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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편견을 허무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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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위는 옛날부터 거기 있었어” 높이 30㎝쯤 위로 솟아있는,모양새도 별로 안 좋은 그 바위는 이사 왔을 때부터 앞마당에 박혀 있었다. 잔디를 깎을 때 늘 방해가 돼 하루는 남편에게 “저 바위를 파내버리면 안 되나요?”라고 물었다. “안돼,그 바위는 옛날부터 거기 있었어” 남편의 말에 시아버님도 동조했다. “그 바위는 상당히 깊이 박혀 있을 것이다. 이제껏 아무도 그것을 파내지 못했어” 그래서 그 바위는 계속 그 자리에 큰바위로 여겨지면서 당당하게 존재해 왔다.
세월은 흘러서 시아버님도,남편도 세상을 뜨고 혼자 집을 지키던 이 부인은 틈을 내 집안 여기저기를 손보기 시작했다. 바위 주변에는 잡초들이 마치 부스럼 딱지처럼 무성했기 때문에 퍽 흉했다. 그래서 부인은 그 바위를 파내기로 작정했다. 하루종일 애쓰면 어느 정도 윤곽은 잡히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은 어처구니없이 곧 끝나버렸다. 바위는 단 5분만에 빠져나왔다. 땅속으로도 30㎝ 정도밖에 박혀있지 않았다. 그리고 묻혀있던 부분은 밖으로 드러난 부분보다 약 15㎝밖에 더 넓지 않았다. 그 바위는 아주 오래 전부터 그곳에 있었다. 조상들이 그 바위를 파내려고 했지만 결국 파내지 못했다고 믿고 살아왔다. 달려들어 파내려고 애쓰는 일조차 포기한 채 그렇게 믿고 지내왔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흥미있게 읽은 내용이다.
한 젊은이를 생각해본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았으나 어머니는 마리아,바나바 선교사는 그의 사촌이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 식구들이 이 젊은이 집에 자주 모였다. 안디옥교회는 그 교회의 기둥들인 바울과 바나바 두 분을 선교사로 파송했다. 이 두 분과 함께 ‘조수’격으로 동행한 분이 또한 이 젊은이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 젊은이는 도중하차해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간다. 그 이유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어쨌든 최선을 다해 끝까지 달려가보지도 않고 포기했다. 기독교 역사에 혜성처럼 빛을 발한 이 마가 요한은 처음부터 그랬던 분은 아니다. 모름지기 ‘그 바위는 옛날부터 거기 있었다’고 믿고 옮길 생각조차 안 해본 그 부인의 식구들마냥 처음에는 편견과 공포가 앞섰을 것이다.
그런데 기쁜 소식이 있다. 임종을 앞둔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신신당부하며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다”(딤후 4:11)고 칭찬한다. 이미 골로새 교회에도 마가가 도착하거든 잘 영접하라고 소개하기도 했다(골 4:10). 마가는 드디어 그 일을 해냈다. 손댈 생각도 않고 “그 바위는 옛날부터 거기 있었어!” 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편견이며 무서운 자아무능병인가? 그런데 마가 요한은 이 병을 치료받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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