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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독자의 3대 제물 (빌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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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절에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라고 했습니다. 구약시대의 제사가 여러 종류, 여러 모양이 있으나 모두 5대 제사에 포함되거나 부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1) 이스라엘의 제사장 직분에 대하여 알아봅시다. 1) 하나님과 백성과의 중보자 2) 하나님을 대신해서 축복함 3) 백성을 대신해서 속죄제, 번제, 화목제를 드림

(2) 이스라엘의 제사 종류와 성격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1) 번제-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헌신을 의미한다. 수소, 양, 산양, 비둘기도 각을 떠서 태움 2) 소제-곡물, 맥분, 무교병이 사용됨 3) 화목제-소, 양, 산양의 지방 부분을 불사름 4) 속죄제-범죄자가 회개하면 제사장이 대신 드림 5) 수은제-부지중 부정한 것을 만졌다거나 부지중 맹세한 것이 허물된 것을 깨달았을 때 드림

(3) 제물을 3종으로 구분할 수가 있습니다. 1) 동물성 제물-소, 양, 산양, 산비둘기, 집비둘기 등 2) 식물성 제물-밀가루, 기름, 술, 과일, 곡식 등 3) 광물성 제물-소금, 금, 은(금과 은은 직접 제물로 사용하지는 않으나 제물 대신에 그것을 공물로 사용합니다) 본문에서 3대 제물을 생각할 때 제물의 의미를 3종으로 비교할 수가 있습니다. 즉 광물성-신앙, 동물성-피, 식물성-희열입니다.

1. 신앙의 제물 베드로는 신앙은 금보다 귀하다고 하였으며 또 보배로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기를 신앙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라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신념 같은 정신수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다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신 기독교적 신앙을 가르친 것입니다. 사도 신경에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라고 신앙을 고백 한 그 신앙입니다. 즉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속죄함을 얻는 그런 신앙이니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신앙이 빌립보 사람들에게 있을 뿐 아니라 성장하기를 원하였습니다. 빌립보 사람들이 이 신앙을 제물삼아 바친다면 바울은 자기 생명을 버린다 하여도 만족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 신앙이 있습니까? 신앙의 제물이 번제 드린 제단에 타오르고 있습니까? 이제 제단이 냉랭하여 죽음의 재만 날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은 오! 생명 있는 신앙의 제물이여, 당신의 이 제단에 타오르소서 하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2. 피의 재물 신앙 때문에 최초로 순교의 피를 흘린 자는 평신도 스데반이요 사도 중에는 야고보였습니다. 이어서 베드로와 바울이 로마 박해에 피의 제물을 하나님께 바친 것입니다. 바울이 본문의 말을 할 때에 결코 추상적으로 한 말이 아니라 빌립보 옥사장이 예수를 믿고 회개하였던 것을 기억하면서, 또 자기의 상처의 피를 씻어주는 그 옥사장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옥고를 치르며 순교의 순간을 바라보면서 표현한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의 정신은 우리 신앙생활에 절대적인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독교 역사를 보면 로마에 카타콤소 예배, 프랑스의 휴게노, 일본의 기리탄은 무엇을 말합니까? 이는 다 기독교에 제단의 피를 흘려 그 위에 부은 피의 제물이었습니다. 피의 제물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피는 곧 생명이니 이 생명의 제단에기독교의 생명이 흘러나오게 된 것입니다. 임진왜란이 한창일 때 일본의 ‘소서행장’이 조선에서 포로로 끌어간 사람 중에 중국에서 온 태전 율리아라는 한 소녀가 있었는데 그는 진실한 기독 신자였습니다. 소서가 패전한 후 율리아는 덕천(德川)의 총애를 입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이므로 할 수 있는 대로 배교케 하려고 궁녀를 보내 전하기를 어전에 나서면 지극한 총애를 받을 것이라고 하면서 겉으로는 기독교인이 아닌 척하고 혼자 몰래 기독교를 신앙하여도 좋다고까지 꾀였습니다. 율리아는 덕천의 총애에 감복하여 울었으나 이것으로 그리스도를 떠날 수 없으며 표면으로는 믿지 않는 척하고 몰래 믿는 것은 어전을 속이는 일이고 또한 하나님을 속이는 일이므로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양심을 굽히며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는 것과 같은 행위는 내가 결코 할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어떠한 분노를 만나더라도 하나님의 극진한 인자하심을 결코 배반할 수 없습니다 라고 그의 신앙의 신실성을 보였습니다. 덕천은 할 수없이 율리아를 伊豆島에 유배시키게 되었습니다. 이 섬은 7, 8명의 어부가 살뿐 고독한 작은 섬인데 여기에서 율리아는 스스로 고기를 잡아먹으며 목숨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이 고독한 섬에서 외롭게 그리스도와 함께 이 세상을 마쳤으니 太田 율리아도 역시 이 바울정신으로 삶을 산 聖女라할 것입니다.

3. 희열의 제물 빌립보서는 특히 환희의 복음입니다. 희열의 문구가 13차례나 있습니다. 바울은 본 절에서 기뻐하고 너희와 함께 기뻐하리라고 할 때는 빌립보 옥중에서 깊은 밤중에 찬송을 부름으로 지진이 나고 옥문이 열리고 쇠사슬이 풀리는 경힘을 회고하였던 것입니다. 또 옥사장의 식구들이 세례를 받고 음식을 베풀고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고 기뻐하던 광경을 회고하였을 것입니다. 바울의 희락 운운은 보통 희락이 아니라 환난 중에서 희락하는 강한 희락이요 적극적 희락인 것입니다. 히 13:15절에 항상 찬미하는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라고 한 것은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찬미의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종교를 적게 가지면 우리를 불안케 하며 넉넉히 가지면 우리를 기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환희의 생활의 근거는 신앙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은 항상 슬픔에 젖은 민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와 찬송을 통해 기쁨에 충만하고 기뻐하며 활력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결 론 신자의 생활은 일종의 제사이며 예배입니다. 만약 신자의 생애에 신앙과 절조와 희열의 3대 정신이 충만하다면 그야말로 아름다운 생활이요 향내 나는 제물이고 거룩한 예배라 할 것입니다. 바울의 거룩한 산제사로서의 생활이 성도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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