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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 종류의 기도 (고후 01: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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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식하는 자의 기도 외식하는 자란 “배우”, “흉내내는 자”의 뜻을 지닌 헬라어로 휴포크리토스에서 왔습니다. 슬프지도 않은데 슬픈 척 하며, 기쁘지도 않은데 기쁜 척 하는 자가 바로 외식하는 자입니다. 결국 외식하는 자가 하는 기도의 동기는 사람에게 보이기 위함입니다. 기도를 잘한다는 말을 듣기 위해 문학적으로, 수사학적으로 꾸며 합니다. 꾸민 기도는 참 기도가 아닙니다. 사람에게 칭찬을 받기 위한 기도는 기도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는 기도는 골방에서 문을 닫고 하나님과 대화하는 기도입니다. 골방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어떤 특별한 장소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없는 조용한 장소를 의미한 것도 아닙니다. 골방이란 하나님과 나만이 상대하는 곳입니다. 비록 깊은 산골짜기에서 나 흔자 기도한다해도 잡념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곳은 골방이 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오가는 시장이라 할지라도 정신이 통일되어 하나님과 나만이 교통하고 있다면 그곳이 바로 골방이며 은밀한 곳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은밀한 곳을 보시며 은밀한 곳에서 하는 기도를 들으시고 은밀하게 갚아 주십니다. 문을 닫고 기도하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마음의 문을 닫고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는 세상 걱정, 돈 걱정, 집안 걱정, 자녀 걱정을 다 버리고 일편단심 하나님만 생각하고 뒤엣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은밀하게 하는 대화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진실하게 그리고 단순하게 나의 모든 사정을 솔직하게 아뢰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2. 이방인의 기도 살전 4:5에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자는 이방인임을 지적합니다. 이방인의 기도의 특색은 기도의 방법이 그릇된 것입니다.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알고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합니다. 천주교도들이 묵주를 세면서 거듭거듭 구하는 것이나, 불교신자들이 나무아미타불을 백번도 더하는 것이나, 바알 선지자들이 “바알이여. 응답 하소서”라고 수백번 불렀던 것도 잘못된 기도의 자세입니다. 그들은 잘못된 자세를 가졌던 것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여야 응답받을 줄로 알고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을 보람으로 느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필요없는 말을 자꾸 반복하였던 것입니다. 만일 기도를 사람에게 보이려면 그렇게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하나님께 하여야 합니다. 기도는 외모에도 있지 않고 외적인 미에도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방인은 내용이 없는 기도, 말의 나열에 치중했습니다. 그러므로 중언부언의 기도는 참 기도가 아닙니다. 말을 많이 하고 수식어를 써야만 응답받는 것이 아닙니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간절히 구하는 기도가 참 기도입니다.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신 기도는 이방인이 하는 기도와는 전혀 다른 기도였습니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안타까움에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간절히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3. 아들의 기도가 있습니다 외식하는 자리 기도는 보이려는 기도이고 이방인의 기도는 말을 많이 하는 중언부언의 기도입니다. 이것들은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지 않는 기도이며 그러기에 그런 기도는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너희 하나님께서 아시느니라” 하였으니 구하기 전에 먼저 바른 아들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1) 기도의 응답을 받으려면 먼저 아들의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국민학교에 들어가려 해도 자격이 있어야 하고, 중학교, 고등학교에 들어가려 해도 자격이 있어야 합니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도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기업이나 회사, 판공서에 들어가려 해도 역시 자격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가 자격이 없이 될 수 있습니까? 그러면 어떤 자격이 구비되어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의 자격입니다. 눅 11:13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였으니 자녀는 부모에게 당당히 구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기에 하나님께 말긴 것이 없어도 당당히 구할 수 있는 것이요 밤 12시라도 구할 수 있는 것이요 새벽 2시라도 달라 하면 화내지 않으시고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기도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길 원합니다.

(2) 기도의 응답을 받기 전에 성결의 문제가 있습니다. 주시오, 주시오 하기 전에 자녀답게 살지 못한 것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회개하는 성도에게 좋은 것을 주십니다. 잘못을 저지르고 엄마에게 매맞을 때도 “엄마. 잘못했어요”라고 한마디 말만 하면 매를 집어던지고 “너 얼마나 아프니,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말아라”고 하며 엄마는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십니까? 회개하는 자의 기도입니다. 누구에게 축복을 주십니까? 회개하고 말씀대로 사는 자입니다. 누구에게 능력을 주십니까? 회개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어떤 분은 산에 가야 능력 받는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등산가, 나무꾼이 능력을 받는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회개해야 능력을 받습니다.

(3) 하나님 아버지는 가장 좋은 것을 가장 좋은 때에 주십니다. 엘리야가 불로 응답을 받은 것도 가뭄이 13년 6개월이나 계속된 다음이었습니다. 왜 13년 반 동안 기다렸겠습니까? 그것은 엘리야를 연단하신 다음에 가장 좋은 것을 가장 좋은 때에 주시려는 섭리 때문이었습니다. 기도의 응답을 주시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먼저 이스라엘 민족을 연단하셨으며 엘리야를 연단하셨습니다. 그러므로써 고난의 유익이 무엇인가를 깨우쳐 주셨으며 고난 중에 하나님은 기적을 베푸셔서 끝까지 붙드시고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체험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고난 중에 낙심치 말고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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