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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레위 마태를 부르심 (눅 05:2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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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믿는 자와 그 믿음의 대상이 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과 신자와의 관계는 “쫓는 자” 와 “따르는 자”라는 말에 분명히 나타나 있는 것을 봅니다. 신앙자와 신앙의 대상자와의 관계는 관념적이 아니라 행동적이요, 추상적이 아니라 구체적입니다. 예수께서 명령하신 “나를 쫓으라”는 말씀에 대하여 “내가 따르겠습니다” “내가 쫓아 가겠습니다”라는 결단을 보면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격적인 관계성에서 신앙이 이루어지는데, 이런 인격적 관계를 만남의 관계, 응답의 관계, 결단의 관계 등으로 표시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나를 쫓으라” 하신 주님의 명령에 대하여 거절하지 않고 쫓는 인간의 결단에 있어서의 실존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본문에 나와 있는 대화 몇 토막을 보겠습니다. 이 대화를 주고 받은 장소는 당시 유대인들이 모두 지나가기를 싫어하는 장소인 세관입니다. 그러나 장소가 비록 멸시와 천대를 받는 곳이라 해도 여기에 대해서 반대를 하거나 불공손한 태도를 보일 수는 없는 곳이었습니다. 세관은 대 로마제국의 권위가 임시로나마 머물러 있는 곳이었고, 일반백성들을 호령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또한 이 세관이란 곳은 항상 일종의 분노와 증오를 도발했으며, 로마 가이사의 권위가 깃들여 있던 곳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세관에 대해 자기들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로마의 권위를 내세워 세금을 걷는 유대인 동포는 몹시 보기싫은 사람이요, 민족의 반동분자와 같이 격분을 일으키어 미움을 사는 사람이요, 보기 싫지만 안 볼 수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세리 마태는 부도 있고, 권세도 있으나 누구도 그와 상종하려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손가락질을 당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두겹 세겹으로 울타리를 치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살았습니다. 범인들은 내 마음과 비위에 맞는 사람에게는 혀로써 핥아줄듯이 부드럽고 친절하지만, 마음에 거슬리고 비위에 맞지 않는 사람을 보면 피할 뿐 상종치는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관 앞으로 지난갔습니다. 우연히 지나가게 된 것이라기보다는 일부러 사람들이 다니기 싫어하는 곳을 지나가신 것 같습니다. 그가 삭개오라는 세리장을 일부러 군중 속에서 찾아서 그날 밤 그의 집에서 하룻밤 유숙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본다면 예수님 자신은 직업의 귀천이나, 성격의 괴벽성이나, 사는 방편의 야비함이나, 삶의 목적이 치사하고 저급한 사람일지라도 그들을 기피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친히 찾아가셨던 것입니다. 여기 세관에 앉아 있는 레위 마태를 향하여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인간을 차별없이 대하셨으며, 만일 차별을 한다면 보통 사람이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을 더 가깝게 교제하셨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뻐야 할 삶이 기쁘지 못하고, 행복해야 할 가정이 불행하며, 역사 위에 항상 전쟁의 비운이 사라지지 않고 감돌고 있는 이러한 현실 중에서도 인간사는 새 삶을 찾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그 노력의 산물이 어떤 때는 경제와 물질제일주의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의 사는 것이 부요나 떡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높은 차원에 있어서의 정신적이고 신앙적인 하나님의 말씀에 달려 있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본문은 그리스도적인 인간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멸시를 받아온 세리장 마태를 향하여 “나를 쫓으라”는 지극히 간단한 말씀 한마디를 하셨습니다. 지극히 짧은 말씀이지만 이 안에는 예수님만이 발하실 수 있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세리장 마태는 로마 제국의 권위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권위는 로마의 권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로서 나를 따르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권위의 성질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정치적인 권위, 경제적인 권위, 지식의 권위, 기술의 권위, 교회의 권위 등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권위들은 모든 인간의 외부적 생활과 관계되어 있는 권위입니다. 