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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목회자의 자기 성찰 (고전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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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목회자들이 신학교를 갓 나와서 목회지에 가면 지나치게 자신만만하고 지나치게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의 의욕 때문에 일하다 보면 많은 흠과 상처를 입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은 자기 성찰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1.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교회에서도 직분을 처음 맡을 때에는 충성하겠다고 하나 점점 잘못되어 버림받는 일이 없는가 하는 점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오늘의 인생은 처음에는 열심이나 나중에는 점점 그 열심이 식어져서 결국 버림을 받게 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처음부터 못쓸 것도 있고 처음에는 좋으나 점점 못쓰게 되는 것도 있습니다. 본문은 내가 내 몸을 쳐 복종케 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세상은 내가 남을 치는 세상입니다. 교계나 사회나 정계가 남을 쳐서 자기만 잘 되려고 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자기 몸을 쳐서 복종케 하였습니다. 쳐서 복종케 하였다는데, 쳤다는말은

(1) 거칠게 단련시킨다는 말입니다. 세례 요한은 자기 몸을 치기 위해 광야생활을 했습니다. 약대 털옷을 입고 가죽띠를 띠고 석청과 메뚜기를 먹으며. 광야의 기도생활을 했습니다. 이같이 신앙생활은 단련이 필요합니다. 기도생활에도 금식기도, 철야기도 등의 단련이 있어야 합니다. 운동선수도 훈련의 생활을 끝내고 선수가 되는 것처럼 목회자에게도 많은 수련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한국에 복음이 들어오기까지는 여러 선배들이 필사적인 각오를 가지고 생명을 걸고 노력을 하였기에 복음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우리는 필사의 각오와 단련없이는 신앙생활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몸을 단련시켜야 합니다. 이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는 필사의 각오가 우리에게 있어야 되겠습니다.

(2) 내 몸을 쳐서란 말은 상처가 나도록 친다는 것입니다. 갈 1:10에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에게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손 양원 목사님은 인민군에게 사십 리를 끌려가면서 “예수믿고 구원받으십시오”라고 전도했습니다. 그때 인민군은 총 개머리판으로 입을 쳤습니다. 이빨이 깨지면서 입에서 피가 나오지만 예수믿고 구원받으십시오 하고 전도를 했습니다. 손 양원 목사는 순교시까지도 자기 몸을 쳐서 주님께 복종 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같이 주님을 위해 살 수 있다면 보람있는 생활을 영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자기 성찰을 하겠습니까?

2. 자기 성찰의 방법

(1) 진실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버림받지 않으려면 진실한 생활을 보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리와 창녀는 용납하셨으나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힐책하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자신들이 경건하게 살지 못하고 더 음란하고 토색, 도적질하면서 교인들에게는 경건하게 살라고 가르쳤고 자신들은 의를 행하지도 않으면서 교인들에게는 행하라고 강요했습니다. 자신들의 부정을 먼저 씻지 못하면서 교인들의 심령을 씻어보려고 애썼습니다. 자기들의 과오와 범죄를 항상 합리화 했던 것이었습니다. 리챠드 킴이 쓴「순교자」라는 책이 있습니다. 6·25때 평양 감옥에서 나온 신 목사님의 얘기입니다. 주님을 위해 죽지 못하고 신앙 정조를 다 팔아버린 열 두 명의 목사가 있었는데 그들은 “나 목사 안될테니 제발 살려달라”고 하다가 개처럼 감옥에서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그 사실을 몰라서 그들을 순교자라 하였습니다. 그 중에 감옥에서 유일하게 신목사는 살았습니다. 신목사는 이런 모든 사실을 숨기고 자신도 천국을 못믿겠다고 한 그 입으로 사람들에게 허위로 설교하며 위로를 주는 자가 되었으며, 믿음없는 자가 목사가 되어 거짓으로 그가 믿지 못하는 천국이 있다고 설교했다는 얘기입니다. 우리는 천국을 확신하기에 천국을 전하나 천국을 믿지 못하는 자가 왜 성직자가 되어 사이비 신앙으로 교인을 속입니까? 이것은 외식하는 신앙입니다. 이런 자들은 천국을 믿지 못하면서 믿는 척 허위 설교를 하기 전에 성직을 사퇴해야 합니다. 성직자는 진실되이 살아야되는 줄 압니다. 진실되이 설교하고 진실되이 목회해야 합니다. 기만하기보다 바보가 되는 것이 낫습니다. 천마디의 말보다 오히려 진실한 마음가짐이 청중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교역자가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야합니다. 구김없고 숨김없이 대화할 수 있는 인간이 먼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말틴 부버의 말을 빌린다면「너와 나」의 관계가 맺어지지 않은 오늘의 인간관계는 대화의 짝을 잃은 원앙새처럼 고독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교역자들도 마음의 고통과 번민, 그리고 토하고 싶은 가슴 속의 하소연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토하고 싶어도 토할 수 없고 삼켜 버리고 싶어도 삼킬 수 없는 마음 속의 고통이 있습니다. 교역자는 외로울 때가 많습니다. 광야의 발붙일 곳 없는 고독자의 무리 가운데 있으면서 언제나 고립에 파묻힌 고독한 존재가 오늘의 교역자의 모습입니다. 목사가 오면 대화하던 자들은 대화를 멈추거나 대화의 방향이 달라지는 예가 허다합니다. 그러므로 권위주의 교역자는 신성과 아량없는 고집을 청산하고 참 대화가 있는 관계가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양무리 속에 벗이 되고 그들 속에 파묻혀야 되겠다는 느낌이 솟아올라야 할 것입니다.

(3) 더욱 더 많은 은혜를 사모할 것입니다. 사람은 안일할 때 자기만 생각하나 고통의 심연에 서면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목회자는 영혼을 보살피는 자입니다. 영혼을 보살피는 것은 세상적인 무슨 경로를 통하여 얻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은혜받고 은혜로만 영혼을 보살필 수 있습니다. 진실치 못하고 먼저 참된 인간이 되지 못하고 은혜가 없다면 목회자로서 전도하다 나중에 실격자가 될까 두렵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인정받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하나님 앞에나 주님 앞에서 또 교회 앞에서 버림받을까 조심하여 항상 깨어 근신하여 기도하고 은혜가 충만한 목회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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