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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백성의 구원 (슥 0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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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신탁은 싸움하는 장면으로 돌아가 생생하게 하나님께서 그들의 대적 회랍인들로부터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직접적이고도 능력있는 길을 묘사하고 있습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에서 70년을 지내는 중 해방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에게 귀향의 문이 열렸는데도 대다수가 바벨론에 머물렀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당시의 사정을 상세하게 기록에 남겼습니다. 유대인들이 포로로 끌려 갔으나 70년 동안에 물질면에서 상당히 기반을 잡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해방을 맞아 고국에 돌아가서 독립국가를 건설할 기회가 있지만 모든 재산과 집과 가축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사는 땅이 문제가 아니였습니다. 스가랴 자신이 바벨론에서 태어난 제 2세였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육신의 안일과 물질에 대한 욕심에 눈이 어두워 자기를 상실하고 하나님을 상실한데 있습니다. 그래서 스가랴 선지는 외쳤습니다. “소망을 품은 갇혔던 자들아 즉 희망의 포로들아 보장으로 즉 강한 요새로 돌아오라”(믹 9:12)고 했습니다. 희망의 포로라 했습니다. 희망의 포로가 신앙의 모습입니다. 현실에 좌우되지 아니하고 환경에 끌려 사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괴로움의 포로가 되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사랑과 정치에 확고한 희망을 두고 산다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스가랴는 이미 돌아와 있는 동족들도 정신적으로 침체하여 새 나라 건설에 투신하지 않음을 보았습니다. 70년 포로살이 끝에 황폐한 고향에 돌아왔지만 소망을 잃고 지쳐버린 백성이었습니다. 그 피로한 사람들에게 스가랴는 예언했습니다.스가랴의 메시지는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이억하신다”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애초에 버리지 않은 것처럼 해준다”는 말은 너희는 하나님께서 잊어버린 안긴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소망의 근거가 됩니다.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실수하고 낙담하고 등을 돌려도 우리를 잊지 않고 계시다고 말합니다. 아담과 이브처럼 나뭇잎으로 앞을 임시로 가리고 동산 숲에 숨어있는 우리를 하나님은 잊지 않고 기억하고 계십니다. ‘스가랴’의 히브리어 뜻은 “하나님이 기억하신다”입니다. 스가랴는 자기의 이름부터 철저하게 이런 믿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프랑스의 애국 소녀 쟌 다아크(1412-31)는 백년 전쟁중 영국에게 짓밟힌 “조국을 구하라”는 천사의 음성을 듣고 1429년 국왕 샤르 7세를 만났습니다. 왕실 신학자들이 미리 만났는데 그 신앙에 감동되어 국왕 면회가 가능해졌습니다. 임금은 “국왕도 아직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본 일이 없는데 네가 들었다고 하느냐”하고 호령했습니다. 13세의 쟌 다아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아버지처럼 친하게 사귀는 사람에게만 음성을 들려 주십니다.” 결국 임금도 감동되어 6천명의 군대를 지휘시켜 프랑스를 구출했다는 역사 얘기입니다. 이런 신앙이 소망을 낳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처럼 나를 아시고 늘 기억해 주시기 때문에 나도 단순한 마음으로 아버지께 맡기고 매달리듯 하나님을 의지하는 생활입니다. 스가랴는 이처럼 우리를 알고 기억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인류 구원의 우주적 소망으로 전개시켰습니다. 이 점이 학개서와 다릅니다. 학개 선지는 성전 재건에 그치나 스가랴는 인류 구원으로 비약합니다.이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실로 나타나 우리에게 참다운 소망을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를 기억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불멸의 소망을 갖습니다. 그들이 비록 고통과 절망을 날마다 직면하는 포로와 같을지라도 그들은 “희망의 포로”들입니다. 괴로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밝은 희망이 저희 것이요 아픔과 눈물 속에서도 나를 기억하시고 하나님을 믿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큰 위로를 받을 것이요 억울함과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의 정의를 믿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승리의 면류관을 차지할 것이요 실수와 실패와 허물 속에서도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믿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평화를 발견할 것이요 절망과 멸망 속에서도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한 생명을 차지할 것입니다. 슥 9:11-12에 “네 언약의 피를 인하여 내가 너희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소망을 품은 갇혔던 자들아 너희는 보장으로 돌아올지니라 내가 오늘날도 이르노라 내가 배나 네게 갚을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1. 구덩이에 갇힌 인생아담 이후 모든 인생은 조상의 죄와 자신의 죄로 인하여 물없는 구덩이에 갇힌 상태가 되었습니다. 우물 위에 큰 바위돌을 덮어 놓듯이 모든 사람은 나면서부터 스스로 들치고 일어날 수 없는 죄의 경향성과 부패성으로 갇혀서 자유를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이 피할 수도 없고 위로 받을 수도 없고 헤어날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져서 죄의 종이 되고 죽음의 종이 되고 마귀의 종이 되었던 것입니다.

