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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위로 (슥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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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는 당시 소년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학개 선지와 함께 귀국한 유대인들과 본토에 남아 있던 사람들에게 전하여 14년간이나 정치했던 성전 공사를 재착수케 하였습니다. 이때 지도자들도 새로운 각성을 하고 백성들도 감격하여 24일만에 성전 재건을 착공, 6개월이 경과했을 즈음 하나님의 말씀이 환상으로 소년 예언자 스가랴에게 다시 나타나서 유대인들을 위로 하였습니다. 열조들이 불순종하므로 징계와 형벌받은 것을 역사로 배워 알았고 또한 묵도하였으며 백성들 자신이 그 징계의 쓴잔을 맛보기로 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위로의 말을 들려 주었습니다.

1. 위로를 바라는 것이 인간입니다에덴 낙원을 이미 상실한 인간에게 기쁨이 있을리 없습니다. 부귀의 사람 솔로몬의 뒤에도 눈물이 따르고 의인 욥에게도 고통이 임하였습니다. 옛사람이 세상을 일컬어 눈물의 골짜기라 함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인간은 빈부귀천 현우를 물론하고 각각의 슬플과 고통이 있습니다. 누구나 위로를 받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런 중에도 어느 민족이든 고통과 실패와 불의의 재난이 그치지 않는 것이니 어떤 사람이나 갈한 자가 물을 찾는 자와 같이 위로를 구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가정에서 위로를 구하나 거기에 참위로가 계속되지 못하고 휴식하는 시간에 위로를 찾으나 거기에도 장구한 위로가 있지 못합니다. 참 위로는 어디로부터 옵니까? 사도 바울은 자기가 환란 중에도 먼저 형제를 위로할 수 있었던 것을 그가 겉으로 보기에는 가엾은 자 같으나 그 내심에는 넘치는 위로가 있어서 남에게까지 미친 것입니다. 바울과 함께 위로의 근원을 찾아 위로받으시기 바랍니다.

2. 위로의 근원

(1) 하나님은 아버지이십니다.하나님을 아버지로 아는 신앙은 구약 때에는 나타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민족의 아버지라 불렀으나 개인의 아버지로서는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오셔서 하나님께서 아버지 되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바울도 하나님을 예수의 아버지라 부르고 우리의 아버지라 불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심으로 우리의 위로자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약한 인간에게는 최대의 위로자이십니다. 오직 하나님을 아버지로 신앙하는 자는 신뢰로만 위로받습니다.

(2) 하나님은 자비하신 아버지이십니다.하나님은 엄위하실 뿐만 아니라 자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서도 하나님의 자비를 기억하면 반드시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3) 위로의 하나님고후 1:3에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위로를 찬송하였습니다. 위로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에게로 좇아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에게 받는 위로도 있고 자기 스스로 위로받는 일도 있으며 하나님에게로부터 받는 위로도 있습니다.

3. 위로받을 자하나님은 어떤 자를 위로하십니까?

(1) 순종하는 자를 위로하십니다.순종하는 자는 위로를 받고 거역하는 자는 진노를 받습니다. 누구나 위로받기를 좋아하고 진노는 원치 아니합니다. 위로는 기뻐서 하는 일이요, 진노는 마지 못해 하는 일이니 순종이야말로 제일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불순종하면서도 위로만을 원합니다. 한심한 일입니다. 수고하지 아니하고 성공을 부러워하며 심지 아니하고 거두겠다 하는 인간성의 모순입니다.우리가 먼저 할 일은 순종입니다. 순종만 하면 하나님의 위로와 행복이 올 것이고 거역하는 백성에게는 하나님이 진노의 팔을 종일 펴신다고 하였습니다. 순종하게 되면 하나님의 진노는 거두어지고 위로만이 임합니다.

(2) 애통하는 자는 위로받습니다.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함을 받을 것이요”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바로 죄에 애통하는 자에게 임하십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는 탕자에게 아버지의 위로가 풍족하였듯이 또한 성전에서 감히 머리를 들지 못하고 가슴치며 애통하는 세리에게 의의 위로가 만족하였듯이 하나님은 애통하는 자에게 위로함을 주십니다.

