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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헌신과 축복 (고후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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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예배 후 공동 의회를 열어 지난 달의 손익을 결산하고, 또 예산을 통과하게 됩니다. 이것은 교회 살림을 보살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하여 우리들의 믿음의 열매를 볼 수 있으며, 받은 은혜의 측정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추기 대심방 때 심방한 가정수가 420세대인데 자기 집을 소유한 집 세대가 250세대고, 지금부터 10년 전에 비하면 놀라운 일입니다. 전에는 불과 80세대도 못 되었는데 세 배가 넘는 셈입니다. 우리들의 경제사정과 교회적인 경제사정이 놀랄만큼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라건데 앞으로 전 교인이 다 자기 집을 소유하는 날이 속히 올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것을 속히 단축하는 길은 먼저 믿음의 성장에 있다고 봅니다. 즉 믿음의 축복은 동시에 물질의 축복도 함께 받을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의 열 세 편의 방대한 서한이 신약 성경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단 한번 헌금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고후 9:1-15 말씀에 보면 바울은 헌금에 대해서 우리들의 받은 바 축복이 달라진다고 하였습니다.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헌금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주 안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그래서 일년에 한번 정도 해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진리를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교회에 내는 헌금을 교회를 운영하는 경상비로 생각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바치는 나의 충성과 헌신인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심지어 교회에 불만이 있거나 교역자를 배척하기 위해서 일부러 헌금을 내지 않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가장 불신앙적인 행동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돈이 없다는 핑계도 잘합니다. 그러나 돈이 없다는 것은 정말 핑계일 뿐입니다. 헌금은 다소가 문제가 아닙니다. 내 경제 사정에 맞게 정성스럽게 하면 그 정성을 하나님은 기뻐 받으십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내가 원하는대로 헌금할 수 있게 기도해 보셨습니까? 예수님은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 6:21)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 마음을 기울여야 하나님이 받아 주시고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40년 전 함북 성진의 욱정교회의 얘기입니다. 어느 주일엔가 헌금 당번 집사가 헌금 주머니에서 이상하게 싼 특별헌금을 목사님께 내드렸습니다. 그것은 창호지에 쌌는데 거기에「하나님께 감사드린다」라고만 기록되어 있고 안에는 100원권으로 10장, 즉 천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천원이면 지금 돈 천만원도 넘는 액수입니다. 그것을 받은 목사는 교회에 광고하고 그 사람이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국 마음에 잡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배를 마치고 교회의 사찰인 김모씨를 찾았습니다. 김씨는 그가 그 헌금을 한 동기를 다음과 같이 얘기했습니다. 전에 교회 증축헌금 때, 돈많은 부자 의사인 김 장로는550원, 부자 강 장로는 500원 등 교인 5,600명이 이렇게 많은 헌금을 했지만 저는 돈이 없어 많이 못 내게 되어 안타깝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날 밤 예배를 마치고 난 후 교회 소제를 깨끗이 하고 강대상 앞에 무릎을 꿇고 울며 이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게 돈을 주사 천원 연보를 하게 해주십시오. 저는 김 의사나 강 장로보다 더 말은 1,000원을 헌금하고 싶습니다. “그 후 나는 월15원 월급 중에서 십일조를 떼고 그 나머지로 몇 년 동안 저축해서 200원을 만들었습니다. 어느 교회 모 장로님께서 그것을 알고 제 돈을 차용했습니다. 그런데 그 장로가 사업에 실패하여 이자도 본전도 다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그 장로를 제가 찾아갔습니다. 피땀어린 돈이 다 없어진 것이라고 말하니 그가 가지고 있는 성진읍의 북편 쌍포고개 너머 바닷가의 모래밭 2,000평을 받으라고 한 것입니다. 그 밭은 곡식을 심을 수도 없는 밭입니다. 불과 몇 십원밖에 가치없는 것이지만 그것을 받았습니다. 2-3년이 지나자 그 쌍포 해변가에 제련소가 들어서게 되면서 그곳 땅값이 갑자기 오르게 되었고, 그 덕분에 저의 모래밭도 한 평에 50원으로 껑충 뛰었습니다. 그래서 그 땅을 팔고 받은 돈 중에서 처음 마음을 먹었던대로 천원을 헌금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색한 마음으로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는 원리가 언제든지 적용되는 것입니다. 또 모 교회 장로는 생활이 퍽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교역자가 일 년간 생활비를 받지 못하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그 교회는 그 목사의 목회 실패로 교인은 불과 20-30명도 안되었습니다. 그 교회는 대지가 500-600평이 되었는데 그 장로는 그것을 팔아서 목사에게 1년 동안 밀린 생활비를 지불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땅이 갑자기 팔리지 않는 바람에 그 장로는 빚을 얻어서 자기가 그 땅을 사고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이 장로는 그곳에 복숭아를 심어서 복숭아 과수원을 만들어 큰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어려웠던 생활에서 벗어나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장로는 교치를 충성스럽게 섬겨야 했는데 그는 인색해서 헌금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추수감사절 때도 몇 백원밖에 내지 않아 장의 체면도 세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아이들의 공부를 위해 과수원을 팔아서 기백만원을 만들어 서울로 이주하면서 교회에는 불과 500원을 헌금하고 떠났습니다. 그는 서울 가서 첫 사업을 시작했는데 완전히 실패를 했고, 또 땅을 샀는데 그것이 공원용지여서 집도 못 짓고 팔 수도 없어 가지고 갔던 기백만 원을 전부 잃고 말았습니다. 그후 6,25가 나자 빈 손 들고 부산에 피난 가서 회개하였습니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리라는 말씀이 적중했다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것이나 빼앗은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어머니 손을 잡고 거리에 나가면 어머니가 그를 잘 인도하고, 좋은 옷도 사주고, 배불리 먹을 것을 줄 터인데 그 어린아이가 손을 잡고 다니는 것이 귀찮아서 어머니 손을 뿌리치고 혼자 뛰어다니다가 자동차 사고를 내는가 하면 아이들에게 얻어맞고, 옷을 빼앗기는 그런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떠나 자기 마옴대로 한다고 한 것이 전부 잘못 생각하여 실패보는 것과 꼭 같습니다. 그러므로 축복을 받는 길은 하나님께 돌아오는 길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그 당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외쳤습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살지 아니하느냐, 그런데 어디로 돌아오라고 하는 것이냐?”고 반문했습니다. 선지자는 말하기를 “너희는 하나님의 물건을 도적했다. 그 도적은 십일조 헌금을 내지 않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십일조 헌금은 제도화하거나 교리화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신앙의 응답에서 되어야 합니다. 또한 진심으로 해야 합니다. 미국의 와나메이커는 어렸을 적부터 점원 생활에서 십일조를 꼭 실시하였던 결과 미국의 백화점 왕과 체신부 장관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 “오! 하나님이여. 나로 하여금 천하에 헌금 제일 많이 내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소년의 참된 간구를 하나님께서 성취시키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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