2. 언약의 피이런 상황 중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건져 구원하시고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큰 언약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곧 피에 대한 구원과 자유를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언약(covenant)이란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확실한 약속인데 즉 누구든지 믿음의 손으로 붙잡기만 하면 구원하시겠다는 손잡이와 같습니다. 그 손잡이가 무엇인가 하면 피입니다. 피로써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 주시고 어떠한 죄인이라도 구원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붙잡는 방법은 무엇입니까?그것은 믿음입니다. 롬 6:23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고, 레 17:11에 “피는 곧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히 9:22에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죄와 마귀의 속박에서 벗어나 사망권세를 이기고 영생을 얻어 자유롭게 되는 길은 언약의 피로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이나 수양이나 도덕과 철학을는 이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 후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엮어 부끄러움을 가리우려 하였으나 곧 말라서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양을 잡아 그 피로 속죄 하시고 양의 가죽으로 아담과 하와에게 옷을 지어 주었습니다. 무화과 나무옷은 인간의 철학이나 선행이나 도덕으로 사망의 문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요,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음으로만이 의롭다고 하는 칭호를 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서 아벨의 제사는 양의 피가 있는 제사이므로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를 흠양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시 유월절 날(출 11:13) 양의 피를 이스라엘 집 문설주게 바르니, 장자 치는 재앙에서 애굽이 망하고 이스라엘 집은 양의 피를 집에 발랐기 때문에 구출받아 출애굽하게 된 것입니다.이스라엘이 가나안 점령시 여리고성을 침공하던 날 기생 라합은 창문에 붉은 줄을 드리우고 자기 부모 형제 친척들을 다 불러다가 자기 집안에 불러 모았습니다. 그래서 붉은 줄을 드리운 그 집에 들어온 사람은 모두 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붉은 줄은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이것의 영적인 의미는 언약의 피인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기생 라합은 창문에 붉은 줄을 드리우면 살리라 하는 것을 그대로 믿고 순종했으므로 살았습니다.오늘날도 성경에 기록된대로 언약의 피,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구원이 된다는 것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면 구원받습니다.

3. 피에 대한 믿음과 자유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요 6:27에 “너희는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무리들이 묻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요 6:53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의 피를 먹고 마신다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영적으로 먹는 것 곧 믿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몸을 깨뜨려서 내 죄를 위하여 언약의 피를 흘려주신 것을 믿는 것이 곧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몸을 깨뜨려서 내 죄를 위하여 언약의 피를 흘려주신 것을 믿는 것이 곧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엡 1:7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라고 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죄의 종노릇하고 마귀의 종노릇 하다가 멸망받을 우리를 예수께서 피를 흘러 주시므로 이제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자유함을 얻고 영생을 얻게 해주셨습니다.이 언약의 피를 믿음으로 죄에게 자유함을 얻고 죄성과 양심에서 자유를 얻고 마귀의 속박에서 자유를 얻고 영생을 얻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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