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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정의를 하수 같이 (암 05: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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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시대의 부패와 타락은 부유층뿐만 아니라 권력층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암 3:10에 “자기 궁궐에서 포학과 겁탈을 쌓는 자들이 바른 일 행할 줄 모르느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가난한 자를 학대하면서도 그들의 생활은 그야말로 호화판이었습니다. 암 6:3-6에 “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강포한 자리로 가까워지게 하고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몌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취하여 먹고 비파에 맞추어 헌 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로다”고 했습니다. 여로보암 왕이 이룩한 번영과 안정의 시대는 그 민족사상 가장 추악한 불의와 난폭과 불법과 부패의 역사를 이룩하고 있는 시대로 바로 아모스 시대였습니다. 이런 시대에 아모스 선지자는 민중의 삶의 현장을 파고 들어가 사회정의를 부르짖었습니다. 타락한 왕실과 부유층을 비판하고, 천대받는 빈민을 격려하며 억압당한 대중을 변호하고 상실된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이 그의 사명이었습니다.

1. 아모스의 사회정의

(1) 아모스는(야웨 종교) 본연의 자리애로 돌아갈 것을 외치고 있습니다. 암 5:18에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뇨 그날은 어두움이요 빛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생활 없는 제사, 사회 정의 없는 종교는 필요 없다는 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아모스의 시대는 경제적으로 부유했기 때문에 축제와 절기, 번제, 소제, 화목제는 거창하게 드렸습니다. 공법과 정의는 무시하면서도 당시 중앙 성소인 벧엘과 길갈에서 모이는 절기의 축제는 성대했습니다. 수만 마리의 양이 죽임을 당하고 전국의 악사와 형형색색의 모든 악기가 동원되었습니다. 이것은 아모스가 보기에 오히려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이었습니다. 성소에서 드리는 제물에 믿음이 없고 생활이 없는데 천천의 수양과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모스는 “내가 너희 절기를 미워하며 멸시하며 너희 성취를 기뻐하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종교비판은 이사야, 예레미야, 미가의 예언에도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올바른 도리를 떠난 종교적 진리는 허무맹랑한 것이며, 사람에게 덕을 끼치는 일이 없이 종교적 관습과 의식만 지키면 그만이라는 사고는 이스라엘 야웨 종교에서는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모스는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우선 이웃을 사랑하는 일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고, 하나님께 올바른 예배를 드리려면 사람이 자기 이웃에 대하여 해야 할 도리를 올바르게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 아모스의 종교였습니다. 즉 아모스는 종교와 윤리의 일치, 신앙과 도덕의 조화를 부르짖었습니다. 아모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치기를 하나님의 이적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 이스라엘과 그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 그의 사명이었습니다.

(2) 아모스는 “오직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흘릴지로다”라고 사회정의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사회정의란 질서를 바로잡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양심의 법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자연법이라 합니다. 양심은 온 선악을 분간하고 올바른 길을 따르게 하는 마음의 규범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법은 인간의 원죄로 인해서 그 기능을 완전히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양심은 그 때와 환경에 따라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이 없다 해서 죄가 아닌 것이 아닙니다. 일부다처주의는 이슬람교 사회에서는 하등 양심의 가책이 없는 일이지만, 기독교 사회에서는 그것은 분명한 죄입니다. 이런 양심의 불완전성을 보완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은 모든 현존법의 모체입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무능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로잡힐 때 그 법과 권리는 하나의 악을 행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 법이 없어서 부패와 타락이 범람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사회정의란 양심의 법과 현존 질서가 파괴되고 사회가 부패와 혼란에 빠졌을 때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한 새 마음 운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정의는 곧 마음을 바로잡고, 질서를 바로잡는 일입니다. 빌 2:5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예수님의 이웃 사랑의 실천이 곧 사회정의의 실천 방법이었습니다. 공법과 정의를 하수 같이 흘릴 때 우리 사회는 보다 밝은 사회가 될 수 있습니다.

2. 정의를 하수 같이 장마 때에 물이 강을 넘쳐흐르는 것처럼 정의가 사회에 넘치게 하라고 아모스는 외칩니다. 당시 부유계층과 권력 있는 관리들이 얼마나 일반 백성들, 특별히 가난한 이들을 학대하고 뇌물 받고 재판을 굽게 했는지, 그 부패한 모습을 여실히 폭로하고 있습니다. 정의가 떠나면 나라가 망합니다. 머지않아 그 나라가 망할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온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인 동시에 또한 정의의 하나님이란 것을 분명히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가 지으신 모든 자녀들을 공평히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정의의 사랑입니다. 빈부귀천의 구별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죄를 범하고 끝까지 회개하지 아니하면 누구나 똑같이 벌하십니다. 한 국가도 벌하시고, 또 한 개인도 벌하십니다. 당시 불의로 가득하던 북방 나라 이스라엘은 앗수르 나라를 통하여 큰 벌을 받고 결국 망했습니다. 100여년 후에 남방 나라 유대도 끝까지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바벨론을 통하여 형벌을 받고 또한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역사적으로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개인은 이러한 역사적 심판 외에 또한 영원한 심판이 따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육신과 영혼이 합하여 세상에 살며 죄도 짓기 때문입니다. 육신은 죽어도 영혼은 남아 있습니다. 그 영혼까지 벌 받을 때가 반드시 옵니다. 오직 정의의 생활만이 이 심판을 피하게 해줄 것입니다.

3. 정의사회 구현은 우리나라가 내세운 중요한 표어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표어를 달성할 수 있겠습니까7공법과 정의가 하수 같이 흘릴 때는 우리나라는 보다 자은 사회가 될 수 있습니다.

(1) 정의의 입법이어야 합니다. 편파적, 비민주적, 흑은 독재하기 편리한 법을 만드는 국회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양심적인 국회의원들이 당선되어 국가를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입법기관인 국회는 국민을 중심하지 아니하고 위정자 중심의 기관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국회의원은 국민으로부터 국민 전체의 복지를 위해서 일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2) 정의의 행정입니다. 법에 의하여 국민을 다스리는 공무원은 언제나 공명정대하고 청렴하고 뇌물을 멀리하며 사사로운 감정이나 지방색이나 편파적인 것에 이끌리지 않고 인제나 공평한 행정을 펴 나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썩은 잔재인 관존민비사상을 일소하고 공무원은 문자 그대로 국민의 공복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여 사심이 없이 모든 행정을 펴 나갈 것입니다. 국회의원과 평민, 공무원과 국민 모두가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행정을 펴나가도록 하는 옳은 공무원의 자세가 아쉽습니다.

(3) 정의의 사법 행정입니다. 법 아래에서 만민이 평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특히 인권이 존중되고 실제적인 문화국가로서 사법 행정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공정한 재판인권이 유린되지 아니하는 사법 행정을 온 국민은 바라고 있습니다.

(4) 정의사회를 이룩하는데 꼭 필요한 황금률 마 7:12에 “그러므로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했습니다. 정의사회란 입으로 부르짖음으로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국민 모두가 내가 어떤 대접을 받기를 원하는가를 생각하여 그대로하고 국민은 내가 공무원이면 어떤 대접을 받기를 원할까 생각하여 그대로하면 자연히 정의에 입각한 관계가 이룩됩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하나님의 뜻이 펴는 나라가 되길 원합니다. 영국이 빅토리아 여왕 때 청교도의 신앙정신과 성서공회사업 부흥으로 영국기(유니온잭)가 가는 곳에는 해 질 날이 없었다고 합니다. 아모스의 사회정의 실현으로 교회는 국가를 위하여 이 바지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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