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구유에 나신 주님 (눅 02:1-7)

첨부 1


성지 베들레헴에 가면 그리스도가 탄생하신 곳을 기념하는 (구유 교회)라는 교회가 있습니다. 옛날의 초라한 외양간의 모습을 그대로 살려 낮고 험한 집 위에 큰 교회당을 세워 순례자들의 발걸음을 끌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세계 위인들의 탄생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멕카성에 있는 모하메트의 집, 스트라드 본에 있는 섹스피어의 집, 프랑크 프르트에 있는 괴테의 집, 본에 있는 베토벤의 집 등, 제 나름대로 유서가 있고, 뜻이 있어 인류의 고적이 되어 있습니다만 베들레헴은 보다 독특한 의미를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1. 겸손하게 나신 주님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또 친히 하나님이신 주님은 천하고 낮은 구유에서 나신 것입니다. 근본이 하나님이신 주님이 사람의 육을 입고 태어나신 그 자체가 비하요 겸손입니다. 더구나 사람의 육을 입으시고 오신 주님께서 사람의 집도 아닌 짐승의 처소에서 나신 것은 겸손의 극치요, 황송한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불교의 교조인 석가는 왕자로 왕가에서 태어났습니다. 공자도 상류의 가정에서 태어나 고등교육을 받는 혜택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은 베들레헴 외양간에서 태어나셔서 구유에 그 귀한 몸을 누이게 되었습니다. 구유에 나신 주님은 가장 소박하고, 가장 겸손한 인간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위대한 사람일수록 겸손합니다만 가장 위대하신 사람이 되신 주님은 가장 겸손하셨던 것입니다. 구유에 나신 주님은 스스로 겸손하실 뿐만 아니라 겸손의 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마 11:29에서도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아무 어려움이 없이 호사하게 자란 사람은 인생의 깊은 뜻을 배우지 못하고, 어려움을 당할 때 거기에 대항할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가정에서 간고를 겪고 자란 사람은 첫째, 겸손을 배우며 자랍니다. 둘째, 견디고 좀처럼 동하지 아니하는 투지를 기르며 자랐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의 주님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2. 호적령과 용신할 사관도 없으신 주님 로마 제국은 그의 국권이 미치는 지경 안에 사는 사람들에 대하여 매 14년마다 정기적으로 인구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이것은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한 징병과 세금을 징수하기 위한 정치적인 수단이었습니다. 갈릴리 나사렛에서 사는 요셉도 이 호적령에 의하여 자기와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옛 다윗 조상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나사렛에서 갈릴리까지는 130㎞로 약 320리나 되니 험악한 산악길을 도보로 나귀를 타고 간다고 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요, 그나마 마리아는 잉태한 몸이니 그 행로의 어려움을 가히 짐작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요셉이 베들레헴에 도착하였을 때에 베들레헴에 모여든 사람들로 사관은 초만원을 이루었고, 때를 만난 베들레헴 사람들은 돈벌이에 열을 올렸습니다. 그리하여 만삭을 한 마리아에게 단 한 칸의 방을 제공해 줄만한 친절한 마음을 가진 자는 없었던 것입니다. 주막에 방이 없어서 마리아 부부는 어쩔 수 없이 잠간이나마 피곤한 몸을 외양간 안에서 쉬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 오셨지만 그 추한 마굿간에서 탄생하셨으며,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눕는 몸이 되었습니다. 베들레헴은 4-5천 명이 사는 고을인지라 주님을 위하여 한 칸의 방을 드릴 수 있음직도 한데 누가복음 2:7에서와 같이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주님을 위해 드릴 남은 방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님께서는 손님이 다 찬 나머지 방, 남은 사관 방을 요구하시지 아니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베들레헴 사람들이 자는 단칸방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베들레헴 사람들은 자기들이 다 쓰고 남은 방을 주려고 하였기에 이런 호적령이 난 비상시에는 남은 방이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저들은 마리아와 예수를 남은 방이나 드려서 대접하려 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말구유로 내쫓았습니다. 또한 사관이 없다는 말은 주님에게 무료로 제공할 방이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에게 돈받고 주는 방을 주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방을 요구하심이 아니요, 그들이 자는 방을 요구하셨고, 주님의 일이라면 세를 받지 않고 셋방을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주님은 자기가 창조한 땅에 왔으나 자기에게 제공할 방이 없다는 말을 듣고 외양간으로 가신 것입니다. 베들레헴에 오신 것은 큰 은혜의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가련한 베들레헴은 이 은혜를 거절했던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뭇심령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계 3:20에서도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라고 하셨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주님을 문 밖에 세워둔 교회였습니다. 아가서의 술라미 여자는 주님의 방문시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베들레헴 사람을 나무라서는 안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를 탓할 것도 아닙니다. 술라미 여자를 책할 것도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 내 자신은 어떠하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하신 주님의 탄생을 맞이하여 자신이 주님을 모시고 있는지, 아니면 주님을 문 밖에 세워둔 채로 있는지에 대해 우리 자신을 반성해 봐야 할 것입니다. 내 마음이 주님을 모신 구유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① 주님은 나를 위하여 하나님 보좌를 떠나 찾아와 주셨습니다. ② 주님은 나를 위하여 고난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③ 주님은 나를 위하여 거룩하신 몸으로 십자가에서 죄를 담당하심으로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④ 주님은 나를 위하여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⑤ 주님은 나를 위하여 지금도 기도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내가 고달픈 생의 길을 걸을 때 함께 하시고, 내가 눈물을 흘릴 때 같이 흘려주시고, 내가 고통을 당할 때 함께 당하여 주시며, 내 무거운 짐을 함께 져 주시는 분입니다. 자나 깨나 나를 지켜주시는 나의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이 세상 나그네 길을 다 마치는 날, 나를 데리러 오십니다. 이같은 주님을 우리는 어떻게 영접하고 있습니까? 행여나 우리 주님을 박대하고나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문 밖에 서 계시지는 않습니까?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말미암아 인간 역사에 일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이 새 역사는 바로 베들레헴의 구유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를 참으로 모신 자로서 주님을 영접한 사관으로서 성탄의 진정한 의미가 우리 안에서 드러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는 바입니다.

