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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염려하지 말라 (빌 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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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절에 보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와 같이 하는 그렇게 특이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늘 염려하면서 지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염려의 문제는 하나님 편에서는 매우중요한 문제입니다. 이것은 불신앙에서 연유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을 무려 550번이나 하였던 것입니다. 불신앙으로 시작된 염려는 인간의 마음과 영혼에 상처를 준다고 보았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요사이 의사와 심리학자들이 여기에 대하여 같은 의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늘 우리가 많은 염려와 근심으로 병을 앓으면서 죽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보건위원회 위원장 마이크 코멘 씨의 보고에 의하면 미국의 병원 침대의 절반을 정신병 환자가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왜 이와 같은 정신병 환자가 많게 된 것입니까? 그 이유는 너무 염려하고 근심을 많이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지난 2차 세계 대전 때 미국과 일본이 싸움이 치열한때 전사자가 35만 명이지만 그보다도 전쟁으로 염려하여 심장마비로 죽은 사람이 100만 명이나 되었다는 것은 염려가 얼마나 사람에게 치명적인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사실 염려는 인간의 무서운 적입니다. 그러므로 염려를 대단치 않게 생각하고 지나갈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명을 노리고 신앙을 타락시키려는 원수 마귀의 무서운 무기라는 사실을 알아야겠습니다. 염려한다는 말은 헬라 원어에 마음을 갈라버린다는 뜻이 있습니다. 염려는 우리의 마음과 인격을 분열시키는 것입니다. 염려는 사람을 작게 만듭니다.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고 비난하고 절망에 빠지게 합니다. 염려는 이렇게 우리의 감정을 파괴해 버립니다. 우리의 지성을 와해시켜 버립니다. 우리의 의지를 약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어떤 문제에도 확실한 신념의 결과를 가져오지 못합니다. 사람은 대개가 세상을 자기 본위로 봅니다. 그래서 염려하기를 시작하면 마음속에 감수성이 분산하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그대로 보지 않고 자연히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건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될 때 판단이 흐려지기 때문에 할 말을 안 하고 안할 말을 하게 됩니다. 또 해야 할 일은 안하고 안할 일은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을 그르치고 맙니다. 옛날 위인들은 모두 염려를 이긴 사람들입니다. 모든 염려가 있을 때 다주께 맡기고 이겨야 할 것입니다. 염려는 우리로 하여금 무덤에 가게 합니다. 맡은 사람이 염려함으로 건강에 손해를 보게 합니다. 좀 엄격히 말하면 우리가 마음속에 염려를 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죄가 되는 것입니다. 왜 염려하는 것이 죄가 되었습니까? 자귀는 염려를 통해 우리를 분열시키고 가정과 교회를 분열시키기 때문에 염려는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는데 주님을 믿지 못하고 염려하는 것이 바로 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향해 거듭거듭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 염려를 이길 수 있습니까? 우리 신앙들은 이 염려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염려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몇 가지를 생각해 봅시다.

1. 우리가 염려하는 문제와는 차원이 다른 위대하신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삼아야 합니다 단순히 하늘을 지으시고 땅도 만드신 하나님을 염려하는 모든 것보다 크신 하나님으로 알고 있는 것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우리 인간은 인간으로 그치는 하나님과 관계없는 신앙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로 신앙되어져야 합니다. 아버지가 되어야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식에 대한 관심이 있습니다. 만일 나의 아무런 상관이 없는 하나님이라면 나에게 책임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43장에 “너는 내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염려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물 가운데 지날 때 내가 함께 하고 강을 건널 때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 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도 타지 아니하리라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염려하지 말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고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2. 자기중심의 생활을 버려야 염려하지 않습니다 내 중심으로 살면 나만 위해 주면 좋고 그렇지 않으면 섭섭합니다. 주로 가정이 분열해지는 가정을 보면 남편은 남편대호 자기만을 위해달라고 하고 부인은 부인대로 자기만을 위해달라고 하는 가정, 이런 가정은 나중에 꼭 서로 싸우는 가정이 됩니다. 사랑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기중심을 떠난 가정, 남편은 아내를 위해, 아내는 남편을 위해, 자식은 부모를 위해 사는 가정은 염려가 없는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중심을 떠나는 생활을 하려면 하나님 중심적 생활을 하면 자기중심적 생활은 떠나게 됩니다.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모시는 가정은 남편은 아내를 위하고, 아내는 남편을 위하며, 부모는 자식을 위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좋은 가정이 됩니다. 먼저 하나님을 모시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첩경입니다.

3. 감사하는 생활이 염려를 이기는 비결입니다 4절에 범사에 기뻐하라 했습니다. 환경이 좋아서 기뻐하는 자는 몇 명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뻐할 때 환경이 좋아집니다. 사도 바울은 옥중에서 기뻐했습니다. 그러므로 기뻐하라는 말은 환경이 좋거든 기뻐하라는 말이 아니라 어떤 환경도 불구하고 기뻐하라는 말입니다. 롬 8:28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을 잘 믿으면 모든 환경이 좋아지고 기뻐지는 여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스퍼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촛불을 보고 감사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을 보고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하늘의 빛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기독교인은 얼굴에서 웃음을 끓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땅의 사람들에게 웃음을 잃지 않도록 해주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4. 기도와 간구를 하나님께 아뢸 때 염려는 없어집니다 우리가 염려하기 전에 간구하고 기도하면 우리 마음속에 평강이 임할뿐더러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다는 주님의 약속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항상 기뻐하는 생활을 할 뿐만 아니라 무엇이든지 간구하고 기도하는 생활을 하십시다. 염려하는 모든 것은 다 주님께 맡기고 주님께 의지하면 우리 마음 가운데 평안과 기쁨이 올 것입니다. 이럴 때 염려 많은 세상에서 염려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염려 없는 하나님의 평강이 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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