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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해의 새 표어 (빌 0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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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같이 빠른 세월 “광음여시(光音如是)”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말 글자 그대로 지난해는 이미 과거의 기록으로 자취를 감추고 새해의 새 희망의 태양빛이 동쪽 하늘에 뚜렷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지난해의 어려웠던 골짜기를 벗어나 희망의 동산에 다시 오른 것입니다. 희망의 푯대라는 말은 신년 표어로서는 가장 적절한 것이라 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일생은 노도광풍에 거슬러 올라가는 한 풀잎 조각이라고 할 수 있으며 넓은 광야에 내던져진 여행자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험과 고난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또 살아가는 것은 광명과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시간 사도 바울의 생활을 잠깐 회고해 봅시다. 그 생활은 여러분이 다 아시듯 기독교인으로서는 가장 성공된 삶을 살았습니다. 이런 바울의 생은 우연히 된 것은 아닙니다. 여기 본문을 보면 바울의 생은 일정한 철학과 푯대가 있는 생이었습니다. 오늘 새해 첫 주에 사도바울의 생을 간단히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기 13절 말씀에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 말씀에 사도 바울의 생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신년 첫 주에 우리는 새 목표를 세워 나가야 할 것입니다. 본문에 오직한 일이라는 말씀은 이는 출발 직전에 전진의 목적을 세우고 이 한 목적에만 총 역량을 집중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나는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물이 가득한 어항 속에 금붕어가 금실금실 노는데 어항에 불이 나서 그 옆에 있던 책이 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어떻게 물이 가득 차 있고 금붕어가 금실금실 노는 어항에서 불이 날 수 있습니까? 그런데 그 이야기는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그 내용을 알고 보니까 이렇게 되었던 것입니다. 남 창문으로 들어오는 여름 뜨거운 햇빛이 유리 어항을 통하여 책에 비췰 때 유리와 어항의 물이 볼록렌즈처럼 광선을 집중시켜서 책에 발화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저기 여기에서 힘을 모으는 것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광열한 햇빛을 한 초점에 집중시키면 엄청난 발화의 힘이 솟아 나오는 것입니다. 바울이 오직 한 일이라고 한 것은 전 생애에 있어서 전진을 목적하는 곳에만 자기의 정력을 집중한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카알라일은 말하기를 “아무리 약자라도 그 힘을 한 곳의 목적에만 집중하면 성공하지 못할 것이 없고 아무리 강자라도 여러 가지 목적에다 그 정력을 분산시키면 한 가지 일도 이루지 못한다.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물이라도 일정한 곳에만 끊임없이 떨어지면 바위라도 뚫을 수 있고 노한 폭포라도 그 급류가 바위에 분산되어 떨어지면 아무 흔적도 남기지 못한다”고 한 것은 전진을 뜻하는 자에게는 “오직 한 일에만” 역량을 집중시켜야 된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앞에 있는 것을 잡기 위하여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린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신년을 맞이하여 이 해에 성공을 도모할진대 적어도 두 가지의 잊어버릴 것이 꼭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과거의 성공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과거의 성공을 잊어버릴 뿐만 아니라 과거의 실패도 잊어버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늘 과거에만 집착했다면 큰일을 못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생은 과거에 하나님에 대한 과대 충성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박해하기를 제일 선두에서 박해했던 자며 그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많은 고생과 고문을 당하고 복음을 증거 하여 대 전도자로 성공도 했습니다만 이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의 푯대만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뒤엣것을 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위하여 힘썼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살기 위하여 힘썼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행하기에 힘썼습니다.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고생하기를 원하였고 죽기를 원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할 것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새해 새 목표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일생의 푯대를 바로 잡았습니까? 분명히 이 푯대가 눈에 나타나 보입니까? 14절 말씀에 “푯대를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하였습니다. 신앙생활은 마치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것과 같아서 전진이 아니면 후퇴 중 하나입니다. 정지하여 선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지요. 그러나 자전거와 오토바이는 전진만 있지 뒤로 달리는 후진은 없습니다. 또한 신앙생활은 푯대를 필요로 합니다. 고전 9:24을 보면 바울의 전진은 항상 푯대를 향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의 푯대는 그리스도였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로 하고 나갈 때에는 갈릴리 노도를 능히 밟고 나갔지만 그것을 바라보지 못할 때에는 세상의 파도가 눈앞을 가려 그만 바다에 빠진 것입니다. 동방박사도 한 별빛을 푯대로 하고 나갈 때는 무사히 유대까지 왔으나 그 별빛 푯대를 잃어버렸을 때에 헤롯의 궁에 찾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성도는 그리스도의 푯대를 향하여 전진하여야 합니다. 전진함에 있어서도 걸어가서는 안됩니다. 본문 말씀에 보면 바울은 좇아가노라 하였습니다. 경주자들을 보십시오. 푯대만 바라봅니까? 아닙니다. 경주자의 발은 아주 빨리 뜁니다. 그 팔은 아주 빨리 앞뒤로 흔듭니다. 그 경주자의 호흡이 얼마나 빨리 진행되고 있습니까? 또 심장과 맥박이 얼마나 빨리 뜁니까? 다시 말하면 목표를 정하고 뛰는 자는 사지백체 오장 육부가 하나도 쉬는 것 없이 목표를 달성키 위해 활동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려고 한다면 이런 경주자의 태도가 필요합니다. 주일도 열심히 지켜야 하겠습니다. 성경도 열심히 상고하여야 할 것입니다. 저녁 집회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새벽 집회, 기도 시간도 힘써야 합니다. 열심으로 새해에는 활동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또한 새해에 좀 더 열심히 전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새해에는 교회를 찾아오는 회원들 한사람도 놓치지 않고 사랑으로 따뜻하게 맞이하여 같은 신앙의 형제자매가 되는 신앙의 교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예년까지는 되는대로, 생각되는 대로 하나님 앞에 살았다 해도 새해부터는 달음질하여 하나님 앞에 봉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내 개인의 생활만 장성하고 축복받는 것이 아니라 내 교회, 내 가정, 나아가서는 사회와 우리 민족 전체에도 큰 축복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다시 한번 여러분에게 부탁드립니다. 푯대를 향하여 전진하는 생활을 다짐하여 새해의 신앙생활에 큰 약진이 있는 새해가 되기를 진정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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