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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보람있는 생활 (빌 02: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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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인생을 가리켜서 고해의 인생이니, 초로의 인생이니, 부유의 인생이니, 일장춘몽이니 하여 생의 덧없고 무상함을 말하여 온바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인생은 들에서 자란 풀과 같은 것이요 인간의 생명은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것이라고 하였으며 히 11:13에는 “인간의 삶이란 나그네와 같은 것”이라고까지 하였습니다. 동양의 옛 성현은 인생 칠십이 고희라 하였거니와 참으로 장구한 인류의 역사에 비하면 우리의 평생이란 한밤의 꿈과 같은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생이 비록 짧고 잠깐 지나가는 것이지만 앞으로 우리에게 허용된 삶을 어떻게 하면 보다 가치 있고 보람 있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하는 것은 적어도 뜻있고 생각 있는 사람의 공통된 과제라고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도 바울이 죽음을 앞두고 쓴 바울 선생의 서간을 대하여 볼 때에 그는 그의 마지막 언덕에서 분명히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하여 위대한 보람을 느끼고 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본문 2:16∼18에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뜻있고 목적이 분명한 삶을 목격하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세상을 비관하며 낙담하며 절망과 허무를 느낄 수밖에 없는 세상 가운데서 어찌하여 바울 선생만은 이처럼 보람 있게 생의 승리를 구가할 수가 있었을까요?

1. 진리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공자는 말하기를 “조문도면 석사가의라”라고 하였거니와 이는 진리를 깨달은 삶이 얼마나 보람 있는가를 말한 것입니다.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는 바로 이 길을 찾기 위해 6년간의 세월을 보내었고 로마의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거니와 얼마나 많은 철학자들과 사상가들 쑥 진리의 발견을 위해 노력해 왔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다 허사였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요 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내가 곧 진리다.” 이 얼마나 놀랍고 위대한 선언입니까? 모든 성현 철인들은 길을 찾고 길을 지시하는 사람에 불과했으나 그리스도는 그 자신이 길이요 진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진리를 가르치실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진리로 되신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실로 바로 하나님의 자기 계시요 생명의 본체로써 진리 자신이 되시는 것입니다. 영생의 문제, 구원의 문제야말로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인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류에게 영생과 구원의 길이 열려 있으므로 예수야말로 우리에게는 참 길이요 생명이 되시는 것입니다. 본문 16절에는 “생명의 말씀을 밝힌다”고 할 정도로 바울은 이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았다고 하였으니 그 얼마나 보람 있는 생을 살았겠습니까? 이 세상에는 참 진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오늘도 멸망으로 통하는 넓은 길로 향하여 줄달음질 쳐 가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중에 우리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했다는 사실은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2. 진리를 전하는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깨달을 뿐 아니라 그 진리를 전하는 자가 되었으니 그는 큰 보람의 생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디모데에게 권면하기를 “너는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 4:5)” 하였으며 복음전도의 사명이 얼마나 귀중한 것임을 거듭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롬 10:14에서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하는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고까지 하였던 것입니다. 사실 세계의 문제는 인간의 문제요 인간의 문제는 심령의 문제인 것을 생각할 때 인간의 심령을 개조하고 구원하는 진리의 전달이야말로 보람 있고 가장 귀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기독교인에게는 전도가 의무라기보다는 특권입니다.

3. 진리를 위하여 헌신하였기 매문입니다 본문 중에 사도 바울은 자기 몸을 제물로 드린 바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17절에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관제란 유대인의 제사법 중 제사장이 제단에 희생제물을 드리고 그 제사를 완결하는 표시로 고기와 함께 기름을 제단 아래 붓는 예식으로써 온전한 제사를 뜻하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 몸을 완전한 희생의 제물로써 바쳤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행 20:24에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사실 진리를 위하여 생명을 바치기로 결단한 자에게는 다른 아무 것도 아까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삶의 보람을 일시적인 향락이나 세상 부귀와 명예, 권세, 명성 속에서 찾아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 선생은 그의 삶의 보람을 진리의 발견과 진리의 전달과 그 진리를 위한 헌신 속에서 찾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한다”고 생의 무의미성을 극복할 수가 있었으며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어있다”고 보람찬 생을 증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도 유수처럼 빠른 세월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을 그림자처럼 허무한데서 행복을 붙잡으려고 애쓰지 말고 바울 선생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참 삶의 가치를 발견하여 우리의 생애로 하여금 보람 있는 것이 되어지도록 기도하고 노력하는 생활에 들어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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