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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창조적 신앙의 비결 (고후 06: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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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결코 해로운 것이 아닙니다. 비행기는 바람의 저항을 날개에 받지 못하면 날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바람을 탓할 것이 아니라 그 억센 바람을 이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물고기도 물살의 저항 없이는 헤엄을 치지 못합니다. 물의 압력은 고기를 침몰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진시키는 것입니다. 약한 자가 힘센 자에게 지는 것이 상식이지만 유도를 배운 사람은 상대방의 힘을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 이용할 줄 알기 때문에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의 환경을 이용할 줄 알아야겠습니다. 바울은 크리스챤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름 없는 자 같으나 유명합니다. 죽은 자 같으나 살아 있습니다. 슬퍼하는 자 같으나 늘 기뻐합니다.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자로 만듭니다.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못 생기고 말주변도 없는 천막 수리공인 바울이 어떻게 그런 위대한 능력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그 비결은 신앙 때문입니다. 사람이 신앙을 가질 때 하나님은 창조의 힘을 주십니다. 불행을 행복으로 개조하고,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고, 빈약한 환경을 행복의 조건으로 개조한계 하는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나폴레옹의 학교 성적은 42명 중 42등이었습니다. 뉴톤은 뒤에서 둘째였습니다. 문학가 엘리어트는 국어시간에 글짓기를 너무 못해 줄곧 야단을 맞았습니다. 두뇌가 좋지 않거나 몸이 약하거나 환경이 나쁜 것이 행복과 불행을 말하는 핑계는 될 수 없습니다. 베에토벤은 고통의 산물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요 그는 11살 때부터 오케스트라에 가서 돈을 벌어야 했고. 17살 때는 그의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니 동생까지 부양해야 했던 것입니다. 30세 때 음악가로서 귀가 먹었습니다. 그는 음악가로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지만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신앙으로 극복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심포니 9번을 연주할 때 박수갈채 뿐 만 아니라 관중의 열광도 옆에 있던 사람의 주의를 받고서야 알 정도였습니다. 그는 눈보라가 내리치는 쓸쓸한 밤에 혼자 57세를 일기로 죽었습니다. 그의 눈을 감겨준 이는 지나가던 한 나그네였습니다. 이런 생활을 한 베에토벤은 불행한 사람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도 모르는 큰 기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나는 괴로움을 뚫고 나는 기쁨을 발견했다”고 했습니다. 베에토벤은 나이가 들수록 신앙이 깊어지면서 그는 큰 음악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치를 발견하게 되면 창조가 나옵니다. 바위가 산에 있을 때는 그 가치가 별로 없지만은 석공이 그 바위를 깨어서 커다란 좋은 성전을 지으면 그 돌의 새로운 가치가 발견되는 것입니다. 큰 쇠뭉치가 그냥 땅 속에 묻혀 있을 때에는 가치가 없지만은 그것을 꺼내어 연단을 시켜서 시계의 태엽을 만든다든가 하면 그 쇠에는 새로운 가치가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인간들도 제한된 범위 안에서 창조자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찬송할 때 십자가, 십자가 부릅니다. 그러나 이 십자가는 본래 가장 추악한 죄인을 사형에 처하는 아주 추악한 형기에 불과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십자가에 한번 못박히셔서 만인의 죄를 구속함으로써 인류의 구속의 상징이 된 것입니다. 부끄러운 십자가가 변해서 영광의 십자가로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얼마나 큰 새로운 가치의 창조인지 말로 다할 수 없는 줄 압니다. 사람들이 가장 추한 것으로 생각하는 십자가를 인간의 모든 신앙을 빛나게 하여주는 아름다운 영광의 십자가로 만드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완고하고 편협하고 독선적이요 무자비한 바리새인 사울을 다메섹 도상으로 불러서 변화시켜 사랑과 화평의 사도가 되게 하였고, 이런 바울을 통해서 온 세계에 복음을 증거케 하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큰 가치의 새로운 창조입니까? 바울뿐만이 아닙니다. 민족의 반역자이며 모리배였던 세리장 삭개오는 주님을 만나 부르심을 받았을 때 변하여 자기 재산의 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토색한 것은 네배나 갚아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또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에 들려 정신없이 미쳐서 벌거벗고 다녀도 부끄러운 줄 모르던 여자였으나 주님께서 치료하여 주시니 그 여자도 주님께 봉사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쓸모없는 자가 변하여 가장 쓸모있는 자가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에서 전도할 때 어떤 마귀들렸던 자를 고쳤다는 까닭으로 마귀들린 점쟁이 주인이 수입이 끊어질 것을 알고 바울과 실라를 관원에게 끌고가서 무고하게 많은 매를 때리고 투옥까지 시켰으나 바울은 억울해 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 앞에 찬송을 부르고 감사기도를 했습니다. 그러자 때마침 지진이 나고 그 후 감옥 간수가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처음에는 여자들만 있었으나 유력한 간수장이가 예수를 믿으므로 그 교회는 날마다 기초가 튼튼해지고 전도하여 큰 교회가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증거하다가 로마 옥중에 갇히게 되었으나 그 생활이 무의미하게 된 것이 아니요 감옥의 생활을 함으로써 우리가 아는 신약의 옥중서신을 쓰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사도 바울의 생활만 그린 것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창조의 신앙생활을 하게 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과일나무를 기르는 사람은 누구나 겨울에 가지를 다 잘라줍니다. 만일 이 나무들이 감각이 있다면 그 전정을 받을 때 대단히 아플 것입니다. 나무가 전정을 받을 때 아프게 많은 가지를 잘리지만은 그 대신 나무가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무는 쓸데없는 가지에 정력을 쏟지 않습니다. 온 정력을 열매에 보냅니다. 그래서 열매가 커집니다. 사실 전정하는 목적은 열매를 크고 아름답게 잘 맺게 하기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아마 어떤 때는 하나님께서도 우리로 하여금 좋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전정해 주는 것 같습니다. 언제든지 창조적 기회를 주십니다. 진주가 어떻게 되는지 아시지요. 진주도 별것이 아닙니다. 조개 속에 모래알이 들어가면 그 모래알이 변해서 진주가 되는 것입니다. 진주의 겉은 아름답지만 그 속은 모래입니다. 조개 속에 모래가 들어가면 그 부드러운 조개살에 깔깔한 모래알이 들어갔으니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그러므로 조개가 살기 위해 즙을 모래에 내보내 그 모래를 싸주고 또 싸주고 여러 해 감싸주면 점점 알이 커집니다. 그것이 바로 진주입니다. 진주는 조개의 고통의 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때는 우리 생활 가운데 모래알과 같이, 사도 바울이 말한 육체의 가시와 같이 깔깔하고 아픈 것을 던져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싸고 또 싸서 우리가 진주와 같이 아름다운 영혼을 만들도록 하기 위해서 그와 같이 하시는 줄 생각합니다.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주 안에서는 모든 것이 창조의 자료가 됩니다. 서양 속담에 “필요 또는 곤고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예수는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그 상한 갈대를 꺾어서 아름다운 초석 피리를 만들어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을 내게 하는 권능이 우리 주님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상처입은 우리 몸이라도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서 내 생명을 맡긴다고 하면 주님께서는 그 상한 생명을 변화시켜 하늘의 음악을 나타낼 수 있는 귀한 하나님의 자녀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자리에 있든지 낙심하지 맙시다. 주 안에 있는 자는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의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비밀의 축복을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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