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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첫 전도의 결산 (행 14: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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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교회 확립의 사명을 마친 두 사도는 앗달리아에서 배를 타고 안디옥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그리하여 27절에 보면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고하고,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라”고 했습니다. 본문에 그들은 “하나님께서 함께 행하셨다”고 하였고 또한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위하여 믿음의 문을 여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앞에 「믿음의 문」 「전도의 문」 「일 할 문」 「성공의 문」 「하늘 문」을 열어 주십니다. 바울의 전도의 길에는 기근과 위험과 질병의 위험이 얼마나 많았으며 물의 위험과 유대인 이방인의 위험은 또한 얼마이었던가!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니 시험이 때때로 일어나고 박해도 곳곳에서 닥쳐오지만 하나님이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시므로 주님의 도를 막을 자가 없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안디옥 교회는 큰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본문에서 다음의 사실을 고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환란의 의의 22절에 보면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란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는 환란을 려은 경험이 있어야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계7:13-14에 기록되기를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횐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란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환란과 우리의 구원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하기를 로마서 5장 3절 “우리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 하나니 이는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앓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환란을 주시는지 그 의의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환란은 신앙의 진위를 알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사십 년간 광야에서 환란과 시험을 받은 것은 저들의 신 앙의 진위를 알고자 함이었으니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도

6.25동란을 겪음으로써 민족의 사상과 신앙의 진위를 시험받았습니다. 아14:16에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고 했습니다. 송죽의 절개는 북풍한설에서만 나타납니다.

(2) 환란은 신앙 인격을 연단합니다. 약1:2-4에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진주는 조개 속에 이물질이 들어가 수 십년 동안 아픔을 견딘 결과를 마침내 진주로 결정된 것입니다. 순금이라는 것도 불 속에 여러 번 연단을 받은 후 에 얻어지는 것입니다.

(3) 환란은 자신의 무능을 깨닫게 합니다.

(4) 환란의 죄를 깨달아 회개하게 합니다. 참새는 죽을 때 구슬픈 소리를 발하고 사람은 죽을 때 선한 말을 한다는 옛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환란 중에서 회개하게 된다는 예가 되는 것입니다.

(5) 환란은 천국을 동경하게 합니다. 세상에서 환란을 많이 겪은 자일수록 내세의 소망이 더욱 커지므로 바울이 말하기를 롬5:3에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앓이로다”고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고후4:16-18에는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란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했습니다.

2. 더베에서의 활동에 대한 보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말씀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고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회개하는 무리를 볼 때에 이것은 내 먹을 양식이라고 하였으며, 사도 바울은 복음이 전파되는 것으로 유일의 낙을 삼았습니다. 그러므로 환란과 핍박이 있어도 복음을 열심히 전하였고. 핍박이 심하면 심할수록 더 열심으로 전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무리를 동원하여 돌로 바울을 죽이려 했으나 오히려 힘을 얻어 더베에서 복음을 힘있게 증거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왜 복음을 이렇게 열심으로 전했는가 하면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그것이 예수께로부터 받은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주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죄인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함이요 예수께서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심도 인간의 생명을 구원하고자 하심이었습니다. 주님의 뜻은 십자가의 복음으로 만국 백성을 구원하고자 하심이니, 이 뜻을 파악한 사도 바울은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3. 루스드라, 이고니온, 안디옥에서의 활동에 대한 보고

(1) “믿음에 거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믿음에 거하라는 말씀은 생각하고 말하고 행함이 일치하는 믿음을 말합니다. 썩지도 않고 쇠하지도 않은 소망도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인자가 이를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 하신 것은 말세에 참 신자가 많지 못할 것을 탄식하신 것이니 우리는 깨어서 믿음을 지켜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란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신앙생활에는 환란과 고난이 따름을 알아야 합니다. 예 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10:33에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고 하였습니다.

(3) 각 교회에 장로들을 세웠습니다. 사도들은 먼저는 복음을 전파하여 많은 신도를 얻고, 신도를 얻은 후에는 당회를 조직하여 교인들이 주님의 뜻대로 잘 양육되도록 하였습니다. 교회의 양적, 질적 부흥을 위해 전도자가 필요하며, 특별히 질적 부흥을 위하여는 참다운 목회자가 필요하고 교회 처리를 위해서는 당회가 필요한 것입니다.

4. 버가에서의 활동에 대한 보고 사도 바울은 비시디아를 지나서 밤빌리아에 이르렀고, 하나님의 말씀을 비가에서 전파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르는 곳마다 어디서나 복음을 증거하였으니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함께 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생명을 구원하고자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을 주셨음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도 내일도 영원할 것입니다. 오는 여러 세대에도 예수의 이름으로만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복응을 항상 전하고 어디서든지 전하고 세계 만방에 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천사라도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가는 곳마다 이르는 곳마다 주님만을 믿고 십자가의 복음만을 전가여야 되겠습니다. 아넌라함은 이르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고 전파하였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을 본받아 이르는 곳마다 제단을 쌓아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이르는 곳마다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을 전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구원을 얻고, 복음을 듣는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니 이에 하나님의 성업은 완성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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