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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도 바울의 인사 (고후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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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기 전에 고린도 교회에 보낸 교훈의 편지입니다. 그가 이 글을 쓸 때는 제 3차 전도 여행의 때였습니다. 바울은 오랫동안 에베소에 머물러 있다가 마게도냐를 지나서 헬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는 빌립보에서 디도를 만나서 고린도 교회의 사정을 대강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에베소에 있는 동안도 부단히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반가운 소식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가 어려운 지경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어려운 지경에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사도 바울의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습니다. 그래서 교훈과 충고와 그들의 의문에 대한 답변들을 편지로 보내주었던 것입니다.

1. 고린도 전서와의 비교

(1) 고린도 전서의 특색 고린도 전서는 바울이 1년 6개월간 전도하여 세운 고린도 교회 내부에 당파, 음행. 결혼, 성찬, 성령의 은사, 방언, 예언, 부활의 교리에 관한 문제 등 갖가지 문제들이 생겼을 때 이의 시정책으로 쓴 공식서한입니다. 그 중에서 성령의 은사로 시끄러워진 교회에, 은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제공하려는 노력이 중심 주제가 되어 있습니다.

(2) 고린도 후서의 특색 고린도 후서는 전서와 그 내용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는 사도로서의 자신의 개인적 체험과 권위, 그리고 자신의 인격적인 면을 위주로 권고하는 편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용에 있어서 특별한 구조나 조직을 찾기가 매우 힘들고 다만 사도직의 신령한 체험과 권위를 보여줍니다(고후 11장). 그가 받은 환란에 대해서 위로하시는 하나님, 삼충천의 경험, 그가 어려움에 직면하였을 때는 언제나 기도로 그 어려움을 변화시켜 영광의 체험이 되게 했던 경험이 그것입니다.

2. 하나님의 뜻과 바울 1절에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거 사도된 바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 가운데 바울은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독교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로마로, 아니 기독교의 문화가 온 세계에 널리 퍼지게 된 것이 바울의 노력에 근거한다고 봐도 결코 그것은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바울의 사도직에 대하여 회의를 품고 있는 일반 고린도 교인 일부들에 대해 바울이 그의 확신에 넘치는 신념을 주장한 것이 1절의 요지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으로 사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도라는 말은 사자라는 말입니다. 보냄을 받은 자란 뜻입니다. 파견받은 사람이란 뜻입니다. 이 말은 요사이 흔히 쓰는 말로 선교사라는 말입니다. 또 사도라는 말은 다른 특수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의 제자요, 하나님에게 속한 자란 뜻이며, 그의 말과 행동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에게 위임받았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사도가 되었고, 보내심을 받은 곳은 사도행전 13장에 있는대로 안디옥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원래 사울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박해하던 자였고, 반기독교 선동자였고, 성도를 체포하고 투옥코자 혈안이 되었던 자였습니다(사도행전 9장). 자기 뜻대로 하였다면 그는 평거 반기독자로 살고자 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뜻으로 사도로 택함받아 이방인에게 보냄 받았으니 그의 뜻은 다메섹에서 꺾어지고 주님의 사도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방인의 전도자로 세움을 받아 고린도 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사실 사도 바울만큼의 이방인 구원과 정열이 없었던들 고린도 교회가 세워졌을리 만무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로서 자처하고 그 직분을 영광스럽게 생각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름 11:13). 고린도 사람들이 바울에게 전도를 받아 구원을 얻고도 바울의 사도직을 가볍게 운운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입니다. 성도가 자기 분수를 넘어 자기들의 구원에 대해 날마다 애쓰는 교역자를 이러쿵 저러쿵 비판함은 잘 못이요, 벌써 은혜의 자리에서 떠나 교만에 빠진 것입니다.

3. 고린도 교회, 하나님의 교회에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 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고린도에 하나님의 교회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고린도는 음란, 패륜, 방탕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이런 곳에 교회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의 산 증거입니다. 그러나 이런 곳에 있는 교회는 또한 많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마음을 누르는 무거운 짐입니다. 바울은 사도로서 인사드립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구한 것입니다. 세상의 축복이 아닌 영적 축복이었습니다. 은혜와 평강을 간구한 것입니다.

(1) 은해를 빌었습니다. 은혜란 낱말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추한 데서 아름다움으로, 병든 데서 건강으로, 혼란에서 질서 정연한 데로 옮겨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는 우리를 죄악의 추한 데서 성도의 성결로, 성령이 병든데서 건강으로, 복잡하고 괴로운 생활에서 순전하고 단순한 뚜렷한 생의 목표를 가진 삶을 살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2) 평강이 넘치는 생활 놀라운 은혜를 받으니 그의 심령은 평강이 넘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아름다움과 신령과 건강, 그리고 질서있는 생활이 없다면 우리는 은혜를 받아 평강을 누리는 성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아 평강이 임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은혜를 카리스마라 하는데 이것은 헬라의 인사이며, 평강은 샬롬으로 이것은 이스라엘의 인사입니다. 평강과 은혜의 생활은 우리 성도가 누여야 하는 축복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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