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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대한 긍정 (막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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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당신이 그리스도인인가?”라는 질문을 받아왔습니다. 그 질문의 대부분은 기도교인인의 입장을 난처하게 하거나 혹은 큰 고통을 줍니다. 때로는 어떤 분은 죽느냐 사느냐 순교의 직전에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냐” 하는 질문을 받게 됩니다.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독재자 앞과 공산당 앞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질문에 긍정하였기 때문에 순교한 사람이 많습니다. 때로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긍정하기 때문에 고향 산천과 모든 사람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산 설고 물 설은 곳으로 떠나야만 했었습니다. 또 우리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당신이 그래가지고서도 그리스도인이냐?” 하는 비난과 조소의 질문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산 위에 있는 동네처럼 모든 사람의 주목의 대상임으로 어디에 가든지 곧 발견되도록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은 항상 제약을 받게 되고 세상의 물결에 저항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한 자루의 초가 자신의 몸을 태우지 아니하고서는 빛을 비추지 못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마땅한 생활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희생이 없을 수가 없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네가 그리스도인이냐?” 하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 10:32-33에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고 했습니다. 사실 신앙인은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를 사랑하던지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그를 미워하며 원수가 되던지 둘 중에 하나의 선택 앞에 있습니다. 중립은 없습니다. 빌라도가 예수와 바라바를 세워놓고 “너희가 누구를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고 물었습니다. 둘 다 택할 수도 없고 둘 다 택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 바로 우리들의 상황인 것입니다. 군중은 바라바를 택했습니다. 특별히 베드로의 태도에 우리는 주목갑니다. 그는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수제자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죽어도 버리지 않겠다고 장담하며 서약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 예수를 저주하고 맹세까지 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이 살기 위해서 예수의 사랑도 신뢰도 그의 신앙고백도 다 저버리고 만 것입니다. 베드로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를 잡으려고 덤벼드는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칼로 베어 떨어뜨린 것을 본 사람이 그날 밤 무리들 속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심문을 받을 때 베드로는 그들 무리 속에서 그를 알고 있는 무리가 있는 것을 알고 기를 쓰며 예수를 부인한 것입니다. 더구나 산헤드린 공의회는 예수만 체포하고 예수의 제자는 체포할 의사가 없었던 것이 분명히 보이는데 베드로가 이런 비겁한 행동을 그들이 보았을 때 얼마나 비웃었을까는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예수를 부인하는 모습, 이것이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의 모습입니다. 이제 본문 속에서의 예수님의 모습을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는 잡혀서 산헤드린 공의회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산헤드린은 유대 사람의 최고 재판소로서 그 의원은 모두 71명이었으며 그들은 서기관, 바리새인, 사두개인 백성의 장로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불법적인 재판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산헤드린 회원은 밤에는 회집할 수 없었는데 그들은 예수를 밤에 체포하고 재판을 시작했고 사형수는 하룻밤을 지나고 재판하도록 되어 있으나 예수는 그 밤에 잡고 밤에 재판하고 바로 사형언도를 받고 새벽에 십자가 지우고 골고다로 가서 사형집행을 했다는 점과 율법에는 안식일 전 날에는 사형 집행을 불허했는데 안식일 전 날에 지체하지 않고 사형 집행하였다는 사실, 그리고 사형언도는 증인 두 사람이 있어야 함에도 증인이 없자 거짓 증인을 내세워 거짓 증거를 함으로 범죄를 그들 스스로 범하고 만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불법 재판에 예수는 선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심문하는 재판이 불법에 의한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거짓 증거에 대해 한 마디의 변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제사장의 질문에도 침묵이었습니다. 마지막에 초초해진 재판관은 죄를 만들려고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고 질문했습니다. 장내는 숙연해졌습니다. 이것마저 대답을 거부할 것인지 모든 사람의 시선이 예수에게로 집중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대답이 없던 예수는 드디어 입을 열었습니다. “네가 말하였느니라”고 예수는 대제사장의 질문을 긍정했습니다. 이 긍정은 긍정 이상의 의미가 있는 긍정입니다. 생명을 건 긍정입니다. 사실 십자가의 사형 집행에 대해 그리스도가 그 판결에 서명을 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한 걸음 더 나가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고 선언하였습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보다 분명하게 만방에 선포한 것입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죄로 사형당한 것입니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에 예수는 빌라도로부터 최후의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 달리고 만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베드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에게 “네가 그리스도의 제자냐?”고 하는 질문에 베드로는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마지막에 저주, 맹세까지 했습니다. 예수님에게 “네가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냐?”고 질문을 했을 때 예수님은 생명을 걸고 이를 긍정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그들이 받은 질문은 둘 다 사실을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사실대로 대답치 못했고 예수는 “그렇다”고 긍정했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마땅한 삶의 자세를 발견해야 하겠습니다. 롬 10:9-10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누구든지 예수를 주로 믿는다면 그는 마땅히 말로써 언제 어디서 누구 앞에서나 이를 시인해야 할 것을 명령한 것입니다. 많은 순교자들은 예수가 그리스도인 것과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긍정함으로 그들의 생명을 바쳤던 것입니다.

6.25 때의 일입니다. 평양에서 시무하던 김대운 전도사라고 있었는데 그는 예수를 믿는 이유 때문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앙을 포기하기는커녕 오히려 공산당을 향하여 열렬히 설교했습니다. 그의 인격을 가까이서 목격한 그들은 은근히 그를 동정하며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너는 앞길이 창창한 청년이 아니냐 네가 이제라도 예수를 배신하고 전도사직을 그만두고 우리에게 협조한다면 우리는 너를 석방할 뿐 아니라 너에게 좋은 지위까지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내가 하나님을 배신하고 너희 말을 듣겠느냐? 내 말을 들으라 너희 공산당은 지금까지 지은 죄가 실로 말할 수 없이 많으므로 회개할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멸망을 면치 못하리라”고 주먹으로 책상을 치면서 외쳤습니다. 공산당원들은 분해서 책상 치던 김전도사의 손목을 칼로 베어 버리니 “내가 수족이 성하여 지옥 가는 것보다 수족이 잘리워서 병신으로 천당 가는 것이 낫다”고 외쳤습니다. 공산당원들은 더욱 분해서 혓바닥을 칼로 자르고 말았습니다. 피를 흘리면서 고통 중에 손으로 표현하기까지 그는 외쳤습니다. 결국 그는 몇 일 후 총살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생명을 걸고 그리스도를 죽기까지 증거 하다가 순교한 청년 교역자입니다. 끓는 피, 고동치는 청년의 몸을 그리스도에게 바친 것입니다. 참으로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그리스도를 긍정하고 내 자신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긍정의 삶을 지내고 있는지 반성이 요구됩니다. 베드로는 수치스러운 실수를 눈물로 회개하고 훗날 자신의 생명을 바쳐 주의 뒤를 따르며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증거 했거니와 우리는 지나간 날의 부끄러운 실수를 깊이 뉘우쳐 회개하고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언제 어디서 누구 앞에서나 긍정하는 신앙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입으로 시인하고 행실로 증거 하는 우리의 생활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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