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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의 능력 (단 09: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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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 수직생활이 필요하며 수평생활도 소홀히 할 수는 없습니다. 이리하여 사람이 하나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의 대 강령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주신 열 계명이 곧 이 일이며 신구약 방대한 66권 말씀입니다. 이 교훈에 벗어지지는 아니합니다. 위로 하나님 을 공경하고 경외하는 길이 곧 기도입니다. 곧 우리 생활에 있어서 수직생활을 말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을 쳐다보고 묵상하며 하나님을 만납니다. 이 기도의 힘은 다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무엇든지 내 이룸으로 내게 구하면 다 행하여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기도할 수 있는 권세를 우리는 얻은 것입니다. 우리에게 권세나, 힘이라면 예수의 이름입니다. 더 큰 힘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여 주신 힘입니다. 우리 자체로서 얻는 힘이 있을 수 없으나 우리의 할 본분이 있습니다. 이는 죄를 자 복하는 일입니다. 병 있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신 야고보에서 보면 피차에 죄를 자복하고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다니엘은 자기의 조국 을 위해서 또 자기의 동포를 위해서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때에 자기의 열조의 죄와 방백의 죄와 온 국민이 죄를 범했다고 구체적으로 죄를 자복 하였습니다. 한마디 원망이 없습니다. 의인의 기도는 운동력이 있습니다. 누가 의인이겠습니까? 죄를 깨닫는 사람이 곧 의인입니다. 죄를 자복하는 사람이 의인의 반렬에 선 사람입니다. 예수는 죄인을 위해서 오셨고 죄인을 위해서 죽으시고 죄인을 위해서 자기를 다 주셨습니다. 그 이름도 죄인을 위해서 주셨습니다. 주님이 도성 인신하여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죄인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예수를 믿느냐 죄인이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죄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예수를 믿을 필요가 없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이란 죄인식과 정비례 한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일은 죄인식하는 일, 예수를 잘 믿는 일은 죄를 잘 찾아내는 일이라고 해서 틀리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기도 할 때 죄를 자복하고 기도하는 일보다 더 힘 있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본문은 다니엘의 기도로 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 멸망을 70년 앞둔(2 절) 절박한 기도였습니다. 그러나 서론적으로 예레미야가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다(2절)는 기사로 보아 그는 외국에 나가 살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있었고 조국에 대해 염려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결과로써 이 기도가 이루어졌는바 이제 그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1. 기도의 자세

(1) 다니엘은 기도에서 ‘우리’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닙니다. 즉 그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회개를 대신하여 회개하는 태도의 자세를 가치고 있습니다. 자신의 저지른 죄가 아니라 이웃과 동족이 지은 죄를 대신 기도하는 자세는 함께 책임지는 겸손한 자세입니다. 허물을 남 에게 전가하고 나는 깨끗하다고 하며 스스로를 높이는 바리새적 태도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은 가장 높은 수준의 믿음입니다.

(2) 다니엘의 기도자에게는 몹시 간절하고 심각합니다. 3절에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기도에 임하였습니다. 동 족을 위한 회개인데도 최고의 심각한 자세를 표하고 있습니다. 결사적인 기도입니다.

(3) 다니엘은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께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진 올바른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니엘이 이해하는 하나님이 4절에 드러나 있습니다. 1)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이시고 2) 언약을 지키시고 인자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즉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가진 하나님으로 고백하였습니다. ‘크신’ 하나님은 창조자요, 섭리자이신 하나님을 가리켰고 ‘두려워 할’ 하나님은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뜻하고 ‘주’ 하나님은 나와 인류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고백한 것입니다. 주를 사랑하고 곧 하나님을 믿고 계명을 따르는 자, 즉 말씀대로 사는 자에게 구원의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2. 회개의 내용 죄란 무엇입니까? 다니엘이 회개하는 내용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죄입니 다.

(1) 죄란 하나님께서 5절에 “패역하고 반역하는 것”입니다. 신에 대한 배신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 모르는 것, 주신 바 자유를 자기를 위하여 이기적으로 사용하는 것, 하나님보다 다른 “물질, 명예, 가족 등”을 더 섬기는 것 등이 모두 창조자에 대한 배신입니다.

(2) 죄란 “하나님의 음성을 청종치 아니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이 말을 여러 번 반복하고 있습니다(10-14절). 사탄은 언제나 자기의 음성을 청종하도록 유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 갈 것인가? 욕심을 이용해서 가면을 쓰고 접근하는 사탄의 음성을 따를 것인가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이 점을 생각할 때 우리는 너무나 많은 근원적인 죄를 지으며 살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 죄란 6절에 “주의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의 주의 종 선지자는 구약의 예언자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설교자를 통하여 메시지를 전하고 계십니다. 때때로 양심을 통하여 직접 말씀을 주시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대자연을 통하여 어린아이의 입을 통하여 혹은 원수를 통해서 진리의 말씀을 전해 주십니다. 예수께서 “귀 있는 자는 들을 지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상식 을 벗어난 표현이 아닙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귀를 언제나 기울이 고 있는 자세가 필요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3. 기도의 성격

(1) 기도는 인간의 정당한 요구가 아닙니다. 신의 자비만이 기도를 가능케 합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18-19절에 “우리가 주의 앞에 간구 하옵는 것은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오니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 하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인간의 의는 제아무리 깨끗하게 살고 양심적으로 행동했다고 자처해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인간은 모두가 대동소이한 죄인입니다. 마음 속 밑바닥까지 죄인 됨을 우리는 깨닫고 하나님은 또 우리를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의 죄인 된 모습을 관철합니다. 착한 일을 얼마큼 쌓는다고 죄인 이 의인이 될 수 없습니다. 아무 것으로도 구원을 구입할 길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의 길은 하나님의 자비를 의지하는 믿음입니다. 그러기에 기도 의 중심은 “하나님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의지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자비만이 나를 용서할 수 있고 구원할 수 있습니다.

(2) 기도는 자복 혹은 죄의 인정을 그 성격으로 지녀야 합니다. 다니엘은 4절에 “자복 한다”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나의 부족과 죄인 됨을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또한 다니엘은 개인의 죄뿐 아니라 동족의 죄까지도 공동적인 책임감에서 인정하고 자복하였습니다. 8절에 “수욕이 우리에게 돌아오고 우리의 열 왕과 우리의 방백과 열조에게 돌아온 것은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즉 통치자나 정치인들에게만 나라의 불행을 책임 지우지 않고 멀리 외국에 나와 수십 년을 살고 있는 이민자인 자기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자백입니다. 이런 책임의식은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예루살렘 멸망이란 민족적인 불행에 대하여 함께 책임을 느끼고 자복하는 기도의 성격은 모든 민족이 나아가서 인류가 같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형제애의 정신에서 나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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