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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 훼방의 죄 (막 03: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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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0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고자 식사할 시간도 없으셨던 사실을 우리는 대하게 됩니다. 여러 가지 인생의 좌절을 경험한 사람들, 즉 육체적인 각종 병에 걸린 사람들, 정신적인 공허에 시달리는 사람들, 민족의 독립을 염원하여 메시야를 고대하는 사람들, 굶주림으로 허기진 사람들, 이러한 모든 부류의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의 기쁨을 얻고자 모여 들었습니다. 그 때에만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기독교 역사의 전 기간 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온갖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그에게서 영원히 배고프지 않는 떡과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교는 한 역사적인 사건으로 역사책에 기록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오늘날도 갈수록 많은 사람들의 종교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에게 식사하실 시간조차 주지 않고 밀려든 그 때의 무리들처럼 예수를 흠모하고 갈망해야 할 줄로 압니다. 그리스도를 찾는 이에게는 결코 실망함이 없습니다. 위로와 기쁨이 충만합니다. 힘써 그리스도를 흠모하고 구하므로 그러한 축복을 받으시는 교우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여기 다른 이유에서 그리스도를 찾은 무리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의 친속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육신적으로 너무나도 잘 알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육신적으로 아는 것이 예수님을 신적으로 아는 것에 방해가 됨을 발견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육신적으로 아는데서 머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그의 온갖 기적, 부활과 승천에 대하여 의심을 품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위대한 인류의 스승이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를 본받을 만 하다고 얘기합니다. 또 각자의 나름대로 자신의 입장에서 예수님을 인간적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님을 신적으로, 신앙의 대상으로, 나를 구원해 주실 분으로는 믿지 못합니다. 2천년 전 십자가의 사건이 오늘날 내게 실존적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깨닫지 못합니다. 그의 부활의 능력이 오늘도 우리를 살려 주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기독교인이라고는 하나 이같이 예수님을 육신적으로 아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들은 교회에 나와도 진정한 기쁨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교회는 교제, 사교의 집단, 교훈을 듣는 장소 정도가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인간적으로 알기에 교회도 인간적으로 다니고 교회 문제도 인간적으로 해석합니다. 그리하여 문제가 생기면 온갖 지혜를 짜서 설왕설래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신앙 없는 인간 지혜의 결과는 그리스도를 훼방하는 결과를 빚어냅니다. 예수님의 친속들이 그를 붙들러 왔듯이 그를 붙들어 꼼짝 못하게 하고 그 대신 모든 것을 자기들이 다 주장하려는 기독교인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목사이든 장로이든, 몇 십년 교회를 다닌 사람이든 모두 다 그리스도의 일을 훼방하는 자들, 성령의 역사를 훼방하는 자들입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리스도를 육신으로 앎으로 그를 훼방하는 죄를 짓고 있지나 않는가 생각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립니다. 둘째로 예루살렘에서 내려 온 서기관들입니다. 이들은 자칭 하나님의 말씀에 정통한 자, 영의 세계에 관하여 밝히 아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자기들의 지식을 중심으로, 교만에 빠져서 해석하기를 “저가 바알세블에 지폈다” 또는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힐난하였습니다. 이들의 해석은 이른 바 권위 있는 자들의 해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권위로 인하여 그들의 해석에는 타당성이 부여되고 있음을 우리는 느끼게 됩니다. 오늘날도 이러한 인간적인 권위를 가지고 말씀을 잘못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영의 세계에 대하여 달통한 것처럼 말합니다. 자기만이 성경에 대한 올바른 해석자요 그리스도의 계시를 전수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겸손하지 않고 이러한 절대적인 권위를 내세우는 사람치고 잘못되지 않은 사람들을 찾기가 드뭅니다. 그들은 참으로 인간으로는 불가해한 영의 세계를 독선적으로, 자기중심으로 해석하여 사람들을 미혹하여 신앙의 자유자가 아니라 종교의 노예로 전락시키는 경우가 허다함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권위자들은 극단적으로는 이단 종교를 일으키는 쪽으로 흐릅니다. 박태선의 신앙촌 운동이나 계룡산을 중심으로 한 온갖 사이비 신앙들이 그러한 경우입니다. 그러나 일반 교회 내에도 이러한 잘못된 신앙지도는 허다합니다. 참된 신앙의 자유를 부여하기 어렵다는 실상 때문에 많은 지도자들이 기독교 신앙을 몰핀 주사처럼 이용을 합니다. 그러한 신앙지도를 받은 교인들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이 보일 수 있어도 실상은 꼭두각시와 같아서 신앙의 참된 성장도 이루어지지 못하여 늘 어린 아이의 신앙에 머물게 되고 이성의 참된 판단이 흐려져 특정 권위자의 말을 맹종하여 선악의 판단 없이 행동을 합니다. 따라서 상식에 어긋난 일, 부끄러운 일, 단순한 이용을 당하는 일, 피착취에 불과한 상황 등 어처구니 없는 일들에 이용을 당하면서도 그것이 신앙의 일인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고도 끔직한 일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성령을 훼방하는 죄입니다.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 영적인 일에 무지한 사람들이 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잘 안다는 사람들, 영적인 일에 권위 있다는 사람들이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역설적입니까? 그리고 교회 내에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도 얼마나 경계하게 하는 일입니까? 예수님은 이러한 죄를 용서될 수 없는 죄로 단정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에 의도적인 장애 역할을 하는 것을 그가 얼마나 미워하시는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 우리 신앙의 주님으로 믿는 순전한 신앙이 우리 마음에 늘 가득 차게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도 인간이 모인 곳이므로 잘못이 있을 수 있고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님으로 믿고 그 믿음을 통해 큰 기쁨을 얻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일들은 중요한 것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한 일들은 참으로 삶을 사는데 있어지는 먼지처럼 필연적인, 그러나 건강한 몸이라면 능히 극복할 수 있는 사소한 일들로 간주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신앙이 없을 때 그런 문제들에 마치 주님의 교회의 사활이 걸린 듯이 생각하여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몸이 약하면 감기 바이러스 균에게 이기지 못하고 즉시 병에 걸리듯이 이러한 신앙이 없는 사람은 연약함으로 인하여 당장에 시험에 들어 성령의 역사를 훼방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른 신앙으로 무장하여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끄러움 없는 건강한 기독교인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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