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감사하는 생활 (골 02:6-7)

첨부 1


시리아 전설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냥꾼이 살았습니다. 하루는 그 사냥꾼이 외아들을 데리고 사냥을 나갔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토끼 한 마리 볼 수가 없었습니다. 크게 실망하여 터덜터덜 걸어오는데 저 쪽에서 갑자기 들소의 무리가 달려가지 않습니까? 눈이 번쩍 뜨인 사냥꾼은 그 외아들을 그 자리에 있게 하고 그 들소의 떼를 쫓았습니다. 그러나 얼마 뒤에 들소의 무리는 바람 속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사냥꾼은 이상하게 생각하며 아들인 서 있던 곳에 돌아와 보니 아들은 사라지고 핏자국이 점점이 나 있었습니다. 놀란 사냥꾼은 그 핏자국을 따라 골짜기로 허겁지겁 들어갔습니다. 깊은 산 속의 한적한 곳에 굴이 보이는데 그 굴속에 옛 이야기에 나오는 마녀가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그 마녀의 옆에는 자신의 아들이 누워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사냥꾼은 활을 쏘아 한방에 그 마녀를 쓰러뜨리고는 굴에 들어가 아들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미 그 아들은 시신으로 있었습니다. 사냥꾼은 슬픔을 참아가며 아들의 시체를 마녀의 옷으로 싸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루 종일 기다리던 부인이 달려 나옵니다. 사냥꾼은 부인에게 심각하게 말하였습니다. “오늘은 진기한 짐승을 잡아왔소. 이것을 요리해 먹으면 영원히 산다고 하오. 그런데 한 가지만 조건이 있소. 이 요리는 근심 걱정이 한 번도 없었던 가정에서 냄비를 빌려다가 만들어야 한다오.” 부인은 그런 냄비를 빌리려고 온 동네를 다녀 보았지만 찾지 못하고 결국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근심도 걱정도 전연 없었던 집은 하나도 없습니다.”하는 부인의 말을 받아 사냥꾼은 “그 모든 사람이 겪었던 괴로움을 오늘은 우리가 겪을 차례요”하며 아들의 시체를 내놓았다고 합니다. 이 전설은 우리의 인생을 잘 그려놓았습니다. 근심도 걱정도 눈물도 없었던 개인이나 가정은 세계에 하나도 없습니다. 어떤 이는 건강 때문에 걱정합니다. 또는 부부사이가 원만치 않아서 고통 받기도 합니다. 미국의 가정은 셋 중의 하나가 이혼하는 걱정입니다. 그러나 나머지 둘도 법적 이혼을 안 했을 뿐이지 정말 행복한 부부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직장 문제 등등 걱정 근심이산처럼 쌓여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우리는 이런 환경 속에서 무엇을 감사할 것입니까? 그러나 우리 성도는 범사에 감사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실제로 우리에게 감사할 제목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생각하면 하나님의 은혜, 부모의 은혜, 이웃과 친구와 사회와, 국가에 대해 감사할 것 등등 결코 한 가지 두 가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의 모양이 아니라 감사의 내적인 마음을 보십니다. 주님께서 부자의 많은 헌금보다도 과부의 엽전 두 닢을 칭찬한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감사의 정신은 물질이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바칠 것을 바치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과 성실과 감격에서 우러나오는 것에 있습니다. 어떤 곳에 대장장이와 톱질만 하는 자가 같은 동네에 살았습니다. 이 두 사람은 신실한 신자였습니다. 지금은 목재를 기계톱으로 제재하지만 전에는 인력으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 두 분은 예수 안 믿는 부잣집과 사이를 두고 살았습니다. 예수 안 믿는 부잣집 앞에는 대장장이가 살았고 뒷집은 톱질하는 목수가 살았습니다. 대장장이는 주님 은혜에 너무 감격해서 쇠망치질 하면서까지 그 장단에 맞추어 “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송하게 하소서 한량없이 자비하심 측량할 길 없도다”라고 찬송했습니다. 톱질 목수도 역시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해서 톱질하면서까지 “구주의 십자가 보혈로 죄 씻음 받기를 원하네 내 죄를 씻으신 주 이름 찬송합시다”라고 찬송했습니다. 예수 안 믿는 그 부자는 이 사람들의 찬송 소리가 듣기 싫어서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하루는 이 대장장이와 톱질하는 목수가 부자를 찾아왔습니다. 내일 이사를 가게 되어 인사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부자는 그 말에 너무 기뻐 인색한 깍쟁이였지만 아침에 일찍 해두었던 맛있는 시루떡을 전부 내서 한상 차려서 그들을 대접했습니다. 속으로는 기쁘면서도 겉으로는 같이 살다가 이사하게 되어 섭섭하다 하며 이사 가는 곳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섭섭해 하지 말라며 서로 집을 바꾸는 것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부자는 그 말을 듣고 너무 속이 상했습니다. 찬송 들려오는 위치가 바뀌어졌을 뿐이니까요. 인색한 부자는 그 미운 놈들에게 떡을 먹인 것이 너무 아깝고 분해서 그날부터 병이 들어서 몇 달 못가 죽고 말았습니다. 감사 없는 사람에게는 그 자체가 지옥입니다. 이 사람은 스스로 지옥을 만든 경우입니다. 감사는 우리 신자에게 필수적인 생활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감사할 수 있을까요?

1. 믿음 안에서 감사해야 합니다 7절에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없는 곳, 신앙이 없는 곳에는 감사가 있을 수 없습니다. 진정한 감사는 신앙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신앙이 깊으면 깊을수록 감사의 정성도 깊어지는 것이요 신앙이 얕으면 얕을수록 감사의 정성도 얕은 법입니다.

2.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6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지 아니한 불신자들도 감사의 생활을 하는 수가 있는데 하물며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받아 그의 피 공로로 죽을 영혼이 삶을 얻었는데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의 의무입니다. 감사는 구원받는데 대한 보답이요, 죄 사함 받은 은혜의 기쁨의 표시입니다.

3. 예수 안에서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본문 6절에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감사를 넘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이라고 하는 말은 그리스도와 결합되어 그리스도에게서 생활의 힘을 공급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 뜻에 합하게 감사를 드리고, 예수님이 기뻐하실 감사를 드리십시다. 그리스도와 결합하고 그리스도가 주시는 힘을 공급받아 그의 뜻을 실천함으로 감사의 생활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기 위하여 물질도 바치고 시간도 바치고 노력도 바쳐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받으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서 하나님께로부터 더욱 큰 축복을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