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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요 10: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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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절 말씀에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하신 주님의 세 가지 약속을 생각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1. 22절 말씀에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라는 말씀이 기록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먼저 이 대화가 있었던 때와 장소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수전절이었습니다. 수전절이라고 하는 것은 유대 절기의 마지막 절기로써 때때로 빛의 절기라고도 부릅니다. 유대인들은 「하누카」라고 부르며 일력으로 12월에 해당되는 날(기슬래월 25일)입니다. 그러니 우리들의 크리스마스와 매우 가까운 시기라고 하겠습니다. 수전절은 오늘날까지도 유대인들에 의해서 널리 지켜지고 있습니다. 수전절은 새롭게 한다는 뜻으로 마카비 독립운동 때 그 기원을 둡니다. BC 175-164년 시리아왕 안디오커스 에피파네스왕은 헬라의 문화 애호가로서 헬라적이라면 무엇이나 열중하였습니다. 그는 유대교를 철저히 배격 하고 헬라의 종교, 헬라의 사상, 헬라의 사고방식, 헬라의 신화의 신들을 팔레스타인에 도입하려 결심하였습니다. 우선 서서히 헬라적 사상들을 평화롭게 유대에 침투시키려 하였습니다. 여기에 유대인들 중에는 이런 방식을 환영하는 사람도 일부분 있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상들의 신앙에 대해서 고수하며 충실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BC 170년 안티오커스는 이스라엘에게 반감을 가지고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팔만의 유대인을 살해하였으며, 많은 사람을 노예로 팔았고 할례를 행한 어머니는 그 아이의 목을 매어 십자가에 단체로 처형하였으며, 성전 뜰을 모독하고 성전의 방들은 매춘굴로 바꾸어 버렸으며, 하나님의 제단을 올림피아의 제우스 제단으로 바꾸는 가증스러운 행동을 하였던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완전히 더렵혀졌고 이방신에게 제사드려졌으며 이방신을 위하여 그 제단에 이스라엘이 가증히 여기는 돼지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때 BC 164년 유다 마카비아 형제와 이스라엘 백성이 일어나서 궐기하여 수리아군을 격파하고 성전을 숙청하여 새로운 제단에서 제사한데서 시작하여 그 후 해마다 12월 중순(기슬래월 25일)에서 8일간 지키는 절기입니다. 즉 성전을 성별하는 것을 기념하는 승리의 절기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리하여 이 절기를 수전절 또는 제단 봉헌절이라든가 성전 정결 기념절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빛의 절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성전에는 일곱 개의 큰 촛대가 있기는 하나 이 절기 때는 특별히 큰 촛대가 하나 더 드리워집니다. 그러한 촛대는 유대인들의 각 가정에도 달았습니다. 예수 시대에 율법학자 샴마이에 의하면 여덟 개의 등을 창문에 달 고 매일 하나씩 불을 붙여 마지막 날의 하나가 다할 때까지 불을 켜놓습니다. 첫 날에는 한 등을 켜고 매일 하나씩 추가해서 마지막 날에는 여덟 개의 등을 켰다고 합니다. 수전절에 켠 이런 등불은 오늘날까지도 경건한 유대인 가정의 창문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수전절에 켜는 등불의 빛에는 두 가지 뜻이 있었습니다.