3. 아우구스트와 구유에 누우신 주님 8월에 자기 생일이 있다고 하여 자기 이름을 역사에 남기기 위해 8월을 자기 이름인 August라고 달명을 바꾼 가이사 아우구스트는 시이저의 양자로서 수많은 정적들을 물리치고 로마의 황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벽돌의 로마를 대리석의 로마로 바꾼 명군입니다. 그의 권세와 영광은 지극했으며, 그의 판도는 무한대로 넓었습니다. 그러나 이천 년이 지난 오늘을 보십시오. 로마가 신이라고 받들던 아우구스트는 가고 없습니다. 권세도 영광도 간 곳이 없습니다. 그의 역사는 한낱 메아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구유에 누이신 주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온 땅끝까지 사랑으로 정복하였고, 하늘에서는 하나님 우편에 좌정하고 계십니다. 창검의 힘으로 이룩해 놓았던 제국의 영광은 자취를 감추었으나 사랑과 십자가로 이룩한 주님의 나라는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그 옛날 베들레헴의 초라한 외양간의 구유! 그 구유에서 이루어진 이 위대한 사실과 교훈에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 편에 서서 주님을 영접하는 자는 영생과 영광과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4. 베들레헴과 예수님 베들헴이란 떡집이란 뜻입니다. 유대의 땅은 비교적 박토이지만 베들레헴만은 비옥합니다. 이 곡식이 많이 나는 베들레헴 떡집에서의 예수의 탄생은 생명의 떡과 관계가 깊습니다. 주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생명의 떡으로 이 땅에 오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는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생명의 떡을 영접하면 영원한 삶을 누릴 것입니다. 이 영생의 떡을 영접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