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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께 돌아오라 (호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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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아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요, 여호와를 알지 못함이 죄의 근본입니다(잠 1:7). 영웅들과 지혜 있는 자들의 말로가 비참한 것은 무슨 원인입니까? 영웅들의 권세가 높아질 때 여호와를 알지 못하게 되고,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가 높아질 때 여호와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첫 왕 사울이 그러하였고,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그러하였고, 로마의 시저, 프랑스의 나폴레옹, 독일의 히틀러가 모두 그러하였으며 또 솔로몬, 볼텔, 다윈, 막스가 그러하였습니다. 오직 성자들의 최후는 다 만족하고 거룩했습니다.

1.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 이십니다. 주인을 모를 때에는 목표도 없고, 귀의할 곳도 알지 못합니다. 목표도 없고, 귀의도 없으니 부평초의 생활이 될 수밖에 없고, 비진리를 진리로 왜곡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진리를 진리로 아는 것이 죄입니다. 고로 영웅들이권세를 하나님으로 신봉하고 지혜 있는 자들은 자기의 지혜를 하나님으로 신봉했습니다. 그러니 세상은 죄 가운데 빠지게 되고 그 결과는 멸망 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정도를 버리고 외도하는 모든 것이 곧 죄라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며 또 자기의 정욕의 길을 자행할 때에 어찌 범죄 하지 않겠습니까? 여호와를 아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요, 생명이요, 영생입니다.

(2) 평강과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전쟁과 병과 고통이 없는 평화의 세상이 되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평강의 하나님을 따라 평강의 사람이 되지 못하면 하나님을 바로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벧전 5:10에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입는 은혜는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호흡하므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공기를 허락하신 은혜, 또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말씀을 주신 은혜 등 모든 은혜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며, 하나님은 은혜 그 자체이십니다.

(3)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속성이 사랑이십니다. 그가 얼마나 인간을 사랑하셨습니까? 창조하실 때부터 자기 형상과 같이 창조하셨고, 만물의 으뜸이 되게 하시고 만물이 그에 게 맡기고 낙원 같은 아름다운 동산에서 죄 없이 성결히 살게 하시며 좋은 짝이 되는 하와를 지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인간은 진화한 것이라 하며 하나님을 반역합니다. 그리고 만물은 인간이 주관할 것인데도 스스로가 만물을 숭배하며 우상으로 삼고 자기는 복종하는 노예로 전락해 버린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려고 자기 독생자이신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어 십자가로 대속사업을 완성하였으니 이 얼마나큰 사랑입니까? 그러므로 요1서 4:8에 “사랑하지 않은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분일뿐만 아니라 사랑 본체 그 자체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수없이 범죄 하였고, 하나님을 멀리하였지 만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마다 하나님은 용서해 주시고 선택한 민족으로 계속 보호해 주었습니다. 인간은 원수 된 인간을 향하여 마을을 돌이킬 수 없지만, 하나님은 진노를 돌이키셔서 용서하시는 분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까지 허락하신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4) 소망과 위로의 하나님 이십니다. 롬 15:13에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소망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요, 소망이 없는 민족은 죽은 민족입니다. 소망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소망이 넘치게 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고후 1:3에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이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 처하게 될 때 우리를 버리시지 않으시고 환난 중에서 이길 수 있도록 우리를 위로하시는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5) 영광의 하나님 이십니다. 행 7:2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포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 인간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인간의 본분을 다하는 자에게는 함께 영광의 자리에 이르도록 하시는 영광의 하나님이십니다.

2. 하나님을 아는 생활은 어떤 생활입니까?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자기만 아는 것에서 그칠 수 없습니다. 나와 함께 사는 이웃 모두가 하나님을 알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에릭프롬은 그의 저서 “사랑의 예술”에서 인간의 특성을 다섯 가지로 얘기했는데

(1)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2) 책임을 느끼는 것입니다.

(3) 존중하는 것입니다.

(4) 이해하는 것입니다.

(5)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이웃에 관심을 가져야겠고, 이웃에게 하나님을 전해 주는 책임을 져야겠고, 이웃을 존중하고 이해하며 나의 사랑을 베풀어 주어야 합니다. 구약 성서에 보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을 증거하라는 명령까지 받은 요나는 니느웨 성의 사람들이야 어떻게 되든 나와는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책임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도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냥 보고만 계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요 1서 4:8) 니느웨에 사는 사람들이 멸망할 것을 안타깝게 여기시고 다시스로 도망하는 요나를 돌이켜 니느웨로 가도록하셨고 요나를 통해서 니느웨를 구원했습니다. 비록 요나가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도망을 했지만 그가 회개할 때에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요 1서 1:9) 요나를 용서해 주시고 다시 그를 니느웨로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요나와 같이 하나님을 증거 해야 하는 사명을 받은 자들로 도망할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오직 순종하므로 우리의 이웃이 죄 가운데서 죽어가는 것을 보고 말씀을 증거하고 하나님을 알려야하는 책임을 느껴 그들에게 하나님을 증거 해야 합니다. 혹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손해를 볼 경우가 있더라도 이웃을 존중히 여기며 이해하고 받기 보다는 주는 생활을 해야만 하나님을 아는 자의생활이 됩니다.

3.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하나님이 지극하신 소원은 나에게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돌아와 돌아와 버린 자식이여 어서와 돌아와”, “죄 중에 빠져 있지 말고 돌아오라 책망할까 두려워하지 말고 돌아오라 네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같이 희게 할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씻어 주실 것이니 돌아오기만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이 선지자를 보내신 것은 돌아오라는 뜻이요, 모든 사도를, 모든 선교사를, 모든 전도자를 보내서 돌아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 백성들이 고집하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돼지 먹는 팥껍질 밖에 먹을 것이 없을 것입니다. 내 심령이 아직 주님 앞에 확실히 돌아오지 못하였습니까? 깊이 생각하고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여 주시는 그 하나님 앞으로, 모든 것이 풍성하신 내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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