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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슨 권위냐 (마 21: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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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가”라는 이 질문은 유대인의 지도자들이 예수님께 한 것인데 그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무슨 특별한 일을 할 때에는 가끔 이런 질문을 하였다고 합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성전을 청결케 한 다음날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많은 사람을 가르치시고 성전에서 걸어 다니시며 주님께서는 성전을 자기 집처럼 이리저리 자유롭게 출입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주님의 성전에서의 활동은 그 성전 안에서의 주인이 자기인 것을 완연히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을 시기하고 있던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은 산헤드린의 대표자로서 권위 있는 인물들인데 예수님을 볼 때 아니꼽게 생각되어 “당신이 무슨 권세로 그런 일을 행하는가”고 질문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질문은 예전뿐 아니라 오늘날의 우리 생활에도 흔히 있을 수 있는데 그 권위의 문제를 주님의 생애에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1 . 정상적 인간으로서의 권위 일반적으로 우리는 권위라고 하면 보통 비정상적인 것을 뜻합니다. 남들은 정연하게 줄서 있는데 자기만은 차를 타고 앞질러 들어가는 것, 즉 원 천적인 법은 있으나 법을 예외로 이용하는 자가 권위 있는 자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권위는 이런 것이 아니고 오히려 법을 지키고 질서를 세우고 그 속에 들어가서 생활하기 원하는 정상적인 권위이었습니다. 베들레헴에 호적하라는 아우구스도의 명을 따라 베들레헴에 요셉과 마리아가 갔을 때 탄생한 것이나, 다른 이같이 열두 살에 성전에서 성인식을 한 것이나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것이나 세금도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규정대로 낸 것이나 안식일을 지키고 빌라도의 법대로 사형을 언도 받아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모두 그리스도가 법을 준수했다는 증거입니다. 세상에는 스스로 신인 체하는 인간이 많고 스스로 메시야라고 하는 자 많고 죽지 않고 부활하리라 거짓말 하는 자가 많지만 주님은 법대로 태어났고 법대로 죽으셨습니다. 미국 16대 링컨 대통령은 얼굴이 평민적인 모습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삶도 매우 평범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링컨을 방문한 한 부인은 대통령의 얼굴을 보고 실망하여 대통령도 별 수 없다고 중얼거렸습니다. 이 말을 엿들은 링컨은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을 좋아하기에 평범한 사람을 많이 만드셨습니다. 나도 평범한 사람입니다” 이런 일화와 같이 그는 흑인 앞에서도 평민의 자세요, 일반 국민 앞에서도 평범한 민주사회 일원으로서 소박하고 겸손하며 충성스럽게 일하였으니 마침내 높은 존경과 권위 있는 사람으로 후세 사람들에게 칭송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참 권위는 평범과 정상적인 점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2. 개혁적 선생으로서의 권위 본문 21:28-29에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 함이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어에서 권위는 영광, 존귀의 뜻이 있습니다. 힘을 타인에게 줄만한 내적 실력을 가진 사람을 존귀하고 권세 있는 인물이라고 합니다. 권위를 함부로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모세 같은 훌륭한 인물이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향하여 무슨 권위로 우리를 다스리느냐 네가 왕이냐 하고 권위의 내용을 분석하려 하였으며 도전하려 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에게 권위의 출처를 물은 것입니다. 예수는 권력이나 힘을 통한 외적 권위가 아니요, 내적 권위였습니다. 그 내적 권위는 “저희 서기관들과 같이 아니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깊은 차원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살인하지 말라에 앞서 미워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에 앞서 음욕을 품지 말라, 형식적 기도에 앞서 은밀한 기도, 그리고 은밀한 금식과 구제, 원수를 미워하기에 앞서 원수를 사랑함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율법을 폐하려 함이 아니요 온전히 이루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으로는 100점이라고 자부하던 부자 청년도 “네 소유를 다 팔아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 말씀에는 무색해졌습니다. 이와 같이 그 정황을 냉철하게 통찰하시고 심령을 깊이 꿰뚫고 생동적인 말씀을 하시는 그 눈, 얼굴, 심령의 충만한 힘, 과연 이 권위가 큰 무리를 이끌었으며 가시는 곳마다 따르는 자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내적 권위는 갈보리산 십자가에서 완전하게 나타났습니다.

3. 십자가 화목주의로서의 권위 권위는 법질서를 잘 지키고 고차원적인 개혁을 주도하는 개념적 인물에게만 완전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예컨데 아버지의 규칙적이고 박식하고 채찍을 든 아버지의 권위가 어린이에게는 절대적이겠으나 이것에 비하여 어머니의 부드러운 손길과 교훈은 나약하게 보이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비례해서 채찍과 고함치는 아버지 권위보다 용서와 눈물어린 모성적인 사랑의 권위가 더욱 그 힘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병들었을 때 밤잠을 주무시지 않고 손수 간호하시며, 실수할 때에 용서가 앞서고, 실패할 때에 용기를 북돋워 주는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감동을 주는 권위가 어디 있겠습니까? 제자들의 눈에 어린 주님의 모습도 이와 같았으리라 생각됩니다. 사마리아 동리의 어느 집에서 하룻밤을 유숙함을 거절 당하셨을 때 요한은 예수께 하늘에서 우뢰를 내려 불태워달라고 요청하였으나 그를 가리켜 “우뢰의 아들”이라는 별명만 붙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의 아버지에게 구하여 열 두 명도 더 되는 천사로 하여금 자신을 보호할 수 있었으나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묵묵히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런 것을 당시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하였으나 부활승천, 성령강림하신 후에는 이 이치와 은혜를 깨달아 감격하며 무한한 권위에 이끌리어 생명을 바쳐가면서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주님의 권위는 특별한 인물로서 법을 어기는 권위가 아니라 정상적인 평범한 사람으로서 권위를 가졌고, 내적, 영적인 권위를 가지셨으며, 십자가의 화목, 사랑의 화목으로써 권위를 소유하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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