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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야웨의 날 (습 0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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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냐는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에 협력한 예언자입니다. 그 당시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부패하고 문란한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백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이방신을 섬겼고 왕의 학정과 관리들의 횡포와 백성들의 불신앙으로 인한 도덕적 타락이 극도에 달해 있었습니다.죄악이 관영한 곳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당연하고 하나님을 겨오이하는 곳에는 죄악이 만연될 수 없습니다. 죄악이 관영한 민족에게 하나님의 공의의 형벌이 왜 없는가고 하박국 선지자도 의심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죄악의 결과가 사망인 것은 원칙입니다. 더디될지언정 변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스바냐는 자기 백성의 죄악으로 인한 심판 날이 반드시 이를 것이니 회개하라고 선언했습니다.

1. 야웨의 희생제(7-9절)이제 스바냐 예언자는 “야웨의 날”로 묘사되어 있는 의식의 순간이 가까왔다는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스바냐는 옛 비유적 언어의 성격을 보존하면서 “야웨의 날”을 하나님의 택한 백성에게 복이 임하는 날로 사용하고 있습니다.은혜롭게도 야웨는 그의 희생제를 준비하여 그 청할 자를 구별하였습니다. 이것은 마치 사무엘이 장차 왕이 될 어린 다윗에게 기름붓기 전(삼상 16:2-5) 베들레헴에서 희생제를 준비한 경우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야웨의 희생 제사”를 다시 언급한 후 예언자는 귀에 거슬리는 경고를 말하고 있습니다. 즉 야웨 자신이 훌륭한 복장을 한 정객들을 벌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형벌은 “여러 방백과 왕자의 그리고 문턱을 뛰어 넘어서 강포와 궤휼로 자기 주인의 집에 채운 자들”에게 임할 것입니다. 문턱을 뛰어 넘는 자는 곧 블레셋 신 다곤의 제사장들이 그것과 (삼상 5:5) 결부시켜 생각할 수 있는 성전 문턱을 밟고 지나가는 미신적 의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혹은 우상을 받들어 놓은 태(台)를 예배하는 의식일지도 모릅니다. 어느 경우이든 간에 이런 행동은 순수한 하나님 신앙을 결여한 미신적 의식 또는 이교적 의식의 동작을 나타낸 것이라고 보겠습니다.

2. 예루살렘의 그 날(10-13절)스바냐가 부르짖는 메시지를 하나의 서술적 문귀로 기술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파멸의 날에 임할 소리와 광경을 차근차근히 간략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 소리와 광경 사이에는 그 성읍 백성에게 주어지는 야훼의 두 가지 말씀이 나타나 있습니다.그 소리는 성읍의 여러 곳에서 들려오는 부르짖음입니다. 즉 “고기의 문”은 성읍의 북쪽 끝지점이 위치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둘째 구역은 예언자 훌다가 살던(왕하 22:14) 곳으로 간주할 수 있는데 한때 므낫세(대하 33:14)가 포위했던 후에 발전된 성읍의 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적은 산들”을 다른 지역의 명칭으로 생각할 수 있을지? 또는 그 성읍이 서 있는 터로 생각할 것인지? 아마 스바냐 선지 시대에는 시장으로 사용한 듯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특히 막네스 거민들에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즉 북방으로부터 침입해 오는 날 저들의 무역 거래가 끊어지겠다는 것입니다.하나님 자신은 마치 디오게네스와도 같이 “등불을 켜고 예루살렘을 두루 찾을 것”을 약속하는 동시에 “야웨는 복도 내리지 않을 것이며 또한 화도 내리지 아니하실 것이라 ”는 자기 기만에 빠진 자들을 벌하실 것입니다. 그 날은 그 성읍의 모든 평소의 일들이 황폐하고 와해되어 버리는 날이 될 것입니다.

