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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 안에서 살리라 (빌 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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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4:1의 가운데서도 “주 안에 서라”고 하였고 4절에는 “주 안에서 창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하였으며 13절에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19절에는 “나의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가운데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공통된 낱말은 “주 안에서”라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안에 갇힌 내가 말하노니”,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주 안에서 권하노니”, “자녀들아 부모에게 주 안에서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문자 그대로 “주 안에서” 산 것입니다. 주 안에서라는 말 가운데는 사도 바울의 깊은 신앙의 체험이 있고 사도바울의 신앙체계를 말하고 있으며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두 차원에서 살았습니다. 즉 육신은 로마 감옥에서 살았지만 그의 심령은 주 안에서 산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권면하노니”하고 말했던 것입니다. 비록 그의 육신은 감방에 갇혀 있다하지만 그의 영은 갇히지 않고 그 영은 주 안에서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주 안에서 행한 것입니다. 바울은 생각도, 말도, 행동도, 편지를 써도, 전도를 해도, 주 안에서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갈 2:20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라고 하였는지도 모릅니다. 요 15:4에서 주님께서는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바울은 정말로 주 안에서 산 사람이었기에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주 안에서 사는 자의 생활의 특색을 알아봅시다.

(1) 주 안에서 사는 자의 생의 목적은 다릅니다. 물론 전과 같이 의식주의 생활을 하고 전과 같이 공부하던 사람, 공부하고 사업하던 사람은 사업을 합니다. 그러나 생의 목적이 달라집니다. 전에는 오직 나를 위하여 산 것입니다. 그러나 주 안에서 사는 자는 주를 위해 삽니다. 같은 사업을 하지만 이제는 주님을 위해서 합니다. 같은 일을 하지만 이제는 주님을 위해서 합니다. 사도 바울이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노라”고 한 것은 바로 이것을 의미합니다. 주안에 있는 사람은 생의 제일의 목적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둡니다.

(2) 주 안에 사는 자는 신령한 양식을 먹고 삽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지 아니하는 자는 생명이 없도다”고도 했습니다. 또한 “내가 주는 물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주 안에 사는 자는 주님으로부터 간단없이 생명의 양식을 먹고 생수를 마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주님으로부터 능력을 얻습니다. 또한 주님으로부터 지혜를 얻습니다.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인내를 배우며 주님으로부터 은혜와 진리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3) 주 안에 사는 자는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육체로 사는 자는 육체의 열매를 맺습니다. 육체의 열매를 맺는 자는 갈 5:19에서 말한 “음행과 더러운 것과 토색하는 것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내는 것과 당을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을 행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주 안에 사는 자는 성령의 열매를 맺나니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모든 아름다운 덕을 맺는 것입니다. 이런 이들은 항상 기쁨에 차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천국이 너희 안에 있느니라”하신 말씀대로 이런 분의 가슴 속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 이기 때 문입니다.

(4) 주 안에 사는 자는 언제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십니다. 실패할 때에도 같이 계십니다. 병든 때도 같이 계십니다. 슬픔을 당할 때도 같이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같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하기를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찬송하는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이런 분은 항상 하나님 안에서 삽니다. 그러므로 기뻐합니다. 여기에 기쁨의 생활의 비결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후 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주 안에서만 명랑한 생활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기쁨의 생활은 우리에게 힘을 줍니다. 직공들이 기쁜 마음을 가질 때에 일의 능률이 올라 좋은 생산품들이 나옵니다. 주부가 기쁜 마음을 가질 때에 살림을 잘합니다. 학생이 기쁜 마음을 가질 때에 공부를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군인이 기쁜 마음을 가질 때에 국토방위를 잘 하게 됩니다. 우리 믿는 성도가 마음이 기쁠 때 전도도 잘 하고 교회 봉사도 잘 하는 것입니다. 햇빛이 비취는 곳에 병균이 살지 못합니다. 이같이 햇빛 같은 마음을 가질 때 마귀의 시험은 오지 않습니다. 주 안에 사는 자는 햇빛 같은 마음을 갖게 됩니다. 또한 내가 스스로 기뻐할 줄 알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기쁨을 나눌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은 향기를 품는 백합화와 같습니다. 어디를 가나 명랑한 분위기를 조성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역사를 보면 고대 로마 사회는 헬라의 찬란한 문화와 로마의 권세와 영광에도 불구하고 매우 침울하였습니다. 대다수의 민중은 허탈감, 좌절감, 절망감에 휩쓸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때에 그리스도인은 그 역경과 핍박 중에서도 기쁨과 소망이 충만한 명랑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영적으로 로마제국을 정복한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세계의 정세와 오늘의 한국의 현상도 이와 비슷합니다. 20세기의 물질문명의 혜택을 받고 과학이 핵의 시대까지 왔으나 인간은 불안한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주로 이런 때에 우리 믿는 사람들은 주 안에서 기쁨과 소망으로 복음을 전파해야 할 것입니다. 흙을 파서 고여 드는 마르는 우물이 아니라 바위를 깨뜨려 바위 속에서 나오는 마르지 않는 생수 같은 물이 필요합니다. 주 안에서 사는 자는 생수와 같은 마르지 않는 기쁨으로 충만할 것입니다. 주 안에 사는 자는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충분히 마셔서 어떤 환경 속에서도 명랑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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