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저희 믿음을 보시고 (눅 05:17-26)

첨부 1


우리는 이 기사를 읽는 중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 “저희 믿음을 보시고”라는 어휘를 읽게 됩니다. 여기에서 “저희 믿음”이란 말씀은 그 중풍병자를 메고 예수님께로 간 사람들의 믿음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그들의 믿음은 무엇으로 나타났습니까?

1. 남을 불쌍히 여겨 도와주려는 믿음 신자들 중에는 믿는다고는 하면서 그 믿음을 활용치 못하고, 믿음을 그 마음 속에 결박하여 가두어 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믿음을 죽이는 것이며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활동과 함께 하여야 잘 성장하고 견고하여집니다. 사람의 몸도 운동을 하지 않거나,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점점 병들고 쇠약해집니다. 그러나 운동을 열심히 하고 활동을 히면 몸도 튼튼하게 잘 성장하고 건강해집니다. 믿음도 그와 같은 것입니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진리를 믿었으면. 그 진리의 내용을 그리스도의 뜻대로 힘써 행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행함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1) 합심해야 합니다. 마 18:19에서도 이르기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라고 했습니다.

(2) 믿음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히 4:12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라고 하심에서 볼 수 있듯이 말씀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3) 성령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롬 8:2-3에 “성령은 육신의 언약으로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도와주시는 분”이므로 우리는 성령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합심한 결과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습니다. 행 1:14에 백 이십 문도들이 마음을 같이하여 모두 기도에 힘쓸때 성령의 역사를 얻은 것입니다. 합심하여 구하면 꼭 성취시켜 주십니다. 구하면 꼭 주시고(마 18:19), 함께 한 곳에 역사를 주십니다(본문). 눅 5:20에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서로 합심하여 도와주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2. 끝까지 낙심하지 않는 믿음 그 병자를 메고 예수님을 찾아간 사람들은 그곳에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모여 있었기 때문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낙심하지 않고 더 궁리하여 지붕으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역경에서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관철하는 소망의 신앙입니다. 인간이 무슨 일에서든지 성공하려면 역경에서 낙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낙심을 금물로 여깁니다. 기독교는 전혀 가망이 없는 죄인도 믿고 회개하면 구원의 소망을 성취하게 하는 참된 종교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역경을 당할 때 낙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머지않은 장래에 평탄한 길이 열릴 줄 믿고, 소망 가운데서 역경을 돌파해야 합니다.

(1) 역경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는 비결은 확신입니다. 이것은 그가 가고 있는 진리의 길을 다 가는 날에 진정한 행복과 영광이 있을 줄을 의심하지 않고 믿는 것을 뜻합니다.

(2) 본문에 있는 것 같이 서로 협력하는데 있습니다. 이 네 사람은 서로 도와주고 협력함으로써 모든 의심과 피곤과 근심을 이겼습니다. 인간은 홀로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연합함으로써 존재합니다. 주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구하면…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하셨으니, 이는 합심과 집합을 귀중히 여기시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고후 4:16에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 하였습니다. 고후 4:17에는 “잠시 받는 환란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라 하였습니다. 고후 4:18에는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에서 낙심하지 말아야 하겠습니까? 갈 6:9에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라고 했습니다. 엡 3:12에는 환란을 당할 때 낙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낙심하지 않는 자는 어떤 복을 받겠습니까? 욥은 끝까지 낙심하지 않는 믿음으로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마 15:22 이하에 가나안 여인이 낙심치 않음으로 열두해 동안 앓았던 혈루병에서 벗어났습니다. 요셉은 감옥에서도 낙심치 않음으로 주의 약속이 이루어져 아버지인 야곱의 가정을 번창하게 하였고, 타국에서 총리대신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며 모험을 감행하는 믿음 약 1:12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1) 요셉은 시험에서 승리한 사람입니다. 형들에게 미움 받는 시험에서 승리하였고,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에 승리하였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들어갔던 옥중생활에서 승리하였습니다.

(2) 아브라함도 어려움에 승리하였습니다. 독자 이삭을 드리라는 시험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조카 롯과 분가하는 시험에서 승리하였습니다. 또 하갈과 이스마엘을 추출하는 어려움에서 승리하였습니다.

(3) 욥도 시험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자녀가 몰살당하는 시험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재산의 피해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자신이 무서운 병으로 고통당하는 시험에서 승리하였습니다. 본문을 보면 병자를 멘 사람들이 그를 예수님이 계신 곳에 내리기 위하여 지붕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지붕을 뜯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닙니다. 그 지붕 아래에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그것을 뜯을 때에 그 사람들에게 허가를 맡은 것도 아니요, 그 사람들의 찬성 여부를 불문에 붙이고 그 일을 감행하였습니다. 이것은 모험심의 발로입니다. 이런 모험이 있는 곳에 큰 성공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옛날에 마라톤의 조상이 되는 아테네 사람들은 아테네가 파사의 침략을 받았을 때에 스파르타의 원조를 청하기 위하여 당일 스파르타에 갔다가 돌아오다가 마라톤 평온에서 전쟁을 참관하고 아테네가 승리하매 뛰어 돌아와 아테네가 구원받았다는 말을 전하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렇게 모험을 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기록에 남았습니다. 이런 모험적인 행동이 없이는 위대한 구원이나, 부흥이나, 재건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신앙의 모험은 삶에 이르는 모험이며, 평안과 기쁨과 영광에 이르는 모험입니다. 또한 그 모험을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모험입니다. 그러므로 그 도상에는 많은 위로와 힘의 원조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와 같이 믿음으로 신앙의 모험에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