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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안디옥 교회의 본받을 정신 (행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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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에 보면 안디옥이란 지명이 두 개가 있으니 하나는 수리아 안디옥이요, 하나는 비시디아 안디옥입니다. 본문의 안디옥은 물론 수리아 안디옥인데 주전 300년경에 수리아 왕 셀류코스 1세 (BC 358-280)가 수리아 북방 오론테스 강가에 건축한 수도이니 로마 관도내에 3대 도시의 하나인 웅장한 도시입니다. 당시 인구 50만이 넘은 세계 최대 번영의 도시였습니다. 여기에 세워졌던 안디옥 교회는 이방교의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다하였던 것입니다.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로 세계의 선봉이 됨과 동시에 오늘까지 세계 모든 교회의 사표가 되고 있습니다. 교회를 예수의 피로 값주고 산 것이라 하면 진실로 안디옥 교회 설립이야말로 피의 산물입니다. 스데반이 예루살렘에서 돌에 맞아 순교함으로 제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가서 복음을 전파할 때에 주의 손이 안디옥에 교회를 세우게 하셨고 안디옥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파송하여 안디옥 교회 교인들의 신앙을 견고히 한 바 이제는 안디옥 교회가 성장하여 오늘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까지 하게 되었으니 당시 안디옥 교회의 정신은 어떠하였겠습니까?

1. 세계적 정신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주의가 귀하지 아니한 바 아니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계적 정신이 없어서는 기독교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세계적 전도는 당연히 예루살렘 교회가 져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는 유대주의에 갇혀서 세계적 정신이 결하였고 이에 반하여 안디옥 교회는 세계적 정신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는 세계적인 선교를 시작했던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의 선교열은 안디옥에서만 끝나지 않고 널리 세계적으로 손을 펴기 시작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정하고 그를 위해 금식한 후에 안수하여 파송하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떨어진 불은 안디옥 교회에 와서 더 넓게 세계에 파급되었으며 예루살렘 교회가 순전히 유대인 교회라면 안디옥 교회는 이방인 교회로 예루살렘에서 전 아시아에, 아시아에서 지중해를 거쳐 구라파에 편만케 되었는데 이 운동의 선봉진에 안디옥 교회가 나선 것입니다.

2. 협동정신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지리가 지리인 만큼 여러 민족이 모인 교회이므로 세계적 정신이 등장되는 동시에 또한 일치 협동하였던 것입니다. 선지자와 교사의 일치가 있었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하달하는 대변자이며 장래 일을 예언하는 자이고 교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여 해석하고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선지자를 교사라고도 하지만 교사보고는 선지자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선지자와 교사 즉 영인(靈人)과 지인(知人)의 합일을 이룬 은혜로운 교회요, 또한 구브로 사람 바나바를 위시하여 니게르라 하는 시몬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멘과 다소 사람 사울, 사랑의 사도 바나바, 흑인인 니게르, 의사인 루기오 등 모두 지방이 다르고 사회적 지위도 다르지만 빈부나 신분, 인종차별 없이 일치단결한 교회였습니다. 오늘의 우리 한국 교회는 어떠한가 교회별로 싸움이요 지방별로 당을 짓고 이북파, 이남파, 호남파, 영남파 싸움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예수의 피로 값주고 산 교회에는 이런 파별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있다면 이것은 진정한 교회는 아닙니다. 교회는 천국의 모형인데 천국에 차별이 없습니다. 특별히 안디옥 교회의 중심적 지도 인물은 바나바와 바울이었습니다. 바나바는 예루살렘에서 온 보수파의 과격한 인물로 모든 사람의 대선배입니다. 바나바가 바울을 불러 손잡고 일하였으니 안디옥 교회는 보수와 진보가 협동 순종한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이라는 지도자에 대한 기록은 안디옥 교회의 성격을 말해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흑인을 왕족보다 앞에 이방인을 유대인보다 위에 세운 교회 여기엔 인종, 국경도, 계급도, 사상도, 세대도 모두 초월하고 하나로 단결하며 사명에 알찬 일치의 본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교회입니다. 우리 민족에게 결함된 민족성이라면 다fms 것은 다 우수한데 단결력이 좀 부족합니다. 정계, 교계, 스포츠계에도 단체력이 좀 약함을 아쉽게 생각합니다. 저는 북두칠성을 볼 적마다 그 어느 떡 하나 하나가 금성이나 북극성 별처럼 뛰어난 별은 못되나 그 잔잔한 일곱 별이 자기 위치를 고수하고 있는데서 단결과 조직의 강화를 보여주고 있어 감탄하게 되는 바입니다. 우리 교계나 교회는 안디옥 교회처럼 합하여 하나가 되어 주님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어 드리기를 기원합니다.

3. 구제 정신입니다 11장에 기록된 바와 같이 글라우디오 (BC 10-AD 54) 로마 황제시 천하가 대흉년이 들었을 때 안디옥 교회는 각기 역량대로 재물을 모아 빈궁 때에 예루살렘에서 우는 형제들을 구제하였습니다. 손 양원 목사님은 나병 환자에게 냉수 한 잔과 밥 한 그릇을 대접하고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 예수를 영접하는 것이라는 이치를 깨달아 그 평생을 나환자를 위해 살았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한 것이라” (마 25:40)라 하였고 히 13:2에는 아브라함이 부지 중 천사를 대접하였다고 했습니다.

4. 봉사정신입니다 봉사에는 물질의 봉헌도 있어야 할 것이나 그보다 더 귀한 것은 사람을 바치는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없어서는 안될 바나바와 바울을 하나님께서는 요구하시고 안디옥 교회가 세례 교회를 위해 봉사할 것을 바라신 것입니다. 이에 안디옥 교회는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재물과 사람을 함께 하나님 앞에 바쳐서 하나님의 성역에 봉사한 것입니다. 금성이란 별은 다른 군성보다 제일 먼저 떳다가 맨 나중에 사라지는 별로 옛 사람들은 「미련한 별」 「고독의 별」 「비애의 별」이라고 해서 보기조차 싫어했습니다. 하나 현대인은 「안내의 별」 「봉사의 별」이라고 높이 평가함은 광박한 사막에서 좋은 안내자로써 봉사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도덕은 부패하고 의리는 깨어지고 윤리는 땅에 떨어져 버린 오늘날이 캄캄한 죄악 세상을 금성처럼 봉사의 횃불을 높이 들어 널리 비치다가 우리 주님 재림의 영광스런 새 아침을 맞이할 때 잘했다 칭찬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5. 기도의 정신입니다 보통 기도가 아니라 금식기도였습니다. 한 시간 설교듣고 돌아가는 교인이 아니라 먹지 못하고 땀 흘리며 기도하는 성길한 신자였습니다. 선교사 파송에도 성대한 송별 연회가 아니라 금식기도였습니다. 기도는 교회의 생명입니다. 기도없는 곳에 생명도 없고 부흥도 없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였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보낼 때 금식기도하고 안수하여 보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이같이 5대 정신 위에 서리진 교회였으며 그 위에 성령님이 충만히 머물던 교회였습니다. 바나바와 바울, 두 사람이 선교사로서 안디옥을 떠나는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참 역사적 대출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2장까지를 베드로 행전이라 하고 13장 이하를 바울 행전이라 하거니와 바울의 안디옥 출발이 없었다면 세계적인 기독교 문명은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여기에 계신 여러분 중에도 성령님의 인도로 복음의 대출발의 제1보를 내어디딜 신자들이 계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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