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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연약하나 (고후 11:3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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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때때로 자신의 연약함과 무력함을 느낍니다. 우리들은 날마다 여러 가지의 많은 문제에 부딪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생활에 있어서 혹은 우리 직장에서, 또는 학교나 교회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여러가지 어려움과 곤란한 문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로 골치를 앓게 될 때 우리는 자신이 너무 약하고 외롭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그런 것들을 자신의 힘으로 겨낸다면 오히려 기이히 여깁니다. 사도 바울 역시 그의 생애 중에 수많은 어려움을 당했었습니다. 본문 말씀 중에서 바울은 자기의 경험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퍽 놀라게 해줍니다. 왜냐면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과 자기의 경험을 자랑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히브리인이요. 또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을 자랑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또 그리스도를 섬기면서 당했던 여러 가지 어려움을, 즉 수고와 감금 생활, 매맞는 일 등에 관해서 말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자기에게 허락되었던 특별한 환상과 계시에 대해서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모든 것을 자랑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바울도 고린도에 있는 자기 반대자들의 비판에 대하여 답변하고 있었습니다.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파한 후에 바울은 다른 곳으로 설교하러 갔었습니다. 그때에 거짓 지도자들이 고린도 사람들 가운데 들어와 그들을 유혹했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바울은 전혀 참된 사도가 아니며 약하고 아무런 권위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그런 비난에 대해 답변하면서 자신의 사도권에 대한 표적을 확실히 기록했습니다. 즉 자기가 당했던 고난과 위험 등은 모두가 그리스도의 사도로서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당한 것이며, 또 자기가 보았던 환상도 주께서 친히 자기에게 허락해 주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점에 있어서 바울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기의 연약함을 지적하면서 그것 때문에 도리어 주님의 능력이 더욱 분명해졌다고 하였습니다. 비록 바울 자신은 연약하였지만은 그는 주님 안에서 강했습니다. 우리가 봉독한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바로 이것입니다. 즉 우리 스스로는 연약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는 능력 안에서 강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인간으로서 아주 약하다는 사실을 기꺼이 인정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일생을 통해 당했던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낱낱이 열거함으로써 이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1. 그는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전도 여행에 나섰을 때 많은 굴 욕을 당했습니다 유대인의 형벌 가운데 하나인 태장을 다섯 번이나 받았습니다. 로마인의 형벌인 몽둥이 매질을 세 번씩이나 당했습니다. 돌로 맞은 것이 한 번이고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었습니다. 거기다가 강도의 위험과 주리고 목마르며, 추위에 헐벗고 떠는 위험도 많이 당했습니다. 그는 연약한 인간으로서 이런 모든 일을 오직 복음을 위해서 기꺼이 받았습니다. 그가 만약 권력가였다면 그러한 굴욕적인 일들을 당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2. 바울 자신의 활동이 그를 몹시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여러 가지 육체적인 굴욕들에 비해 그는 계속해서 이런 외부적인 일 외에도 모든 교회에 대한 걱정이 날마다 내 마음을 누르고 있다(28절)고 하였습니다. 그같이 바울이 교회 때문에 걱정하는 데에는 많은 이유들이 있습니다. 새로 기독교 신자들이 된 자들은 연약했습니다. 그들은 쉽사리 용기를 잃고 낙심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거짓 지도자들이 자주 일어나 교회를 타락시킴으로써 권력을 장악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런 연약한 신앙을 가진 자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총의 토대 위에 굳게 세우게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런고로 사도 바울은 모든 교회들을 위해 크게 걱정하고 염려하였습니다.

3. 바울에게는 자기를 항상 괴롭히는 심한 장애물이 하나 있었습 니다 바울은 그 장애물을 가리켜 자기가 교만해지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몸의 가시(12:7)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는 그가 당하던 그 고통의 정체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랫동안 그를 몹시 괴롭혀 온 육체적 질병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이 바울은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당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말은 일을 집어치우고 싶은 유혹을 당했던 때도 있었고, 또는 내가 계속 일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의아심을 품었던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들도 사도 바울과 거의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우리가 사도 바울이 복음의 전도자로서 당했던 그런 엄청난 굴욕들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때문에 조소와 놀림을 당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친구들 중에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복종을 조소할지도 모릅니다.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에 충성을 다하기 때문에 친구를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에 충성을 다하려면 우리도 바울과 같이 그리스도 때문에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여러 가지 일로 걱정을 하게 됩니다. 날마다 우리의 책임을 다하는 일과 우리의 가족을 부양하는 일 등 우리 일상생활의 책임들 이외에도 교회에 대한 특별한 의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이 과연 말은 일에 합당한 은총과 재능을 받았는지에 대해 걱정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교회 전체가 약하고 무기력한 것 같아서 스스로 연약하고 무기력하다고 생각합니다.

4. 마지막으로 우리들 가운데는 자기 스스로 몸에 찌르는 가시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어떤 정서적 문제나 육체적 질병은 여러 달, 또는 여러 해 동안 계속 우리를 괴롭히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고통을 인해서 인간으로서의 우리가 얼마나 약한 것인가를 계속 상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이 날마다 많은 경험을 통해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때때로 절망에 빠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울이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선교 사업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자기에게 고통을 주는 이 약함이 자기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는 기회가 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들에게도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돈많은 부자나 혹은 정치적 영향력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 능력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가 있고, 또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들을 가지고 있으며. 또 자기를 비판하는 자들을 무시해버릴 수도 있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아주 다른 원리에 입각해서 역사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하나님께 자기 몸을 찌르는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에서 응답하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온전해진다”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원리입니다. 즉 그의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해집니다. 하나님께서 인간 가운데 성육하기를 작정했을 때 그는 힘있는 왕이나 위대한 장군으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가난한 자들 가운데서 탄생하셨으며 목수의 일터에서 자라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위대한 구원 사업을 이루셨을 때는 예수가 가장 약하게 보이던 바로 그때였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예수가 가장 약한 것 같지만 사실 그는 가장 강했으며 죄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모든 인간을 위해 구원을 가져왔습니다.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어 하늘에 승천하심으로써 연약함을 통해 역사하시는 강한 능력이 모든 믿는 자들에게 임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들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연약할 때 하나님의 능력은 가장 효과적으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실 수가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내가 강하다고 생각할 때는 우리의 교만과 자족감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연약하여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를 스스로의 힙으로는 감히 극복할 수가 없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로 하여금 힘차게 살아 활동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우리들은 과연 연약합니까? 우리는 본래 겸손합니까? 우리의 교회가 무력하게 보입니까? 고전 1:27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자들을 택하셨으며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자들을 택하셨습니다”라고 한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것을 통해서 가장 강하게 역사하십니다. 우리들의 전도는 비록 약하지만 바로 그 말씀, 즉 복음을 통해서 우리는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능력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연약합니까? 그렇습니다. 정말로 우리는 연약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의 몸과 피에 참여하십시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윤에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약하다고 느낄 그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게 되고 주님의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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