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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평안을 주노라 (요 14:2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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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요 14:27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시는 말씀으로 우리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축복이 여러 가지 있으나 간략하게 말하면 두 가지로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영생입니다. 죽어도 사는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또 하나는 여기에 말씀하시는 주님의 평안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마음에 평안을 주십니다. 성경에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삼백 육십 육 번이요, 그외 염려 하지 말라, 기뻐하라, 평안을 가지라는 말씀도 백여 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참 평안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환경과 역경과 불행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평안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마 6:25, 33에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 까 염려하지 말라,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더하여 주시리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또 마 11:28에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나아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요 14:1에서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특별히 주님께서 말씀하신 27절의 말씀 “평안을 너희에게 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는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우리가 주님을 믿으면 아무 환난이나 재앙이 없어지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조금 더 읽어나가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안심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나의 평안이란 말은 예수의 평안을 말합니다. 그러니 육신의 평안을 말한 것은 아닙니다. 즉 예수께서 친히 가지고 계셨던 평안을 말합니다. 예수의 생활을 더듬어 생각해 보면 예수의 평안은 육신의 안락한 생활, 육신의 평안은 아닌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가 친히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 곳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노라”고 하신 말씀과 같이 그는 평생 고난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베들레헴의 마굿간에서 탄생하였고, 어린 시절부터 죽음을 피해 애굽에 피난하셨으며, 나사렛 동네에서 목수로 성장하였고. 공생애 기간에 갖은 핍박을 받으셨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의 고난으로 운명하시는 예수님의 생은 어떤 점으로 보아도 예수님은 육신으로 평안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말씀하신 참 평안은 무엇을 말합니까? 이것은 다름아닌 예수의 마음의 평안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육신은 완전한 사람이나 예수님의 마음은 사람이 아닌 참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평안은 하나님의 참 평안을 말하며, 이 하나님의 참 평안을 가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생활이 바깥에서 볼 때에는 여러 가지로 풍파가 많고 요란한 생활이었지만은 그의 심령 깊은 속에는 언제나 평화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막힘이 없는 생활 가운데서 오는 평화입니다. 깊은 심령 속에서 오는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평화를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이런 하나님의 평안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헤롯왕은 교회를 핍박하기 위해서 열두 제자 중 야고보를 잡아 칼로 참형하였습니다. 이것을 온 유대 사람과 바리새인들이 모두 기뻐하게 되었고, 이것을 보고 헤롯왕은 다른 사도들을 해하려고 사도 베드로를 구속해서 깊은 감옥에 두고 군병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2장에 읽어보면 베드로는 내일의 운명이 어떻게 될런지 알 수 없는 그런 환경 속에서 “평안하게” 그날 저녁에 잠을 잤다고 했습니다. 그런 환경 가운데서도 평안히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가 아니면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에는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 가서 전도를 하다가 역시 핍박을 받아서 억울하게 매를 많이 맞고 깊은 감옥에 갇혀서 그 밤을 새우게 되었습니다. 발과 손을 착고에 채우고 대단히 부자유한 가운데서 그날 밤을 지내게 된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바울과 실라는 밤중에 찬송하고 하나님께 기도를 할 때 옥터가 움직이고 큰 지진이 일어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 환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그 심령 속에는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놀라운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평화는 환경의 온갖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권력이 있고 경제적으로 부유하며 지식이 많다 한지라도 마음에 평안이 없으면 그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가령 이런 것들이 없다 할지라도 그 마음속에 진정한 평안이 있으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염려, 근심, 두려움, 불안은 우리 영원을 병들게 하고, 또 우리 육체와 마음까지도 병들게 합니다. 의사들과 심리학자들은 말하기를 대부분의 질병은 마음의 불안감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염려, 근심, 두려움 때문에 정신적 긴장과 불안이 오래 지속되면 고혈압, 루마치스, 신장염, 심장병, 관절염, 시력상실, 위장병과 같은 여러 가지 질병이 발생한답니다. 심지어 암 같은 고질병도 마음이 평안치 못한 때 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두려움이냐 불안과 염려가 무조건 해로운 것은 아닙니다. 이것을 역 이용하면 도리어 큰 유익을 가져옵니다. 즉 불안과 염려는,

(1) 위험을 면하게 됩니다. 염려함으로 조심하여 모든 사고를 방지할 수 있습니다.

(2) 불안을 느낌으로써 노력해서 향상하고 진보 발전하게 됩니다. 남양 원주민들은 일기가 따뜻하고 먹을 것이 많아 그들은 생활의 적정이 없으니 나태하고 야만 생활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려움의 환경 속에 있는 사람들은 이것을 극복하려고 근면하게 일합니다.

(3) 무엇보다도 불안은 하나님을 찾아 만나게 하고 기도하여 응답을 받게 하고, 하나님을 굳세게 의지하여 승리하게 합니다. 그러나 염려와 불 안, 근심의 배후에는 마귀가 숨어 있어서 그것에 사로잡히면 마귀에 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염려와 불안을 극복해야 합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이 행함으로 가능합니다.

1. 우리의 생각을 조절하여 외부에서 오는 환경을 믿음과 말씀으로 조절해야 합니다 분한 생각, 미워하는 생각, 슬픈 생각 같은 것을 다 털어 버리고 우리 주님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딤후 1:7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은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2. 기도와 간구는 두려움과 불안을 평안으로 변화 시킵니다 기도와 간구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 불행을 행복으로,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습니다. 근심과 불안, 공포가 다가오면 하나님을 부르짖으라는 신호인줄 깨닫고 끊어 엎드려 간구함으로 해결하여야 합니다. 사람을 찾아다니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부리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해 야 합니다. 마 7:7에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가장 큰 무기요, 무엇이나 열 수 있는 열쇠인데 이것을 가지고 있는 우리가 쓰지 않고 불안, 근심에 젖어있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빌 4:6에서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기도하고 부르짖으면 절망이 변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렘 29:11에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고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힘입어야 할 것입니다.

3. 맡겨야 합니다 옛날 모세가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황막한 광야를 건너서 가나안 복지를 향해 갈 때 그의 마음에는 불안이 생겼습니다. 광야에는 물도 없는 곳이 요, 먹을 것도 없는 곳이요, 또한 원수와 대적, 그리고 이방인들이 많은 곳이 되어서 앞날이 어떻게 될런지 알 수 없는 위험한 길을 걸을 수밖에 없음으로 자연히 그의 마음에 불안이 생겼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아십니까? “내가 너와 함께 가리라”, “내가 네게 쉼을 주리라”, “마음에 불안해 하지 말라 안심을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맨 마지막에 이런 약속을 하셨습니다.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니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실 때 어떤 역경이 닥쳐와도, 아무리 세상의 파도가 높아도 우리 심령의 바다는 고요하고 잔잔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주신 평안입니다. 이 평안을 받아야 합니다. 이 평안을 받기만 하면 세상의 어떤 것이라도 이 평안을 빼앗아 갈 수는 없습니다. 어떤 환경을 당해도 내 심령은 평안합니다. 내 개인의 일, 내 가정의 일, 경제적인 짐, 교회의 짐, 죄의 짐, 근심의 짐, 모두 다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참 평안과 기쁨 속에 생활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모두가 이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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