때가 있고,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다는 유한성의 법칙입니다.(전 3:1-10). 결코 이 세상에서 영원한 제국 영원한 제왕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2) 세상 왕궁의 죄악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심판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다고 하는 성경입니다. 하나님은 밤을 만난 소돔성과 고모라에 그 사자를 밀파했습니다. 하나님은 죄악이 만연한 노아 시대에도 심판을 감행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 시대를 심판했습니다. 바벨론 제국의 영적 도덕적 타락의 밤은 바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징조엿습니다. 그날 밤에 왕국이 망했다는 말은 바로 죄악의 밤이 깊어질 때 하나님의 심판이 있었다는 사실을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확실히 죄악의 밤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임하는 때입니다. 4) 밤의 역사는 왕국이 도래하고 있다는 교훈입니다. 죄악의 밤들은 무작정한 연속이나 반복은 아닙니다. 결코 역사는 무의미의 반복일 수는 없습니다. 역사는 미래를 향하여 전진하고 있습니다. 이세상 어두운 밤의 표시는 시간적으로 영적으로 의미를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의 의미의 밤의 개념은 앞으로 완전히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의 재림 왕국과 함께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재림의 빛을 받을 그 때 어둠은 물러가 버리게 됩니다(살전 5:2, 벧후 3:10). 고통과 번뇌와 죽음의 밤(욥 7:4, 시 30:5)은 큰 빛이 도래하는 아침과 함께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밤에 깨어서 아침을 기다리는 파숫군들은 아침을 목마르게 기다리며 밤이 경점을 살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세상 왕궁이 밤에 망하고 그 밤에 흥한다고 하는 역사적인 기록 앞에서 이세상 역사의 유한성, 타락성 하나님의 심판성을 교훈받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새하늘, 새땅의 출현, 새빛의 도래를 기다리는 소망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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