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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단을 경계하라 (딤전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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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잘못된 이단 목회서신의 배후에는 교회를 위태롭게 하는 어떤 종류의 이단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단에 대하여 잠간 생각해 보고 피차 은혜를 나누고자합니다.

(1) 신화와 끝없는 족보 이야기에 열중합니다. 신화란 어떤 한 마을이나 가족의 유래를 여러 신들에게까지 소급해서 소설과 같이 이야기로 만든 것입니다. 어떤 신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와 도시를 건설했다든가, 또는 어떤 신이 이 땅에 내려와 땅의 여인과 결혼하여 자식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왕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고대 사회는 이런 이야기로 꽉 차 있습니다. 고대 사회는 족보에 강한 집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구약에 많은 족보 이야기가 있으며, 신약에는 마태와 누가가 예수의 족보에 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신화나 족보 이야기는 잘못하면 기독교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위험은 두 가지 방향에서 교회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유대교로부터 다가오는 위험입니다. 유대인에게는 구약성서가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 학자는 그것을 연구하고 해석하는데 온 생애를 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성서가 말하는 말씀보다도 신화 등에 더 집착하여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러한 것을 지적하여 기독교인으로서 쓸데없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기독교인에게 쓸데없는 사변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하고 계십니다.

2. 헬라인의 사변 당시 기독교에 있어서 가장 큰 위험은 헬라적인 사변이었습니다. 그노시스주의는 완전한 사변적이었습니다. 그것은 사악한 것과 죄의 고통이 어디에서 생기는가 하는 기원문제로부터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그노시스는 창조라고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무에서 창조한 것이 아니라 시간이 시작하기 전에 물질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물질은 사악한 것으로 불완전한 것이었는데 그것으로 세상을 창조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이 악하다는 것이며 이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도 악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선하다면 이런 악한 물질로 세상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노시스는 예수를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끝없는 쇠사슬 중에서 가장 높은 사슬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를 유일무이한 존재가 아니라 쇠사슬 중에 한 사슬이라고만 여겼던 것입니다. 이러한 그노시스의 인물들이 교회 안에 있었기 때문에 목회서신은 그들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조심하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성서의 올바른 지식을 반대하는 이단은 교회의 위험한 존재로 신앙을 위협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그노시스의 사변은 높은 지적 수준이어서 일반적인 사람들의 사고를 훨씬 능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소수의 사람들이 그들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딤전 6:20에서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고 경고하였습니다. 그들은 경건하지 못한 것을 낳기 때문에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피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목회서신은 이들의 허황된 사변과 선택받은 지혜자라는 사고방식이 그릇된 것이라고 거듭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 사람들을 위한 보편적인 사랑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극소수에 속하는 사람만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지위를 탈취하는 종교는 기독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3. 이단의 윤리

(1) 물질은 악한 것입니다. 이들은 물질이 악하다고 하면서 육체도 물질에 속하기 때문에 악하다고 하며 이를 경멸하고 억눌러야 한다고 합니다. 그노시스는 육체는 순전히 악한 것이므로 이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금욕을 통하여 억제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자연히 결혼도 악하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성 간에 행해지는 일들도 육체에 속하기 때문에 부정하고 악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들은 육체의 모든 것을 떠나 거룩한 영적 지혜를 얻으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2) 육체와 영혼은 별개라고 합니다. 이들은 육체는 악하기 때문에 반드시 멸망할 것이며 육체의 행위가 영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육체가 무슨 행위를 하더라도 영혼을 더럽힐 수 없다고 하면서 지혜를 얻은 영혼은 육체로 하여금 도덕적으로 음란하고 방탕한 행위를 하더라도 깨끗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있는 동안 육체적 쾌락을 즐기며 살아야 한다고 망령된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3) 육체의 부활을 부정했습니다. 기독교인은 최후의 날에 육신이 부활할 것을 믿으나 그노시스는 영혼의 삶만을 주장하여 육신의 부활을 부정하였습니다. 목회서신은 이런 위험한 이단 사상을 조심하고 대항하여 싸우라고 기록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이단들의 윤리를 받아들여서는 결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은 언제나 절대적이며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윤리를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4. 이단과 기독교의 차이점

(1) 이단은 신기함에 대한 욕구나 감정에 의해 살아가지만 기독교는 진리를 따라 살아갑니다. 이단은 마치 최신에 유행되는 옷을 입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하는 사람과 같이 허황된 생각과 감정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것만을 추구하고 낡은 것은 경멸해버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진리에 근거한 신앙에 따라 살아갑니다. 신앙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언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즉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하신 것을 믿고 그가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을 고백 합니다 우리는 예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2) 이단은 사변을 중시하나 기독교는 체험을 중요시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사변이 아니라 사랑이 동기가 되어 선한 행실을 행하며 체험을 중요시합니다. 사랑이란 머리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행동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단은 사변에 치우쳐 하나님의 능력이나 뜻보다는 자기 자신의 이성으로 우선하여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게 됩니다. 자기 생각에 의해 스스로 멸망하는 종교입니다.

(3) 이단은 행동하지 않습니다. 신앙으로 행하기보다는 추상적인 의논에 더 관심을 가지고 사는 것이 이단입니다. 헬라인과 유대인은 근본적으로 생각이 달랐습니다. 헬라인은 의논을 위한 사변을 즐겼습니다. 그들은 결론을 이끌어내 실천에 옮기는 것보다 논쟁 자체를 즐겼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유대인은 실생활에 적용하고 실천하기 위해서 의논을 하였습니다. 그들의 말은 곧 행동과 결부 되는 것이었습니다. 기독교인은 매사에 있어서 마음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신자들은 마음속에서 자기 자신의 지혜나 명석함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그의 뜻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뿐입니다.

(4) 겸손과 교만의 차이입니다. 주님은 성도들에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와서 내 멍에를 메라 내 멍에는 쉽고 가벼움이니라" 하셨듯이 겸손과 온유를 성도들은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이단은 교만하여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기 자신을 앞세우게 됩니다. 이들의 앞날은 멸망이라는 것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5) 이단은 교리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단은 성서의 가르침을 떠나 자기들 나름대로의 형식과 틀 속에서 살아가고자 합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신앙보다는 자기들의 행동지침이나 규율 속에 빠져 교리주의로 변질되어 갑니다. 그러므로 자연히 교리자체가 목적이 되어 참 진리를 상실하고 방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맙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신앙중심으로 진리 안에서 거짓 없이 살아가고자 합니다. 하늘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갑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여 거짓 이단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끝까지 신앙의 절개를 지키시길 주님 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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