3. 야웨의 날(14-18절)먼저 야웨의 날 예언자는 야웨의 날이 임박하여 매우 급하다는 것을 선언하고 모든 것이 갑자기 파괴될 것이며 하나님이 인간 만사에 개입하신다는 절박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 야웨의 날이란?인간계에 어떤 미해결의 사건이 발생될 때에는 시간이 해결지어 준다고 합니다. 죄악의 꼬리가 밟힙니다. 죄악의 씨는 때가 이르면 싹이 틉니다. 인간들이 범죄하면서도 하나님이 어디 계신가고 조롱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관용하심이 자기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고 그의 인자하심과 관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굳어져서 회개치 아니하는 것은 자기를 위하여 하나님의 노하심을 쌓아 그의 노하심을 기다리는 행위입니다. 언제인가는 그 의로우신 심판을 타나내는 날이 올 것입니다(롬 2:4-5). 죄악이 쌓여 있는 곳에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임하는 것입니다. 범죄자들이 눈이 어두워 심판 날을 내다보지 못하고 귀가 어두워 신고를 듣지 못하고 목이 곧아 심판의 원리를 깨닫지 못하나 심판날이 있을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 날은 이미 박두하였고 그 날에는 죄인들이 몸둘 바를 알지 못할 것입니다. 자기 백성의 죄악상을 본 스바냐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미치광이요, 역적이라는 악평과 조롱을 들었지만 애국심에 불타는 선지자로서 공의의 심판을 선포하지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야웨의 날이란 말은 스바냐의 중심말입니다. 이 야웨의 날은 하나님의 진노의 날입니다. 대재난의 날입니다. 두려운 날입니다. 습 1:15에 “그 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무와 패괴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나리용 구름과 흑암의 날”이라고 했습니다. 이 날이 속히 임합니다.

(2) 야웨의 날은 언제 임합니까?어떤 이들은 아직 멀었다고 하지만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14절에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심히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오늘의 번영, 발달이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도덕생활면을 볼 때 더욱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을 느낍니다. 정치인들 기타 지도자들이 하나님없이 살아보려고 몸부림치지만 도의적면은 저하되고 인심은 극악한 방면으로 흐릅니다. 때로 천변지재를 하나님의 징계로 받아야 되련만 사람의 지혜와 총명과 수단과 방법으로만 해결하고자 합니다. 하나님과 적대하며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 재능을 잘 사용하면 되는데 그렇지 못하고 하나님을 부인합니다.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에게는 심판의 날입니다.

(3) 그 날에 하신 일노아 홍수 시대, 인간이 멸절될 때에 만물도 멸절되었습니다. 그것은 만물이 범죄했기 때문에 아니라 만물이 인간에게 속했으므로 인간이 벌받음과 동시에 자연도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금전도 인간 때문에 곤고를 당했고, 고목과 바위까지도 우상이 되는 등 만물은 말할 수 없는 억울함을 당해온 것입니다. 야웨의 그 날에는 1) 우상들과 우상 봉사자들과 그들에게 억울하게 이용당하는 모든 피조물들까지 빠짐없이 진노를 당할 것입니다. 2) 권력에 의지하고 약자들의 재물을 탈취하여 주인에게 아첨하는 자들은 심판할 것입니다. 3) 왕족과 귀족으로 이방의 화려한 옷을 입고 백성들의 기름을 빠는 자들을 형벌할 것이요, 가혹한 수렴으로 확정하는 자들을 그 날에 형벌할 것입니다. 4) 마음에 죄악을 품고 숨어 살면서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고 자신만이 의로운 체 하는 가면을 씁니다.박쥐 같은 회색분자들을 등불을 켜들고 순찰하듯이 찾아낼 것이요 여호와의 날에는 숨어있는 자는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동양의 철인도 죄를 하늘에 지으면 빌 곳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물며 선을 상주시고 악을 벌주시는 공의의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날에야 죄인이 피할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금과 은으로 만능을 주장하던 인간들이 은과 금을 태산 같이 쌓아 두었으나 여호와의 날에는 그것들이 자기를 구원하지 못하는 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보혈만이 우리 죄를 대속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의의 두루마기만이 하나님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워 주실 것을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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