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예화 물이 그리운 물고기들

첨부 1


[야, 이거 마치 물고기들 같구나] 처음 부대에 배치됐 훈련병들을 보며 내뱉은 말이었다.
장병들이 내겐 모두 [주님의 품]이라는 그물안으로 끌어넣을 물고기로 보였던 것이다.
이때가 88년 9월이었다. 부임직후부터 난 예수님을 모르는 장병들에게 진정한 삶의 의미와 기쁨이 성경속에 담겨 있음을 알리기 위해 온힘을 다 했다.
성경반포사업을 벌이고 있는 기드온협회의 지원으로 성경을 배부했고 전주시내 목사님들을 초정, 강연회를 개최했으며 성가대 초청 찬양집회와 간증행사 다과회등을 열었다.
그 결과 지난 4월까지 모두 3천7백41명의 장병들에게 세례를 베풀 수 있었고 약 1만명에게 성찬식을 거행하게 됐다. 또 성경을 모두 3만여권 배부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기뻐하실지는 모르나 난 한 영혼이라도 주님의 제자로 만들기 위해 있는 힘을 다 했다. 그 결과 주님께선 지난 2월 군종병과 40주년 기념 행사때 참모총장표창을 받을 수 있도록 복을 주셨다.
원래 모태신앙인이었지만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나는 신학교에 들어가긴 했으나 어떤 사명감때문이 아니라 놀기 싫어서였을 뿐이었다. 고교졸업 후 뚜렷하게 할 일이 없었기에 목사였던 외삼촌의 권유로 입학한 것이었다.
그러나 대학시절 난 심한 갈등을 겪었다.
[내가 목사가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난 신앙관조차 뚜렷하지 못하지 않은가]
이것이 당시 나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주님께선 집안 경제사정의 악화라는 수단을 사용하셔서 나를 목회의 길로 들어서게 하셨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해 큰 집을 남에게 넘기고 달동네로 이사가게 된 것이다.
어려워진 가정형편으로 고생하던 나는 3학년때 군목시험에 응시했다.
[만약 이 시험에 붙으면 주님의 뜻으로 알고 열심히 목사의 도리를 다하겠습니다. 그러나 떨어지면 장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하고 시험을 쳤다. 결과는 12명중 유일한 합격자라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몸이 달기 시작했다. 하나님과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으면 큰징벌이 내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제대로 읽지 않았던 성경을 손으로 직접 써가며 암송하고 탐독했다.
또 설교를 잘하기 위해 부흥회마다 쫓아다니며 눈과 귀로 보고 듣고 익혔다.
목사의 딸인 아내의 도움을 받으며 신앙을 다져갔다. 82년 육군 사단에 입대했다. 다행히 연대장이 집사라 전도에 많은 편의를 제공받을 수 있었다.
84년에는 공수부대로 발령나 온갖 고된 훈련을 받으면서 군선교를 했다.
부대로 배치받은 후에도 사단장과 참모장이 모두 교인이어서 물고기가 물을 만나듯 선교에 활기를 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려운 점도 많았다.
비신자인 장교들의 핍박도 있었고 마음이 완악한 장병들의 전도때는 눈물겨운 노력이 필요했다.
난 24일자로 경기도 군부대내 상승교회로 전임했다.
이곳에서도 나는 [군복음화가 민족복음화의 지름길]이라는 각오로 일할 것이다.
또 그동안 한번도 빠지지 않았던 새벽기도를 새 부임지에서도 계속할 것이다.
[하나님을 잘 섬기면 반드시 좋은 길로 인도해주신다]는 믿음을 지니고.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