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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스라엘에 대한 메시지 (암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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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선지자는 주전 810-783년에 이르는 26년간 활동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아모스서의 저술가로서 다음의 몇 가지에 대해 예언하였습니다. 1)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있는 주변 국가들에게 경고를 보냅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나라들이 멸망하리라는 것입니다. 주변에는 수리아, 블레셋, 두로, 에돔, 암몬 등 여러 나라들이 있었습니다. 그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힌 죄로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2)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멸망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배신하고 우상 섬기고 범죄 하여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계속해서 수난을 겪게 되고 매를 맞는다는 것입니다. 3) 그러면서도 종교의 형식만 가지고 예배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으니 가증하기 짝이 없으며, 4)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속히 돌아오라는 것이며, 5) 메시야왕국 즉 그리스도가 오셔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시고 영원한 왕국의 축복을 주신다는 약속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고찰하고 연구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 역사를 통하여 현실을 조명하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자는데 있습니다. 본장은 “이 말을 들으라”는 표현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입을 열어 말씀하시는 데는 우리도 귀를 기울여 듣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의무이자 이익이 됩니다. 그런데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너무나 우둔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고 재삼, 재사 촉구해야 할 필요성을 갖습니다. 그들에게는 “이 말을 들으라 여기에 귀를 기울이고 주의를 쏟으라”고촉구해야만 했습니다. 이것은 확신시키며 각성시키며 주의를 일깨우는 말입니다. 우리는 위로와 평강의 말씀처럼 이 말에도 주의를 기울이며 경청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한 말씀뿐만 아니라 우리를 공격하는 발언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듣든지, 아니 듣든지 하나님의 말씀은 효력을 발생하며 그 일점, 일획이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들어야 할 말씀은 애가였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왕국의 비참한 상태에 대해 지은 슬픈 묘사요, 그 나라의 완전한 멸망에 대한 비통한 예고였습니다. 그들의 사정은 비참했습니다. 처녀 이스라엘은 엎드러졌고 이전의 상태에서 타락하였습니다(2절).

1. 엎드러진 이스라엘을 위한 애가(1-2절) 이스라엘의 애가로 시작됩니다. 만일 이 백성이 야웨의 뜻을 거역하기를 계속한다면 어떠한 일이 일이나리라는 것을 아모스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모여든 예배자들에게 장차 이스라엘이 멸망할 일에 대하여 애가를 읊어 들려주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에게 임할 파멸을 선언하였으며 그러한 파멸은 아직 도래하지는 않았지만 필경에는 그대로 이루어질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아직 살아있는 데도 아모스는 그들에 대한 장송의 노래를 읊었던 것입니다. 아모스는 이스라엘 나라를 가리켜 처녀 이스라엘이라고 하였는데(5:2), 이는 그와 똑같은 주제를 근거로 하고 있는 호세아의 예언을 우리들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이것은 사실상 이스라엘을 처녀로 묘사한 최초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으며 교회를 어린 양의 신부로 표현한 그리스도교적 개념이 궁극적 기원이라고 보아 의심치 않습니다(계 21:9). 어쩠든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야웨 이외의 다른 정부들과의 부정한 관계로 인해서 처녀성을 상실한 엎드러진 처녀로 묘사했습니다(호 2:5-13). 심판의 대환난이 닥치게 되면 그 정부들은 그들을 구해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실로 그 정부들은 그들을 내던져 버리게 될 것이며 아무도 “그들을 일으켜줄”자가 없을 것입니다(2절). 이전의 이스라엘은 비록 처녀처럼 순결하거나 정숙하지 않았습니다. 아름답고 쾌활하며 매력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자신이 고결하게 보였고 많은 사람들에게 처녀로서 구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멸시와 궁핍에 떨어져서 만인에게 백안시 당합니다. 아니 그들의 형편은 고립무원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뉘우치지 않으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찢어 넘어뜨렸습니다.

2. 이스라엘의 참혹상입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의 참혹상을 그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 다시 일어날 수 없을 만큼 엎드려졌습니다. 엎드러졌다는 것은 멸망을 의미합니다. 오랜 세월 동안 반복된 행동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죄짓고 엎드러지면 하나님은 일으켜 주셨습니다. 그러기를 수십 수백 번 되풀이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도 포기를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엎드러졌으나 일어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일으켜 세워줄 자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손을 떼시면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손을 떼시면 마귀의 세력이 달려듭니다. 철부지 어린이가 있습니다. 부모의 보호를 받을 수 있고, 유괴범의 보호를 받을 수 있고, 파출소나 적십자사 미아보호소의 보호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보호가 가장 행복한 보호이겠습니까?

(2) 천명이 드나들던 성읍에 백 명이 남고, 백 명이 나가던 성읍에는 열 명만 남게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쉽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1천만 원 수입이 1백만 원으로 줄어들며, 100만원 수입이 10만원으로 줄어들고 10만원 수입이 일만 원으로 줄어든다는 말입니다. 옛날부터 성읍이나 도시에는 사람의 왕래가 빈번해야 번영하고 발전했습니다. 그러데 웬일인지 사람의 왕래가 줄어듭니다. 사람 만나기가 어려워집니다. 1천 명이 100명으로, 100명이 10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1천 명의 용사가 전쟁에 출정했습니다. 싸우다가 남은 병력을 점검해 보니 100명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즉 전쟁으로 죽고 포로로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엎드려졌으나 일어날 수도, 일으켜 줄 사람도 없습니다. 천은 백으로, 백은 열로 줄어듭니다. 이것은 처참한 비극입니다. 야곱이 이처럼 작아질 때 그는 누구에 의해 일으킴을 다을 것이며 경건의 쇠퇴는 누구에 의해 복구될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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