(1) 자유의 빛이 이스라엘에게로 되돌아 왔다는 것을 축하한 최초의 축제를 기념하기 위한 뜻이 있었으며,

(2) 성전에는 본래 일곱 개의 촛대가 있습니다. 여기에 아직 더럽힘을 받지 아니한 촛대가 있다는 상징으로 촛대를 여덟 개로 한 개 더 추가한 것입니다. 이 추가된 빛이 수전절을 의미하는 빛입니다. 수전절 등의 기름병이 든 촛대는 수전절의 마지막 날까지 아직 손을 대지 않은 채 대제사장의 반거로 표해서 봉한 그대로 두는 것입니다. 이 돌 항아리에서 나오는 기름이 다른 촛불을 다 태워서 팔일째 되는 날까지 지속되어 수전절 불빛을 수전절 절기 끝날까지 지속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이 마지막 여덟 번째의 촛대에 불이 켜지는 순간이었다는 것을 우리가 가미해 볼 때 의미가 깊다 고 하겠습니다. 수전절의 의미로써 참으로 올바른 예배, 하나님에게 참 예 배를 드릴 수 있는 자유를 획득한 것을 기념해서 성전 내에 있는 모든 여덟 등이 켜질 무렵에 예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라. 오직 나만이 사람들을 비취어서 하나님의 지식과 그 임재를 밝히 보이는 자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2. 23절 말씀에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다니시니”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사도 요한은 예수와 유대인들과의 대화의 시기를 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화의 장소를 지정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솔로몬 행각은 성전 동쪽에 있어서 동각이라고도 부릅니다. 솔로몬 행각은 바벨론왕 느브갓네살이 이스라엘을 점령하여 성전을 파괴할 때에도 이것만은 그대로 남아서 솔로몬이 지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지붕의 행각입니다. 솔로몬 행각은 이방인의 뜰 동편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성전 경내에 들어오는 자가 먼저 통하는 뜰은 이방인의 뜰입니다. 그런데 이방인의 뜰에 양편에 왕탑과 솔로몬 행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높이 12m 되는 웅장한 주황 기둥줄들에 지붕이 달려있는 행각입니다. 랍비들은 이곳을 지날 때 기도를 드린다거나 묵상을 하면서 그곳을 거닙니다. 예수께서 바로 이 솔로몬 행각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 수전절 종교 행사에 기념과 감사를 드리고 있을 때 예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놀란 유대인들은 예수를 에워싸고 질문을 한 것입니다.

3. 24절 말씀에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케 하려나이까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라고 질문하였습니다 이러한 질문의 배후에서 유대인의 두 가지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1) 순수한 마음으로 예수의 말씀을 좀 더 깨닫고자, 알고자 원하는 자들이 있었을 것이며, 메시야를 학수고대하였으며, 참 메시야가 나타나셨는지 어떤지를 간절한 마음으로 알고자 원했던 것입니다.

(2) 다른 편에서는 예수를 함정에 빠뜨리려 그런 질문을 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로 하여금 유대교 법정에서 처리할 수 있는 모독죄나 로 마 총독이 처리할 수 있는 반란죄나 그 어느 쪽에 저촉되는 발언을 시키려고 유혹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25-26절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이미 말하였으되 예수는 자신이 메시야임을 선포하셨습니다. 요 4:26에 사마리아 여인에게는 예수께서 메시야이신 것을 보이셨으며, 요 9:37에 예수께서 날 때부터 소경인 자에게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주장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당신의 주장을 말씀으로 표현하셨든지 안하셨든지 간에 그 주장은 분명히 표명된 것입니다.

(1) 예수의 행위가 메시야이신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사 35:5-6에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사슴 같이 될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 예언이 바로 예수의 하신 일인 것입니다. 예수의 기적 하나 하나가 시대의 여명과 메시야의 내림을 증거합니다.

(2) 예수의 말씀이 메시야이신 것을 증명합니다. 예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 안에서 말씀하시고 예수를 통하여 인간의 육체로 오신 하나님의 목소리가 사람에게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를 메시야로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예수를 함정에 넣기에 온 힘을 기울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양들에게 예수께서는 세 가지로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4. 예수님의 세 가지 약속 28절에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영생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는 당신의 양들에게 바로 하나님의 생명을 선취할 것을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지상의 생은 변화무쌍하고 땅의 생명은 나그네로 지나가 버리지만 예수를 받아들이면 영원한 하나님의 식구와 한 일원이 되며, 하나님의 생명을 획득할 것을 예수께서는 약속하였습니다. 요 1서 5:12에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고 한 말씀은 바로 그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2) 예수께서는 주의 양들에게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끝없는 삶의 능력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컨대 출 17:6에서의 반석이 깨어지고 생수가 흘러 이스라엘 백성으로 마시게 함과 같습니다. 요 12:24에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하신 말씀처럼 예수께서 육신으로 생명있는 한 알의 밀이 되사 십자가에서 그 육신의 밀껍질을 벗고 생명이 흘러나와 우리에게 스며들어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생명의 밀알이 되셨습니다.

(3) 너희 생명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양들에게 안전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요 14:6에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였습니다. 요 14:11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주신 생명은 곧 하나님 자신이요 하나님이신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안전한 생명을 주님께서 주신다는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을 얻는다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생명이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 아무 것도 이 귀한 하나님과 자신의 생명을 예수의 손으로부터, 예수의 양들에게서부터 빼앗아 갈 수 없다고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온 세상이 어지럽고 재난이 있어 고통이 따른다 해도 예수의 양들은 하나님의 평온함을 느낄 것이며, 예수께서 주시는 하나님의 생명을 얻고 기뻐할 것입니다. 이 기쁨이 주님의 이름으로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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