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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여자를 보느냐 ? (눅 07:3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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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사복음서에 다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마태복음 26장, 마가복음 14장, 요한복음 12장). 누가복음은 그 아름다운 필치와 문구로 기록하였기 때문에 매우 생생한 느낌이 들도록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서는 문학적으로 매우 가치가 있는 복음서입니다. 본문에 보니 하루는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인 문둥이 시몬의 만찬 초청을 받아 집에 가셔서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구약에 사무엘상 9장에 보면 사울이 아버지의 나귀를 찾으러 갔다가 사무엘을 만나 왕위를 약속받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같이 역사는 종종 뜻하지 않은 데서 중대한 사건들을 이룩합니다. 본문의 경우에도 예수님을 초대하였던 주인과 주빈 사이에 뜻하지 않은 여인이 끼어 들어 이 날의 주인공 역할을 다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연이다” “우발이다” 하는 말들은 모두 인간의 말이지 하나님의 말씀은 아닙니다. 그 사건 속에 하나님의 필연적인 섭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끼어든 여자는 요한복음 8장에 기록된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끌려 왔는데 주님의 은총으로 돌에 맞아 죽어 마땅한 여자가 죽음 직전에서 건짐받은 여자입니다. 이 여인은 지금 자기가 사는 삶은 자기가 아니라 예수님 때문에 있는 삶인 것을 절실히 느꼈던 여인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최선을 다해서 주님을 섬긴 것입니다. 본문에도 이 여인을 가리켜서 죄 많은 여인이라고 공개하였으니 동네 사람들도 이 여자는 부정한 여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서 식사하시는 것을 보고 향유를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발 곁에서 울며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셨습니다. 회개의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머리를 풀어 눈물을 닦으면서 예수님의 발에 입맞추며 자기가 가지고 온 향유를 발랐습니다. 바리새인이 이것을 보다가 “이 사람이 참 예언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여인이 누구며 어떠한 여인인지 알았을 터인데! 그는 죄인인데” 하고 중얼거렸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그 바리새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아, 내가 네게 할 말이 있다. 한 사람이 두 사람에게 빛을 주었는데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지고, 또 한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졌다. 그런데 두 사람이 그 빚을 다 갚을 길이 없어 파산 선고를 당하였는데 그 돈 주인은 측은히 여겨 두 사람 모두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다. 그러면 그 두 사람 가운데 누가 그 주인을 더 사랑하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이 대답하기를 “많이 탕감받은 자가 더 사랑하겠나이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옳은 말이다. 이 여인을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인은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내 발을 닦았다. 너는 내게 입맞추지도 아니하였지만 이 여인은 들어와서부터 끊임없이 내 발에 입맞추었다.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발라주지 아니하였으나 이 여인은 내 머리와 발에 향유를 발랐다. 내가 네게 말하는데 이 여인은 나를 많이 사랑하는 고로 많은 죄를 사함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이 증거되는 곳마다 이 여인의 한 일도 전해져서 그를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실대로 이 여인의 이 아름다운 행동은 오늘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이면 어디든지 전하여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주님의 사랑에 강권함을 받아서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미친 사람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그는 자기의 모든 것은 분토와 같이 여기고 오직 그리스도를 소유한 것을 그의 만족으로 여기며 그의 온몸을 불살랐고, 그의 전 생애를 관제와 같이 몽땅 부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헌신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도 충성스럽게 봉사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었겠습니까? 그것은 주님의 사랑을 받고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의 열매였습니다. 유대인의 상류사회에서는 귀빈을 청했을 때 반드시 세 가지 예의를 갖추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 하나는 주인이 손님의 발을 씻기 위하여 물을 대야에 떠다 드리는 일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향불을 피우거나 아니면 향유를 손님의 머리에 한 방울 떨구어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마지막 하나는 주인은 손님의 어깨에 손을 얹고 평화의 입맞춤을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오시는 손님을 존경한다는 표시요, 특별히 훌륭한 랍비가 올 때는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예식 절차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귀한 손님이 오실 때는 이 세 가지는 꼭 지켜야 할 예의였습니다. 그런데 부잣집 문둥이 시몬 바리새인의 집에서는 예수님에 대하여 이 세 가지 가운데 어느 한 가지의 예의도 지키지 아니하였습니다. 39절 말씀에 보니 “만일 이 사람이 선지자였으면 이 여인이 누구인 줄 알았으리라”고 바리새인이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아니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집에 초대한 것은 종교적 문제들을 토론하기 위해서였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자기의 최선을 다해서 예수님을 맞는 일을 담당하였습니다. 사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은혜를 갚을 길이 없던 차에 좋은 기회가 왔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머리털로 풀어 씻고 발에 입맞추며 값진 향유의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부었습니다. 이것도 38절 말씀에 보니 면전에서 못하고 예수님 뒤로 와서 하였습니다. 이 여인은 자기 죄에 대하여 깊이 부끄러워 하였습니다. 그의 눈물은 샘물을 이루어 눈으로부터 자기의 얼굴을 적시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발에까지 눈물로 적시웠습니다. 기의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셨고, 사랑의 경배로 발에 입을 맞추었고, 희락의 기름으로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참으로 주님께 회개하는 사람은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사랑은 4단계가 있습니다. ①사랑은 먼저 자신을 위해 자신을 사랑하고 ② 다음에 자신을 위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③ 다음에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④ 마지막에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차근차근 비유의 말씀을 하시다가 주님은 선지자보다 더 위대하시며 이 땅 위에 있는 사람의 모든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분이신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바리새인 시몬은 이 여인을 어떻게 보았습니까? 죄 많은 더러운 여자로 보았습니다. 또한 이유없이 값비싼 삼백 데나리온의 비싼 향유를 소비하는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삼백 데나리온으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하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으랴고 생각했습니다. 믿음으로 죄 용서함을 받고 죄 용서함을 받은 감격으로 헌신하는 제물은 신앙이 없이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자 프랜시스는 죄를 발견한 다음 “나처럼 불쌍하고 가련한 죄인은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구나”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을 딤후 1:15에서 “나는 죄인 중의 괴수”라고 하였습니다. 죄 사함 받기 전까지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평안을 취득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파스칼은 “사람에게 자신을 의인시하는 죄인이 있고 죄인시하는 의인이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자타가 공인한 이 여자가 오히려 의인에 가까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저에게 한국이 당면한 최대 위기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서슴없이 “죄의식의 결핍”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어떤 엑스-레이 기사가 약간의 소화불량이 있어 위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러나 평소에 건강했으므로 곧 잊어버리고 근무하였습니다. 이튿날 여전히 출근하여 전날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는 중 어떤 사진 한 장을 들어 보고 자신의 것인 줄 알지 못하고 “지독한 암이로군” 하고는 던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사진이 바로 자신의 것이었습니다. 실로 오늘날의 최대위기는 죄의식의 결핍에 있습니다. 암을 지니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사는 어리석은 세대입니다. 한국의 부흥 운동의 시발점인 1907년의 부흥의 불길을 잘 알고 있습니다.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길 선주 전도사가 일어나서 죄 회개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부터가 아닙니까? 오늘 우리 한국 제단에는 죄 회개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회개없이 그리스도의 평안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48-50절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사함을 얻었느니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했습니다. 이 여인은 죄 사함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건으로 죄 사함의 권세를 가진 것을 입증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찾아온 이 죄많은 여인은 “평안히 가라” 하신 확고한 음성을 듣고 돌아갔습니다. 오늘도 교회를 찾아온 우리들은 마음의 귀를 기울여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가라” 하시는 이 확실한 보장의 음성을 듣고 돌아가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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