(3) 환란받는 자에게 위로해 주십니다.고후 1:4-5에 “환란 중에 위로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위로는 편안한 자보다 환란 중에 있는 자가 남달리 하나님의 위로가 더욱 필요함을 느낍니다. 샘 곁에 사는 자는 물의 귀함을 잘 압니다. 환란 중에 있는 자가 남다릴 하나님의 위로가 더욱 필요함을 느낍니다.

4. 위로의 효력

(1) 고난을 견디는 힘을 줍니다.위로는 우리로 하여금 고난을 견디는 힘을 줍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우리로 소망 중에 살도록 하십니다.

(2) 하나님은 말을 타며 순회하면서 위로해 주십니다.주님은 항상 교회를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은 위로의 근원이십니다. 인간의 위로가 미치지 못하는데도 하나님의 위로는 충만이 임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한편으로 징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위로하십니다. 혹시 신자에게 임하는 환란과 곤고가 있어도 하나님의 위로의 손은 반드시 그 뒤를 따르는 것입니다. 예언서를 읽으면 죄에 대한 책망과 형벌을 강조하다가 최후에는 반드시 소망과 위로의 말씀을 주십니다.이제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위로 살피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이 돌아와 긍휼을 베풀겠다고 했습니다. 2) 성전을 다시 세우시겠다고 했습니다.이 위로의 예언이 4년 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취되었으니 큰 위로입니다. 이제 바벨론 70년 포로기도 지나고 자유로이 귀국하여 성전 지대를 다시 놓고 성전 건축공사를 시작하니 하나님의 위로에 감격한 노인들이 옛날 솔로몬 성전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젊은이들은 용기백배 하여 춤추고 노래하며 회비의 교향악을 연주하였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도 곤고하던 심령에 주님계실 성전이 다시 세워지면 주님의 따뜻한 위로가 임할 것입니다. 3) 성읍을 형통케 하십니다.이는 다시 마카비 위인을 통하여 유대가 국권을 회복할 것을 가리킨다고 주석가들은 해석합니다. 그러나 필자는 주님 강림하셔서 그 성전에 들어가실 때에 복음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천하에 전파되고 성읍이 형통하며 광대해지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성전과 성의 담만 건축될 뿐 아니라 이 성전에 주인이 들어와 계시니 이 얼마나 큰 행복이며 위로입니까? 우리 심령에도 주님이 들어와 계시면 만족이요 그 이상 다른 위안이 없을 것입니다. 시험 걱정 모든 괴로움이 우리의 주위에 닥쳐오고 세상 친구 멸시하며 너를 조롱하여도 예수품에 안기워서 위안하심 받겠으니 세상 그 무엇이라도 이 위로는 빼앗아 갈 자가 없을 것입니다.

5. 우리는 남을 위로하는 자가 됩시다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위로를 해야 합니다. 목사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형제 자매들은 목자를 위로함이 가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위로로써 목사와 신자가 서로 위로함이 가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교역자는 복음 전하는 성도를 가르치는 직분을 가질 뿐 아니라 더 중요한 직문은 화목하는 직분, 위로의 직분입니다. 바나바를 가리켜 권위자라 한 것과 같이 우리는 사랑의 권위자라야 할 것입니다.남을 위로하려면 내가 먼저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내가 생수를 가지고 있은 뒤에 목마른 자에게 줄 수 있는 것과 같이 내 스스로 받은 위로가 있어야 곤고 자와 슬픈 자를 위로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의 처지는 이방인의 핍박과 본 국민의 위협과 교회내의 난 문제와 병과 갇힘등 여러 가지 곤란이 첩첩 쌓여서 남에게 위로를 받아야 할 처지이지만 그는 항상 남을 위로하는 생활을 계속 하였습니다. 바울은 위에서 받은 위로가 풍성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같이 우리는 위로의 근원을 얻어서 그 직분을 능히 감당하여야 할 것입니다. 재난 많은 우리나라에 어려움이 많은 교우와 함께 새해를 맞이하면서 위로란 말씀을 가지고 경애하는 교우들에게 축복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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