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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 (딤전 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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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는 황금시대라고 여기는 요순시대를 사모하고, 불교는 현세를 죄악시하여 이것을 떠나 극락을 사모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모순과 죄악이 많은 이 세상에 거하면서 장차 다가올 신천신지를 바라고 기다립니다.

1. 소망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자는 그의 생활이 항상 새롭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성장하지 못하고 퇴색하게 됩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더웁지도 차지도 아니한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면 주님께서 토해버리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심으로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의지하여 소망 가운데 우리의 생활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활 가운데 거하시지 못하면 우리 영혼은 길을 잃고 방황하며 침체하게 됩니다. 인생에 있어서 권태를 느끼기 쉽고 피곤하기 쉽습니다. 우리의 살아가는 것이 밀초를 씹는 것처럼 재미가 없고 사막을 여행하는 것 같이 무미건조해집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피곤치 않고 언제나 아침을 맞이하는 것처럼 새 힘과 소망을 얻게 됩니다. 그 안에는 언제나 변함없이 신선한 생명력이 차고 넘쳐나고 있습니다. 수정 같은 생명수가 솟아 흘러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피곤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날마다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앞에 나오는 자는 영원한 청춘이 약속됩니다. 소망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는 자는 결코 현재에 머물러 있지 않고 앞을 향해 부단히 노력하고 개척하여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친히 그 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그리스도는 영원한 소망이요 생명이시므로 그를 바라는 자는 끊임없는 노력과 정진이 있는 것이며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어 언제나 기쁨 가운데 생활하게 됩니다.

2. 소망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승리의 확신을 줍니다. 시 42:5에 보면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 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하면서 한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그 마음에 주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지 않는 영혼은 언제나 낙망하며 불안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 있는 자는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그는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죽음의 세력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이미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빛과 소망"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셔서 영원한 승리를 보증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요 16:33에서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하여 부활의 주를 믿는 자는 어떠한 곤란이 닥치더라도 능히 이길 수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증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소망과 승리의 확신 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고전 10:13에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케 하시느니라"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처럼 우리를 지키시며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사도 바울이 한 이 말씀은 안으로는 영과 육의 모순이 있고, 밖으로는 이 세상과 나와의 복잡한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환난과 역정을 당한 때 우리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면 해결의 실마리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승리자요 부활 자인 예수 그리스도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면 우리의 모든 죄와 환난을 친히 담당하여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3. 소망이신 그리스도는 우리를 정결케 하는 힘이 있습니다. 사람은 소망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소망은 모두 허공에 뜬 구름과 같고 바람에 밀리는 물거품과 같아 내일에 대한 확고한 보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소망은 영원한 소망이요 우리들이 바랄 궁극적인 것입니다. 사람이 진정한 소망을 가지고 있으면 어떠한 유혹에도 빠지지 않고 정결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됩니다. 참된 소망을 바라는 자는 세상에서 더러운 생활을 청산하고 마음을 깨끗하게 합니다. 마음을 굳세게 하여 언제나 자신이 바라는 것을 놓치지 않고 주 안에서 달려갈 길을 달려가게 됩니다. 에서는 영원한 축복에 대한 소망이 없었기에 팥죽 한 그릇에 자신의 장자권을 팔아먹고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를 하였습니다. 이처럼 소망이 없는 자는 작은 유혹에 빠져도 좌절과 슬픔을 겪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께 받은 거룩한 소망대로 살지 않으면 부끄러움을 당하고 맙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자는 육신의 정욕에서 벗어나 깨끗하고 확실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소망을 가지고 사는 존재입니다. 이 소망은 어둠 속의 등불이요 용기를 주는 활력소 이며 생명력을 부여하는 원천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소망을「각성한 자의 꿈」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전한 소망을 가지고 정결하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4. 소망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이십니다. 다메섹에서 부름을 받은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가 우리의 소망이라고 하였습니다. 진실로 예수는 우리의 구원이시며 소망이 되십니다. 창 3:21에 보면 여호와께서 범죄한 아담과 하와를 숲속에서 불러내 양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혀 주셨는데, 이것은 장차 오실 메시야를 상징한 것입니다. 또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내어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율법을 준행케 하신 것도 율법의 완성자인 예수를 기다리게 한 것입니다. 마침내 때가 이르매 주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하여 도성인신하신 예수는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시고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마지막 심판 날에 이 땅에 재림의 주로 오셔서 구원을 환성시키실 것입니다. 그런고로 천하 인간에게 다른 이름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하시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만 구원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이 구원의 약속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차별이 없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 것이므로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소망이요 구원이 되시는 것입니다.

5.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영생을 주십니다. 주님께서 변화산에서 변화하실 때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예수가 선지자의 예언대로 율법을 완성하였다는 것과 예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예수를 믿는 자는 죽어도 모세와 같이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엘리야와 같이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는 것을 실제적으로 보여 주시는 장면인 것입니다. 진실로 예수께서는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의논한대로 십자가의 난을 선택하셨고 하나님의 권능으로 다시 죽은 자 가운데서 사망의 권세 물리치고 살아나셨습니다. 그리하여 더 이상 사망이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길을 우리에게 제공해 주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의 서신에서 그리스도를 가리켜 내가 영생을 보았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요 17:3에 보면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소망이라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소망을 얻기 위하여 자기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다 배설물로 여기고 주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부자 청년은 자신의 재물로 인하여 영생이신 예수를 따르지 못하고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영원한 소망과 생명의 약속을 확실히 바라보고 믿은 까닭에 어떤 환난과 역경이 닥쳐와도 실망하지 않고 굳게 지켰던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도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속에 영접 하여 구원과 아울러 축복을 얻어 소망 가운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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