참 권위는 인간의 내면적 왔을 향하여 호령할 수 있는 권위입니다. 인간의 삶의 목표나 방향을 전향시키고, 생의 목적과 내용을 완전히 딴 것으로 바꾸도록 호령할 수 있는 권위야말로 최고의 권위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하심은 정치적인 혁신을 위해서도 아니요, 경제적인 돈벌이를 위해서도 아닙니다. 사람들에게서 멸시와 천대를 받는 그 착취의 세리직을 그만두고, 인격적 대우와 존경을 받는 지위를 확보키 위해 따르라고 하신 말씀도 아닙니다. 주의 전에서의 하루가 세상에서의 천날보다 낫다고 시편 기자가 말했듯이, 이제 세상적인 세리직을 그만두고 예루살렘 성전의 성전지기로 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따르라고 하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나를 따르라고 하신 이 한 마디는 참된 인간의 재발견을 명하신 것입니다. 인간 자신의 타락성과, 세리 자신의 죄악성과, 마태라는 한 인간 자신의 비뚤어진 자아성을 되찾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참모습은 예수님과 관련이 맺어지면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영상대로 지음받은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러나 타락했습니다. 사람은 다른 피조물과 다릅니다. 수만년 전부터 나무 위에 집을 지어 오던 까치는 지금도 똑같은 방식으로 집을 짓고 살며, 수천년 전에 굴을 파고 흙 속에서 살던 여우도 아직까지도 변함없이 그와 같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5,000년 전에는 원시적으로 굴을 파고 살았으나 지금은 고급 양옥 주택을 짓고, 추우면 난방장치를, 더우면 냉방장치를 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창작성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하심은 원래의 인간성, 즉 영원한 생명과 진리의 맥박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의 사명을 통해 참된 삶을 얻으라는 말씀입니다. 세리 마태는 너무나 감격하였습니다. 전에 세리 마태는 주님께서 그곳을 지나 다니실 때, 동경과 사모의 눈으로 주님을 바라보곤 하였을 것입니다. 주님의 눈과 세리 마태의 눈이 맞부딪쳤을 때 주님께서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나를 따르라고 하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살인 강도와 함께 죽어야할 곤욕과 수치의 화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의 권위로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의 집에서 대접을 받을 때, 바리새인들이 힐난하되 어찌하여 죄인 세리와 함께 식사를 하느냐고 말하였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건강한 자에게 의원이 필요없고 병든 자에게만 의사가 쓸데있듯이 자기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단언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생의 목표이며 내용이었습니다. 주님은 세리 마태와 같은 사람을 위하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리 마태는 “나를 쫓으라”는 명령에 즉각적으로 따랐습니다. 본문에는 “나를 쫓으라” 하시니 “일어나 쫓으니라”고 간단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의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는 세리 마태의 용감한 결단이 숨어있는 말입니다. 과거의 인연과 자랑도 다 끊어 버리고, 아니 과거 그 자체를 장사지내버리고 용감히 미래에 살기를 결단한 장엄한 현재가 여기에서 빛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도 갈릴리 해변에서 처음으로 “나를 따르라” 하신 명령을 들었을 때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쫓으니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용감히 결단하는 신앙만이 참 신앙입니다. 마태가 “일어나 쫓으니라”라는 이 간단한 기록은 한 사람의 생 전체가 변화되는 순간을 줄여서 기록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수치의 장소인 세관을 떠나서 고난의 주, 수치의 주이신 예수님 곁에서 영광과 만족을 누리는 새 삶을 얻는 모험에로의 구체적인 결단을 세리마태는 보여주었습니다. “나를 쫓으라” 하신 이 예수님의 명령은 오늘 우리에게도 들려지고 있습니다. 예수를 이미 믿은 사람이라고 해서 “나를 쫓으라”는 주님의 명령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의 순간순간이 마태처럼 낡은 육의 생활 속에 빠져 있는, 그리고 잘못된 권위에 몸을 맡기고 있는데서 벗어나 “예, 일어나 따르겠습니다” 하는 고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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