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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율법과 은혜 (갈 0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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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할 때부터 우리는 곧 율법과 은혜에 관하여 고심하게 됩니다. 즉 율법과 나의 관계는 어떠하며 은혜와 나의 관계는 어떠한가 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율법과 은혜를 어떻게 우리와 관련지어야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중요한 질문입니다. 먼저 율법은 인간에게 생명에 이르는 엄격한 규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추호의 동정도 적당주의도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인간이 그 율법을 범하는 때는 추호도 사정없이 기록된 조항대로 생명에 이르는 특권을 빼앗아 가버릴 뿐 아니라 오히려 준엄한 사망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것은 오직 율법에 기록된 그대로 정확 무오하게 행하여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율법에 관하여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한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 (갈 3:10)라는 표현을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행함으로 구원에 이르리라고 하신 기본법인 십계명을 한번 읽어 봅시다.

1.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2. 너를 위하여 우상을 섬기지 말라.

3.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4. 안식일을 기억하여 성일로 지키라.

5. 네 부모를 공경하라.

6. 살인하지 말라. 7. 간음하지 말라. 8. 도덕질하지 말라. 9. 네 이웃을 해하려고 거짓 증거하지 말라. 10. 네 이웃에 있는 것은 무엇이나 탐하지 말라. 이상의 십계명은 보기에는 별로 어렵지 않아도 성경은 여기에 파생된 100여 계명을 더 추가해 놓으면서 이것을 지키는 데는 외면으로는 말고 내면적으로만 된다는 것입니다. 간단한 예로 살인에 관한 조항은 마음으로 이웃을 미워하여도 이미 살인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또한 간음에 대한 조항에도 이성을 보고 음욕을 품으면 이미 하나님 앞에서 간음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상 보통 사람으로는 불가능한 조항입니다. 그래서 갈 2:16에서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 앞에 선 인생은 구원이 그림의 떡이 되고, 도저히 미치지 못할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와 초조에 허덕이며 부단히 노력하고 애를 쓰나 결국에는 죄인으로 낙인 찍혀 버림을 당하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율법은 인간을 살리는 것보다 인간의 교만을 백일천하에 드러내어 놓고 죄악성과 무력을 폭로하려는 데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으로 말미암은 은혜를 통하여 얻어지는 것입니다. 율법 앞에서 만신창이가 되어 사망의 선고를 받은 인생을 대신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오심과 인간을 대속키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롬 4:25), “여호와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예수)에게 담당시켰도다” (사 53:6). 이와 같이 의로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인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구원을 받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율법 앞에서 사형선고를 이미 받은 인간을 대신하여 영원하신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인간으로 오셔서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선고를 받으시고 사형을 당하시어 깨어지시고, 피흘리시고, 죽으심으로 인간의 죄를 다 청산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죄인들인 인간은 오직 예수님의 은혜로만 용서와 구원의 선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율법의 거울 앞에서 나의 절망적인 죄악의 모습을 보고 절망하였으나 값없이 씻어 주시고 의롭다 하심을 주시는 예수님의 선물로 다시 살아나 하나님 앞에서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고 나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율법은 이제 소용이 없습니까?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를 알기 전 인간의 노력으로 의롭게 되려고 할 때에 율법은 무섭고 엄격한 심판자로써 인간은 그 앞에 서서 절망에 몸서리 칠 수 밖에 없었으나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이 우리를 덮고 온 인류의 죄를 영원히 대속하였으므로 누구든지 저를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 이제 율법은 엄격한 심판자가 아닌 따뜻한 가정교사요, 인도자요, 안내자가 되는 것입니다(갈 4:1-7). 율법 아래 있는 자는 아직 얻지 못한 구원을 바라보고 몸부림치고 안타까워 하나 예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자는 무조건 믿음으로 구원을 얻어놓고 이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계속 율법의 거울에 자기를 비춰보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광되게 성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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