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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찬미함 (고후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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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시대에 있어서 인사에는 으례히 감사를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편지 역시 이것이 한 규례로 되어 있으나 갈라디아 편지에서만은 감사의 말을 생략하고 곧 책망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여느 편지와 마찬가지로 본문에서 모든 찬송과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라”고 말입니다. 성도는 무엇이나 하나님 찬양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편지를 써도, 설교를 해도, 전도를 해도, 심지어 헌화를 하여도 하나님 찬양을 먼저 시작하고 행하는 것이 성도의 도리라고 히 13:15에서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오늘은 찬미의 대상이 누구이고, 그 내용은 어떠한가를 중심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본문에는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라고 했으나 다른 사본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저 하나님이라 하는 것보다는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라 하신 것이 더욱 좋고 신자와의 밀접한 관계가 드러나 보입니다. 그리스도 아버지란 말은 육신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즉 육신을 입은 예수의 아버지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부터 계신 삼위일체에서의 예수와 하나님과의 관계, 곧 부자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서 불신자의 아버지가 아니라 신자의 아버지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신자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것은 피조된 위치에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은 위치에서 부르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인들을 보혈로 구속해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몰랐을 것이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신자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 같이 친밀한 언어는 다시없습니다. 우리는 부모가 없는 고아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품 속에 있는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히 13:5)의 말씀은 이 사실을 보증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항상 찬양합시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생활이 곧 천국생활이요, 영생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2. 자비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무엇을 찬양하여야 합니까?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나 같은 죄인까지 불쌍히 여기사 당신 자신이 인간으로 오셔서 또 죽기까지 하셨다는 사실, 이것은 영원히 찬미할 제목이요.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시 103:13에서의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자기의 죄과를 사하신 하나님을 찬미함이라” 함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영원토록 찬미받기에 합당한 것입니다. 시 86:5에서 “주는 선하사 사유하기를 즐기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에는 악하고 인색한 아버지도 있지만 인자한 아버지도 많습니다. 우리들은 특별히 자녀들에게 더 좋은 아버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 아버지는 지극히 자비하사 자녀들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세상에는 아이를 내버리는 어머니도 있고, 자식을 죽이는 계모도 있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진실로 거룩하시고 지극히 자비로우신 아버지로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심을 약속했습니다.

3.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위로는 성령의 감화하시는 역사를 통하여 우리의 심령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고난과 환란을 당하는 자에게 필요합니다. 또한 병들고 슬픔을 당한 자에게도 필요합니다. 부유하고 영광이 있고 건강한 사람에게는 위로가 필요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환란 중에 있는 자를 위로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진실로 하나님은 자비하신 사랑으로써 우리를 위로하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1) 하나님 말씀으로 위로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가진 66권의 하나님 말씀은 곧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위로와 새 힘을 줍니다.

(2) 특별한 섭리적 위로를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40년간 하나님께서 만나로 먹이시고 반석의 생수로 마시게 하시고,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도 특별한 섭리를 통해 위로를 하십니다.

(3) 인간의 활동을 통해 위로하십니다. 범죄한 다윗에게 나단 선지자를 통해 책망하셨고. 세상 죄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쾌 위로와 구원을 주셨습니다. 오늘날에는 보혜사 성령님께서 교역자에게 역사하여 교인들을 위로하십니다. 위로라는 말은 원어에 보혜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찬미의 근본적 원인은 보혜사 성령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함을 받아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써 서로 화합하며 마음으로 주께 노래한다(엡 5:18-19)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본서를 쓸 때에도 역시 성령에 충만하여 구속의 자비하신 아버지를 소리높여 찬미했다고 봄이 옳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와 은사는 성령의 선물입니다(엡 2:8). 평강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찬미도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초대 교인의 찬미는 모두 성령으로 충만했을 때에 일어났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성령의 충만함이 끄어서 늘 찬미하는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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